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더 있어요?”

밥 더 있어요?

앞에 앉아서 밥을 정신없이 먹던 L씨가 그 많던 밥을 순식간에 해치우고는 나를 쳐다보며 묻는 말이다.
“그럼요! 얼마든지 밥 있어요.” 나의 대답에 안심을 한 듯 먹던 밥을 다시 먹기 시작하면서도 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안다. L씨가 나를 쳐다보지 않는 이유를 ………. L씨는 지금 울고 있는 것이다. L씨가 먹는 밥은 밥이 아니다. 아무리 먹어도 채워 지지 않는 허전함이다. 허기진 마음을 무엇이로든지 채워야하는데 마침 나에게 전화를 했을 때 집에 오면 밥을 같이 먹자고 했더니 단숨에 우리집으로 왔다. 카운슬러들은 바운드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필요에 따라서는 그 이상을 넘어서야만 될 때가 있다.

나의 초대에 밥을 먹으며 자기의 가슴이 허전해져서 견딜 수 없는 공허함을 메워보고자 하는 것이다. 우는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않아서, 아니 울음이 터지면 끝이 나질 않는 울음 끝이 두려워서 애꿎은 밥만 계속 퍼먹으면서 속울음을 우는 것이다. 밥그릇이 비워지기가 서너번째, 염려가 된 내가 L씨에게 말합니다.“천천히 먹어요. 그리고 그만 먹으면 어때요?” 천천히 고개를 든 L씨는 “뭐라고요? 나더러 그만 먹으라고요. 나더러 그만 먹으라고요. 묻는 것이 아니라 악을 쓰며 되묻는다. 나더러 밥을 그만 먹으라고요. 그만 먹으라고요. 당신이 뭔데 나더러 그만 먹으라고요. 당신이 뭔데………. 당신이 뭔데……“ 그리고는 먹던 밥상에 얼굴을 파묻고 울기 시작한다. 결국은 터져버린 울음……… 엉엉엉엉…… 엉………엉…………… 엉……… 엉……………… 앞에 있던 나는 우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내 마음도 같이 운다. 아니 안 울려고 해도 나오는 눈물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

한참을 울던 L씨가 고개를 든다. 얼굴은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어서 제 얼굴이 아니다. 그리고는 “선생님 미안해요. 왜 내가 선생님께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아니야 괜찮아요.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해도 되요. 그리고 실컷 우세요.”내말이 끝나자마자 L씨는 다시 울기를 시작한다. 나는 가만히 L씨를 안아주었다. “그래요 울고 싶을 때 실컷 울어야 해요.” 두 시간을 실컷 울던 L씨가 눈물을 훔치며 말을 하기 시작한다.

오랫동안 교제 해오던 남자와 파혼이 된 L씨가 상처당한 마음을 정리하고자 열심히 직장생활을 해오던 중, 혼기가 넘은 딸아이를 걱정하던 어머니와 집안 어른들의 주선으로 미국에 있는 재미교포와 혼담이 있었다. 직장생활을 재미있어하던 L씨는 부모님의 강력한 권유인 ‘ 여자가 혼기를 넘치면 똥값이 된다는 말’을 지겹도록 들어온 터이라 최대한으로 예쁘게 꾸미라는 중매쟁이의 말에 은근히 짜증스러워하면서도 최대의 멋을 내고 예쁘고 사랑스러운 화장을 하고 엄마가 골라준 특별한 옷을 입고 맞선 자리에 나갔다. 신랑은 18살에 미국에 가서 20년 이상을 미국에서 살아온 사람이었고 막상 만나보니 키도 훤칠하고 그리 잘생긴 모습은 아니지만 자상한 모습과 조용한 말씨를 가진 사람이었다.

딱하나, 전 부인과 헤어진 것 말고는…. 막상 신랑감과 만나서 애기를 해보니 그다지 흠 잡을 곳이 없는 사람이고, 본인 또한 결혼은 하지를 않았지만 7년 동안 사귀어오면서 온가족과 주위의 분들이 생각하기에도 결혼 할 줄 알았던 남자에게 배신을 당한 경험이 있는지라, 이남자의 상처를 보듬고 살면 되겠구나싶었다. 또 보기에도 남자는 선한 눈매를 갖고 있어서 선을 본지 두 달 만에 다니던 교회에서 성대한 결혼식을 올리고 남자는 미국으로 되돌아갔고 일 년 후 L씨는 이민가방에 파티복 6벌을 맞추어 여러 가지 옷들과 함께 비행기를 탔었다. (미국에 관한 잘못된 인포메이션 때문에)

