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지나 씨, 내가 근사한 차 한대 사 줄게요”

“레지나 씨, 내가 근사한 차 한대 사 줄게요”


K씨는 내가 프런트데스크에 잠깐 앉아있는 것을 보고 (우리 사무실은 카운슬러들이 하루에 한 시간씩 돌아가며 프런트데스크에 앉아서 일을 합니다) 기회는 이때다 싶어서 문을 열어 달라고 합니다. 규정상 우리 사무실의 고객이 아니면 문을 열어줄 수가 없지만 어쨌든 이분은 우리 사무실에서 운영하는 shelter에서 살고 있으니까 잠깐 들어오는 것은 용납이 됩니다.

사무실에 들어오려면 문 앞에 있는 scanner(검색기)에 우리 사무실에서 발행해준 노란색의 카드를 검색기에 갖다 대면 밖에서 들어오고자 하는 사람의 신원이 누구인지 프런트데스크에서는 다 알 수가 있습니다. K씨는 로비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저를 보더니 “레지나 씨, 제가 지금 올림피아에 있는 장관 00 씨에게 편지를 보내니 이 편지 답장이 오는 대로 레지나 씨에게 진 신세를 갚겠습니다.” 그러면서 5장이나 되는 편지를 fax로 Olympia 주정부사무실로 보내달라고 합니다. 자주 이런 일이 있었던 터라 편지를 받아서 “나중에 시간 있으면 보내드릴게요.” 하고 달래보지만 고집이 센 K씨를 이길 재간이 없습니다. 그래서 옆에 있는 fax machine으로 k씨의 편지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편지의 내용은 정말 황당하고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K씨가 쓴 편지의 내용에는 레이건 대통령시절 K씨가 정부에게 몇 빌리언 달러를 꾸어주었는데 지금까지 돈을 갚지 않으니 빨리 갚지 않으면 법적인 책임을 물어서 고소를 하겠다는 이야기입니다. k씨는 또 저희 사무실 2층에서 지금 정부각료 회의가 열리는 중인데 대통령조지 부시가 자기에게 회의에 참석해달라고 연락이 와서 빨리 2층 회의장으로 올라가야한다고 서두르며 2층으로 안내해달라고 합니다.

K씨와 저하고의 인연은 참으로 긴 시간입니다. 다운타운 시애틀사무실로 출근을 하던 어느 날 차를 파킹하기 위해 파킹랏을 찾으려고 두리번거리는데 파킹랏 한구석에 두꺼운 골판지를 깔고 이불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까맣다 못해 먼지로 덮인 이불을 덮고 누워 자고 있는, 살짝 보이는 얼굴을 보니 동양인의 모습인데 더 자세히 들여다보니 예전 제가 근무하던 사무실에서 저를 만나던 k씨였습니다. K씨는 배가 고프다면서 도움을 청하였고 마침 그때가 한국일보에서 하는 불우 이웃돕기 성금(한국일보에 감사한 마음입니다)을 분배하던 때라 이 분 이름으로 돈을 타서 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분의 정신상태가 건강하지 않아서 돈을 다룰 수 없을 것 같기에 직원들과 의논한 후에 다운타운에 있던 일차집이라는 한국음식점에다 매번 식사할 수 있는 쿠폰을 만들어 드렸습니다.

얼마 후 제가 이분이 얼마나 식사를 잘 하시는가 확인 차 들러보니 식사를 하라고 준 음식쿠폰으로 술을 드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가 주인아주머니에게 ‘왜 술을 주었느냐고 물어보니 k씨가 술을 주지 않으면 다른 손님이 있는데 소리 지르고 법석을 피워서 그랬노라고 하네요. 술을 먹는다면 다시는 음식쿠폰을 안주겠다고 k씨에게 반 협박을 하니 다시는 술 안 먹겠다는 다짐을 받았습니다. 그런 후 일차집 아주머니와 약속을 정하여서 술은 절대로 못주게 하고 쿠폰도 하루 한 개씩만 드렸습니다. 왜냐하면 본인이 부지런만하면 공짜로 음식 먹을 수 있는 곳이 다운타운에 얼마든지 있으니까요.(그럼 왜 음식쿠폰을 만들어 드렸는가하니 k씨에게 늘 먹고 싶어 하는 따듯한 한국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고 싶었거든요.) 그리고 겨울철이라 두꺼운 잠바와 바지를 사서 옷도 갈아입게 하고, 늘 무엇인가 쓰길 좋아하시기 때문에 필기도구를 마련해드리기도 하였거든요.

