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도 쓰레기 트럭의 법칙을 따르시나요?
이제 꿀맛같은 여름 방학도 경우에 따라서는 벌써 10주 중에서 3주, 즉 거의 3분의 1이나 지나고, “아니 벌써”를 외치는 부모님들과 학생들은 마음이 점점 바빠진다. 특히 올 가을에 고등 학교 시니어가 되는 가정들은 가슴 저 깊은 곳에 무겁게 자리 잡은 대학 입시에 대한 걱정이 시도 때도 없이 불쑥 불쑥 머리를 쳐들고 가슴을 아리게 파고 든다. 이러한 부담을 반영하듯, 이번 주중에 적어도 세명 이상의 어머님으로부터 거의 동일한 걱정을 들었다:
“어제 아이와 대판 싸웠어요. 자기는 보통 아이니까 큰 기대를 접으라는 거예요. 이제는 머리가 커서 말도 안 듣고, 대들기 까지 한다니까요,” “게임을 못 하게 했더니, 자기의 감정이나 사정은 생각도 안하고 점수만 올리라고 몰아 부친다고 문을 쾅 닫으며 반항을 하는 거예요.” 다른 한 어머니는 수화기 너머에서 “아니, 우리 애들은 도대체 누구를 닮았는지 하나같이 저에게만 못마땅한 감정을 퍼부어 대요. 제가 감정 쓰레기 하치장도 아니고 …” 불평을 하시다가도 “하지만, 저한테라도 그러니 다행이지요” 하시며 감정이 격해지신다.
이 어머님의 말씀을 들으며, 칼럼니스트인 데이빗 폴레이가 출간한 뉴욕 타임즈 베스트 셀러 ‘쓰레기 트럭의 법칙 (The Law of the Garbage Truck)’이 생각났다: 어떤 분이 택시를 타고 뉴욕 시내를 가다가 당한 경험. 어떤 덤프 트럭이 갑자기 차선을 바꾸다가 그가 탄 택시를 거의 박살을 낼 뻔 했다.
과장을 하자면 생명의 위협을 느낀 순간. 분명히 잘못을 한 그 트럭 기사 아저씨. 책임을 회피하려는 의도인지, 아니면 미안한 마음을 거꾸로 표현하는 것인지, 온갖 거친 삿대질을 섞어 한 바탕 욕설을 퍼부어 댄다. 택시 기사 양반, 그 까닭없이 화를 내는 인사를 그저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손을 흔들며 미소를 한, 두 방 가볍게 날려 준다. 마치 무하마드 알리가 성난 꼬뿔소처럼 저돌적으로 달려드는 상대방에게 벌처럼 잽을 날리듯. 그리곤, 나비처럼 사뿐히 자리를 뜬다.
달리는 차속에서 물었단다. “아니 잘못은 저 사람이 했는데, 왜 그냥 웃기만 하셨어요?” 보기에도 온화해 보이는 이 분의 말: “모든 사람의 마음은 무엇인가를 담는 짐차와도 같아요. 많은 경우에…쓰레기 덤프 트럭처럼요. 쓰레기 트럭은 쓰레기가 가득 차면, 그것을 쏟아 버려야 해요.
” 가정에서, 친구와의 관계에서, 직장에서 쌓인 정신적 피로의 찌꺼기들, 직장 상사의 꾸짖음이 구겨진 종이처럼 쌓이고, 옆의 사람이 아무 생각없이 버린 담배 꽁초와도 같은 쓰디쓴 가십의 토막난 잔재들이 모여 더 이상 마음에 담아둘 여유가 없어질 때, 우리는 그것들을 쏟아 퍼부을 대상이 필요한 거라는 이야기였다.
필자의 사무실이 있는 벨뷰에는 부모님들의 학력이나 지위, 재력 등이 상당하신 분들이 많다. 가끔은 부모님 두 분이 모두 자신의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경우도 있다. 이런 가정들에서도 위에 말한 일들이 당연히 생긴다. 많은 경우, 자신의 일들에 너무 신경이 많이 쓰이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하니 자녀들의 교육에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지극 정성으로 교육에 전념하는 부모님들과는 차이가 많이 난다.
이분들과 만나 이야기를 하다가 보면 의례 많이 하시는 말씀, “뭐 꼭 좋은 대학 가야 성공하는 것 같지는 않아요. 자신이 좋아하고 잘하는 일을 하다가 보면 일반적으로 자신의 가정을 부양할 만한 자리는 차지하고 살게 되는 것이니까요.” 당연히 맞는 말이지만, 그 분의 표정속에서 자신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자녀에 대한 실망감과 회한이 잠깐 드러 난다. 이 분들도 쌓인 불만의 찌꺼기들을 자신의 자녀들에게 위에 언급한 트럭 운전자처럼 쏟아 부을 수도, 또는 아닐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부모님이 한국이나 미국에서 갖은 고생 끝에 이곳에서 상당한 지위나 부를 누리시는 가정 자녀들의 경우, 그들은 최상의 조건을 누리며 원하는 것을 거의 모두 지원해 주는 부모로부터 어린 나이에 좋은 차를 받아 타고 다니며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이런 부모님들의 경우 자녀들에게 대놓고 압박을 가하시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아 보이지만, 아이들의 마음은 그리 편하지만은 않고, 어떤 중압감을 더욱 느끼는 것으로 보인다. 어찌보면, “도대체 너는 어떻게 생겨 먹은 아이가 엄마 아빠는 닮지도 않고 이리 게으른거야.
그렇게 게임만하고 늘어져 있으면 뭐가 되겠니?”라고 감정의 쓰레기를 왕창 쏟아 부으신다면, 어떤 아이들의 경우는 혹시 도전적으로 마음을 고쳐 먹고 열심을 부릴 지도 모르지만, 많은 경우에는 기대와 현실 사이의 간극속에서 좌절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왜 우리 아이들은 그렇게 표날만큼 압박도 하지 않는 부모의 중압감을 지레 짐작하고 미리 쓰레기 냄새에 힘들어 하는 것일까? 각가지 다른 이유들이 있을 것이지만, 자신과 부모를 은연 중에 비교하는 마음에서 유래하는 것은 아닐까? 자신이 열심히 노력하지 않으면 오르지 못할 고지에 오른 부모들을 보며 자신의 게으름과 편한 환경에 젖어 인내를 모르는 상황에 미리 좌절감을 느끼는 것은 아닐까? 가정마다 다른 상황 속에서 가장 적절한 해결책을 찾아 내려 고민하시는 한 주가 되시기를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