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can we sleep together?

When can we sleep together?

밤늦은 시간에 전화벨이 울렸다. 이시간에 전화가 오는 것은 어떤 급한 상황이 아니면 누군가에게 사고가 났다는이유일 것이다. 전화를 받아드니 “Hello! Regina this is John, I am in the Texas for schooling…….집전화번호는 절대로 안가르쳐주는데 john에게는 어려울때 전화해도 된다고 내전화번호를 주었었다. John이 어디에 살든 인생의 멘토가 되고 싶어서이다.

2년전 내가 맡고 있던 케이스였던 John이라는 25살 백인청년이다.
John은 23살때 우리 사무실에서 카운셀링을 받게 되었었는데, 우리 사무실에 오게된 동기는 알콜중독으로 다운타운에 있는 Pike Street 에서 술 한병을 훔치다가 잡혀서 조사를 받는 도중에 본인의 전과가 많이 있어서 감옥에서 수감생활 후 갱생프로그램으로 우리사무실에 오게 된 케이스이다.

처음 우리사무실 로비에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들속에서 John을 보았을 때는 웬 멀쩡하게 잘생긴 청년이 앉아있나 싶었다.

잠시 후 그 청년은 내가 맡아야 할 케이스였다.

처음에 볼때는 이 청년은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있는 대학생같은 차림새인데다가 얼굴 또한 아주 잘생긴 헤즐칼라의 깊은 눈빛에 금발의 수려한 청년이었다.

John은 웃는것도 아름답고 신비스러울만치 잘생긴 얼굴이었으며 본인이 이야기하지 않으면 이청년이 문제가 있어서 왔다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John은 나를 보면서 첫마디가 한국말로 “ 김치좋아해요.”였다. 어디서 한국말을 배웠는가 물어보 니 텍사스에서 살때에 한국사람 식품가게에서 일을 했다고 한다.

8개월을 소규모의 한국 사람가게에서 일을 하면서 한국에 대해서 알게되고 또 한국음식을 먹으면서 특별히 한국 라면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한다.

John은 나하고 처음 만나면서 자기신상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는데. 자기에게는 한 분의 엄마와 다섯명의 아버지가 있었는데 엄마는 알콜중독자였고, 다섯아버지는 모두 하나같이 코케인또는 헤로인을 상습적으로 투약하는 중독자들이었으며, 4명의 형제가 있는데 큰형은 중학교 다닐때 갱단에 가입해서 단체 싸움을 하다가 맞아죽고 둘째는 자기이고, 셋째는 마약사범으로 지금 교도소에서 복역중이며 막내 여동생은 14살때 집을 나간 이후로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으며 자기들 모두가 아버지가 다른 사람이라는 것이다.

John은 8학년을 중퇴하고 계속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면서 Homeless가 되었으나 그래도 텍사스에는 한직장에서 8개월이나 있었다는데 그곳이 한국여자분이 운영하는 그로서리였단다.

어떻게 시애틀에 오게 되었는가? 물어보니 텍사스에 살때 어떤 중국집에서 일을 하다가 그 레스토랑에서 일하던 중국여자친구를 사귀게 되었는데 그 여자는자기보다 14 살이 많지만 마침 여자도 영주권이 필요한데다가 서로 좋아해서 결혼을 하여서 부부가 되었는데 2년을 함께 살던 자기부인이 집을 나가버려서 수소문을 해보니 시애틀에 산다고 해서 무조건 찾아왔는데 지금 시애틀을 몇달째 돌아다녀도 찾을수가 없다는것이다.

John에게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보니 우선 첫번째로 자기아내를 찾는 것이고 두번째로 고등학교를 졸업해서 대학을 갈 수 있었으면 하는것이란다. 우리사무실에서는 2년동안 살 집을 구해 생활할수 있게 해주고 학교나 직업훈련을 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 컬리지와 연결을 해주며 또한 살아가는데 필요한 라이프 스킬을 훈련할 수 있도록 매주 만나서 상담을 하는 것이다.

마침 우리사무실에서 운영하는 GED(고등하교 검정고시) Class가 있어서 등록을 시키고 우리에게 바우처를 해주는 옷가게에 가서 필요한 옷 몇 벌을 사준후 가까운 쉘터에 숙소를 정했다. 다운타운에 있는 역사가 오래된 일식집 부쉬가든에 매니저와 상의를 해서 그릇 닦는 일을 일주일에 4일씩하기로 했다.

John은 성실하게 일을 하며 아침 나절에는 커뮤니티 컬리지에가서 필요한 공부도하고 시간이나면 부인을 찾으러 다니기도 했다.

매주 상담시간에는 정확히 나를 찾아왔으며 상담 도중에 자기의 어릴적 이야기를 하면서 눈물을 흘리고는 했다. 지금도 가장 자기를 괴롭히는 것은 이제 나이가 많아서 오갈데없는 자기의 어머니 문제였다. John의 엄마 사진을 보니 평범한 삶을 살았으면 무척이나 예쁜 여인이었다. 그러나 술로 찌들린 얼굴과 고생을 많이해 변한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파졌다. John을 만나면서 느낀 것은 어머니의 문제가 해결이 되지않으면 John이 자기 스스로 해나가야 할 일을 하기가 어렵다는 결론을 짓고, 나는 그 어머니의 살 곳을 마련해주기로 계획을 하고 텍사스 어스틴에 있는 복지기관과 메일을 주고 받고 전화로 필요한 서류를 준비했다. 준비한지 7개월째 되던 어느 날 John의 엄마인 캐더린은 Assistant Home으로 입주하게 되었다.

John은 어머니가 Assistant Home으로 입주하던날 내 사무실로 와서 펑펑 눈물을 흘리며 감사해했다. 어머니가 안전한데로 가서 살 수 있는 것을 알게된 John은 GED공부를 열심히해서 고등하교 졸업장을 얻게 되었다. 많은 케이스를 일하면서도 성공적인 케이스는 우리가 맡고 있는 케이스에 20 % 인데 이번 John의 케이스는 그 20% 에 들어가는 것 중에 하나이다.
매주 나를 만나러 오던 John은 접시 닦기하면서 월급을 탔다고 고맙다며 점심을 한번 대접하고 싶단다. 일 규칙상 고객하고는 점심을 할수가 없게 되어있어서 사양했더니 John은 “그럼 우리 언제 자야되는가?”묻는것이다.

So, Regina If you don’t want to have a dinner with me and you can’t take any gift from me when can we sleep together?

John의 말은 레지나가 나에게 너무 친절하게 잘해주고 또 필요한것을 다 찾아주었는데 내가 점심도 못사고 또 선물도 안받는다니 그럼 내가 너하고 자야되는데 언제 자야하는가? 하고 물어보는것이었다.

나는 혹시 잘못 들었나싶어 what did you says? 하고 물어보니 그럼 내가 레지나하고 자야하는데 나는 레지나하고 자는게 걱정이된단다.

John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신이 없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무슨 얘기인가 다시 물어보니, 텍사스에서 일할때 주인여자가 너무 잘해주면서 시간이 나면 함께 잠을 자야했다는이야기였다.

John을 나의 고객으로 또한 동생같이 친절히 잘해주는 나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었는데 어릴때 자기가 어려울때 함께 일을 할 수 있게 해준 그어떤(미친?) 한국여자의 미스리딩으로 잘못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것이다.

친절하게 잘해주면 그사람하고 자야하는구나! 라고 참 슬프다! 어려운이들을 자기마음대로 부리고 이용해먹고 하는 사람들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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