그 후로 제가 사무실을 옮기자, 레지나 씨가 보고 싶다며 하루한차례씩 제가 옮긴 사무실로 찾아와 사무실 로비에 앉아서 저를 만나서 매일 매일 삶을 보고 하기도 하고, 자기가 계획하는 일도 얘기를 하시곤 했는데 거의 이 분의 이야기는 현실하고는 맞지 않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언제인가부터 정신 건강이 더 나빠져서는 정신과 치료를 받지 않으면 안 될 상황이 되었지만 본인의 거부로 도와드릴 수가 없어 잠이라도 편하게 잘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 사무실에서 운영하는 shelter에 등록하게 하고 k 씨에게 다짐을 주었습니다. “꼭 잠은 이 곳에 와서 자야해요.”

Shelter는 8시만 되면 불을 끄고 잠을 자게 하니까 불편하다며 처음에는 들락날락하던 k씨도 날씨가 너무 추워지자 이제는 매일 저녁 자기의 집처럼 마음을 정한듯합니다.

어느 날은 Shelter에서 자는데 이층 침대에서 자는 놈이 자면서 오줌을 싸서 자기가 고스란히 다 맞았다며 다시는 Shelter로 안 들어간다고 떼를 쓰시기도 하였지만 겨울철 워낙에 추운 날이라 다시 Shelter로 가시더군요.

매일 출퇴근하면서 k씨의 안전을 살필 수 있었는데 이제는 치료받지 않은 정신건강상태가 더 심해져서 본인이 정치를 크게 한다며 브리프백을 가지고 다니다가 가끔씩 누군가 자기를 미행한다며 뒤를 돌아다보며 불안에 떨기도 하고 거리를 걷다가도 무섭다며 우리 사무실 문을 두드리기도 하였습니다. 제가 한국 사람이라 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가끔씩 직원들과 점심을 먹으러 나가려다 길에서 추위에 떨고 있던 k씨를 보면 점심을 먹고자했던 마음에 갈등이 생겨 (내가 점심 한 끼 사먹을 돈이면 컵라면 한 박스로 몇 사람이 배부르게 먹을 수 있으니까요) 생략하고 사무실 옆 한국인부부가 운영하는 편의점에서 한국 컵라면 두개를 사서 K씨와 함께 먹기도 했습니다. 여러 가지 알아본 K씨는 한국에서 s대학을 나온 재원으로 예쁜 아내와 결혼하여 두 자녀가 있었는데 망상 증세의 정신병이 심해지면서 거리로 나서게 되었는데 집에다 아무리 붙잡아 두어도 밖으로 나가니 가족들도 포기한 상태였답니다. 어느 날 K씨는 자기 가족들도 믿을 수가 없는 망상증세가 심해져서 가족들이 있던 오레곤 주를 떠나 시애틀로 오게 된 것입니다.

매일 출근하면서 보는 k씨가 점점 더 야위어가고 점점 더 알 수 없는 이야기가 늘어가서 마음이 아픕니다.

그런 K씨가 나에게 이번에 올림피아로 보낸 편지 답장이 와서 돈이 자기에게 오게 되면 레지나 씨에게 오픈카 한 대를 뽑아주겠답니다. 오래전에 오픈카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차 얘기를 하면서 오픈카 한번 타보고 싶다고 했던 내 얘기를 분명히 기억하고 있는 K씨… 때로는 정상인의 생각을 가끔씩 하는 k씨의 상태를 어떻게 자기 정신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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