어떻게 해야하나?

어떻게 해야하나?

코롤이 5살때입니다.

잠을 자다가 이부자리가 눅눅해 잠에서 깨어난 코롤은 엄마를 찾아 아래층으로 내려갔습니다. 마침 식탁에 앉아서 무엇인가에 열중인 엄마아빠를 보고 엄마! 아빠!하고 몇 번씩 불렀으나 엄마아빠는 무엇인가에 홀린듯이 열심히 무엇인가 집중하는 중입니다. 이상한 마음에 가까이 가서 보니 테이블에는 하얀 가루같은 것이 있었고 엄마는 이 하얀 가루를 조그마한 칼 같은 것으로 분류를 하고 있었으며, 아빠는 빨대 같은 것으로 이 하얀 가루를 코로 흡입하느라 코롤이 가까이 왔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엄마아빠의 이상한 행동에 무서움을 느낀 코롤이 울음을 터뜨리자 그제야 엄마는 코롤을 발견하고 “What’s up doing this time?” 하며 코롤에게 가까이와 코롤을 안으려고 했으나 이미 코케인에 취해서 자기 몸도 가누지 못할 정도의 상태이며 역시 아빠의 눈도 이미 풀려진 상태였습니다.
이후로 코롤은 밤에 무서운 꿈을 꾸어도 엄마아빠를 찾지 않았고, 자다가 오줌을 싸서 이부자리가 축축해지면 혼자서 새 이불을 다시 덮은후 잠자리에 들고는 했습니다. 잠을 자다가 괴물이 쫓아와 벼랑 끝으로 몰려서 너무 무서워 식은땀을 빨뻘 흘리며 떨어도 엄마아빠를 찾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집에서 가까운 Red Apple이라는 그로서리에서 캐쉬어를 하고 있었고 아빠는 트럭운전사로 일을 했습니다. 엄마는 일주일에 6일씩 일하며 바쁘게 생활을 하였고, 코롤은 거의 데이케어에 있었고 저녁이 되서야 집으로 올 수 있었는데 저녁에 집으로 돌아온 엄마는 거의 늘 혼이 나간 듯한 모습이었습니다.

코롤은 배가 고프면 시리얼을 먹었고 피넛버터 샌드위치를 혼자서 만들어서 먹었으며, 7살쯤되서는 캔을 혼자서 열수가 있었기에 캠블치킨수프를 먹기도 하고 캔을 따서 감자를 먹었으며 캔의 칠리를 먹고서 자랐습니다.

코롤이 10살이 되던 해에, 엄마와 아빠는 코케인 중독과 판매했다는 이유로 15년형을 받고 감옥엘 가게 되었고 코롤은 2살아래인 동생과 함께 네바다에 있는 할머니 댁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코롤은 16살이되던 해, 집근처에 있는 7eleven 마켓에서 캐쉬어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아침부터 낮에는 학교엘 가고 4시부터 밤 11시까지는 스토어에서 일하던 어느 날, 일을 마치고 집으로 걸어가는 길에 누군가 차를 세웠습니다. 차문을 열고 “큐에레스 일 코니가로 쏘시에온 카? Do you want to ride?”

가끔씩 자기가 일하는 가게에 와서 담배를 사가던 멕시칸 청년인 페르난도 였습니다.

밤 11시가 넘은데다가 날씨마저도 쌀쌀해서 코롤은 페르난도의 권유에 얼른 차에 올라타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2주일후에 페르난도와 코롤은 코롤의 할머니가 씨애틀 동생 집으로 여행을 간 사이 함께 밤을 지내게 되었고 몇 달후 임신한 것을 알게 되었으며 17살 생일에는 첫 아이가 태어났습니다. 그 후로 31살 될 때까지 코롤과 페르난도는 네 아이의 부모가 되었습니다. 첫째는 15살의 잘생긴 제랄드, 둘째는 아무데서나 웃통 벗기를 좋아하는 11살의 케이티, 셋째 아이는 다리가 휘어져서 걷는 것이 불편한 9살의 알리스, 막내는 6살로 페르난도 주니어. 코롤과 페르난도는 함께 오래 살고 있지만 페르난도의 신분은 아직도 불법 체류자 신분이어서 직장을 잡기도 어렵고 일용직으로 공사판에서 flag man이나 남의 집 가든 공사의 일용직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네 아이들과 코롤은 정부의 미혼모 혜택을 받으며 먹고사는 데는 별로 어렵지 않았으나 남편의 신분을 바꾸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돈은 금액이 너무나 커서 아무런 조치도 않고 지금까지 그대로 있었던 것입니다.