공항에 마중 나온 남편을 따라 남편의 집에 도착해 집 안으로 들어서자 남편은 일층이 아닌 아래층 지하방으로 L씨를 데리고 내려갔다. 그러더니 그동안 사업에 실패를 해서 가지고 있던 집이 날아가버렸노라며 미안하다며 열심히 함께 일해서 근사한 집에서 살자고 혹시 가져온 돈이 있으면 그 돈으로 좀 더 큰 집으로 이사를 가잔다. 남의 집 반지하인 집은 밤이면 생쥐들이 줄지어 다니고 혹시라도 반찬 뚜껑을 안 덮으면 바퀴벌레가 김치찌개 안에서 수영을 하는 곳이었다.

더구나 반 지하집이라 하늘이 보이는 것이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들의 다리가 보여서 낮이나 밤이나 문을 열어놓을 수 없는 곳이었다. L씨는 미국가면 남편이 돈이 있을테니 본인이 모아둔 돈을 혼자서 고생을 하면서 자식들을 키워온 어머님께 드리고 온 터라 수중에는 5천불밖에 없었다. 그 돈을 남편에게 주니 남편은 돈을 받자 실망한 얼굴로 묻는다. 직장생활을 그렇게 오래했는데 돈이 이것밖에 없느냐고. 그날 밤 L씨의 가슴은 무너져버리고 미리 알아보지 않고 무작정 미국으로 들어온 자기 자신을 탓하며 뜬눈으로 하룻밤을 보냈다. 그리고 결심을 했다. 내가 두 번째 실패를 해서 엄마를 아프게 해서는 안 되니까 최선을 다하자.

미국에 도착한지 2주째 L씨는 가까운 한인상가를 찾아다니며 직장을 찾기 시작했고 남편은 사업하다가 남의 집에서는 일하기가 쉽지 않다며 또 다른 사업구상을 했다. 재정이 없다며 능력 있는 여자들도 많았는데 L씨의 순수함이 좋아서 결혼을 했는데 후회가 된다며, 가슴 아픈 말을 쉽게 하는 것이다.

L씨는 영어가 안 되니 한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웨이트레스로 열심히 일을 하여 돈이 생기는 대로 남편의 사업자금을 모아주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모아주어도 남편은 항상 돈이 모자라 하고, 또 하는 일마다 잘 안되어 가니까 그럴 때마다 능력 있는 여자하고 결혼 못한 자기 자신을 한탄하며 술로 지냈다. 그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딸아이하나가 생기고 그 딸아이도 아빠의 치졸한 행동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아이로 시간만 나면 밖으로 나가서 결국에는 갱 멤버들하고 어울리더니 틴에이저 나이에 아프리칸 아메리칸 남자친구의 아기를 낳고 지금은 그 아기를 남자친구 부모에게 맡겨놓고 집을 떠난 지 오래이다. 그렇게 생활력이 없던 남편의 언어폭력, 감정폭력을 받으며 살아왔던 L씨가 그래도 참고 살아왔던 것은 홀로 사시며 평생을 자식행복하기만을 기도하던 어머님 때문이었으나.

갱년기에 들어서서 감정의 기폭이 심해지고 마음의 화평이 없던 L씨가 별 볼일 없이 마누라 비평하는 것으로 삶을 소비해온 남편의 비하된 말투에 폭발을 하고 나에게 전화를 한 것이다. “선생님 제가 지금 죽을 것 같아요. 그래서 나는 딴 데 가지 말고 우리집으로 와요.” 혹시 딴 마음먹을까봐 집으로 불렀었다. L씨의 남편은 너무도 쉽게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부인에게 심한 언어폭력을 하는 것이다. “네가 뭘 알아? 그러면 그렇지! 그럴 줄 알았어! 원래 가난한 가정에서 살아서 그런 것은 알 수 가 없지! 너네 식구들은 다 똑같은 인간들이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주면 “네가 뭘 잘하는 것이 없는데 음식이라도 잘해야지!”

이혼만이 살길이라고 이야기를 하는 L씨에게 어떻게 조언을 하여야할까? 그리고 상처받은 그동안의 시간은 어떻게 보상을 받게 해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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