2년전 코롤은 몬로에 있는 임시 쉘터에서 네 아이와 함께 내가 일하는 프로그램에 오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편은 라스베가스에 있는 어느 공사장에서 일용직으로 일을 하면서 돈을 보내주고 있었지만 돈의 액수가 너무 적어서 어디로든 집을 얻어서 들어갈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습니다.

내가 일하고 있는 프로그램은 2년 동안 살 집을 마련해주고, 2년동안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입니다.

우선 Bellevue 우리 프로그램에 있는 3bed room town house에 입주를 시키고 (자기의 수입중 1/3만 내면 되고 전기세 물세는 우리가 다 커버해줌) 네 아이들 중 큰아이는 타운하우스 근방에 있는 youth program인 쥬브리 프로그램에 등록시켜서 뒤떨어진 과목을 보충시키고 둘째 아이와 셋째 아이는 워싱턴 정부에서 하는 after school program인 Head Start에 조인시켜서 방과 후의 활동에 참여하게 하고 마치면 집으로 데려다주게 한 후, 막내는 boys and girls club에 조인시키면서 life skill 훈련을 받게 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이집 저집 전전하느라 거칠어진 성격을 드러내고 무척이나 불안해하기도 하였지만 곧 새 집에 잘 적응되어서 행복해했으나 매번 내가 방문을 하면 나에게 묻고는 했습니다.

“레지나, 이 집에 우리 얼마까지 있을 수 있어요?”
“Regina, How long can we stay at this house?”
나는 아이들에게 안심을 해주느라고 항상 이렇게 애기를 했습니다. “You can stay at this house for 2 years, but after 2years you can move on another good house too.” 우리 프로그램에서 2년 동안 좋은 성적을 얻는다면 우리가 킹카운티에서 하는 퍼머낸트 housing에 추천을 할 수가 있어. 그러면 우리가 추천한 사람이 우선순위로 정부의 아파트에 들어갈 수가 있단다.

코롤과 그후로 페르난도도 함께 들어와 살면서 우리는 마주앉아서 적은수입이지만 예산을 적어서 어떻게 돈을 사용해야하는지를 가르치고 이 가정에 필요한 것을 계획하다가 고등학교 졸업장이 없는 코롤을 인터넷을 통한 고등학교 과정인 GED를 등록시키고, 남편인 페르난도의 영주권 취득을 위해 North west legal clinic의 담당자인 릴리와 얘기를 한 후 필요한 서류 시작을 준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300lb나가는 코롤을 비영리 단체 의사들의 프로그램에 합류시켜서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접수시키고 내가 영양사 프로그램에서 공부한대로 요리하는 방법을 가르쳐주기도 했습니다. 이 가정은 음식하는 법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거의 캔 음식을 먹습니다.

코롤과 페르난도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 없이 자라서인지 부부관계의 중요성을 몰랐으며 아이들을 어떻게 양육하는 것을 몰라서 그냥 방치 상태인 것을 나는 우리 프로그램에 있는 parenting class를 통해서 부모교육도 시키고 그 외에 살아가는 방법을 한 가지씩 가르쳐주길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날은 내가 머리가 돌 지경이었습니다.

자기들이 전기세를 내지 않으니 밤이나 낮이나 불을 켜놓고 있으며. 여름에는 에어컨을 추울 정도로 켜놓고 겨울에는 히팅을 세게 올려놓고 창문은 다 열어놓은 것입니다. 나는 home visit할 때마다 속이 상합니다. 2008년도에 새로 지은 이 집은 코롤이 들어와서 살면서 10년 이상 살던 집 같이 변해버렸습니다. 식탁 테이블에는 마른 스파게티 국수자락이 말라 붙어있고, 스토브에는 끓이다 넘친 국물이 떡처럼 붙어있고, 카펫 바닥에는 커피자국과 음료수자국 등으로 얼룩이 되어있었습니다. 매번 지적하는 나에게 코롤은 짜증을 내기 시작했으며 나는 자식 키우는 심정이 되다가도 너무나 화가 나기도 하고 답답한 심정이 되면 잠시 방문했던 집에서 나와 밖에서 심호흡을 크게 들이쉰 후에 나오지 않는 미소를 억지로 띄운 후에 다시 들어가 온가족이 해야 할 일을 그래프로 그려가며 설명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롤이 우리 프로그램에 온지 2년이 다되어갑니다. 그러나 나는 코롤이 다른 곳으로 이사갈 준비가 안 되어있는 것을 압니다. 코롤 가족이 우리 프로그램에서 졸업하는데 싸인을 안해주면 코롤의 가족은 갈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아프고 편치 않습니다.
그렇다고 준비가 안된 가정을 준비가 되었다고 싸인을 할 수 없는 나는 어떻게 해야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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