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Way 교육 – 기생충이 숙주를 이겨내는 경우

필자가 이 글을 쓰고 있는 것은 월요일 아침이다. 아직도 어제 저녁 채널 4에서 방영한 오스카 상 시상식을 보던 여운이 동양화폭의 여백을 후려친듯한 진한 먹의 울림처럼 찐하게 남아 있다. 그 날 오스카 시상식이 있다는 것을 잊은채 이곳 저곳의 채널을 돌아 보다가 중간쯤이 이미 지난 시상식의 나머지 반토막을 맛보기 시작했다. 다행스럽게도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 한국 영화 ‘기생충’의 봉준호 감독이 감독상을 받는 장면을 보게 되었다. 전설적인 흑인 영화 감독인 스파이크 리가 지명자들의 이름을 소개한 뒤, “오스카 감독상은 …”을 외치자 텔레비젼을 보던 아내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앉았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 나며 환호성을 질렀다. 봉 감독의 수상 소감 속에서 동료 선배 감독들에 대한 그의 배려를 보여 주는 듯해서 더욱 자랑스러웠다. 그 중 하나만 소개하면, “제가 어릴 적 영화를 공부할 때,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라는 말을 (책에서 보고) 가슴 속에 새겼었는데,” 이것이 바로 오늘 감독상 부문에 함께 지명된 후보들 중의 한 분인 선배 감독 마틴 코르세스 (The Irishman) 의 말이었다는 이야기다. 그 말을 들은 본인은 너무 감격적인 표정이었고, 참석자들도 두 선/후배에게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실력과 예의를 겸비했다고나 할까. 아뭏든, 한국인으로서 가슴이 뻐근한 기분좋은 밤이었다. 멀리 사는 아이들에게 우리 영화 ‘기생충 ( Parasite)이 한 때 기생하던 ‘숙주’를 물리치고, 오스카 감독상과 작품상을 받았으니 한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여겨도 좋겠다”라는 카톡 메세지를 날리니 녀석들 또한 태극기 이모티콘으로 즉답한다.

다시 바쁜 현실로 돌아 온다. 매년2월 15일은 우리 지역의 유덥이 편입생 지원 입학 원서를 마감하는 날이다. 워싱턴 주민의 세금으로 일부 운영되는 주립 대학답게, 커뮤니티 칼리지나 다른 4년제 대학에서 워싱턴 대학으로 옮겨 공부하기를 원하는 편입 학생들에게 유덥은 정원의 30% 정도를 할애할 정도로 우대한다. 이러한 시스템을 알고 있는 학생들 중에 유덥에 합격할만한 또는 합격한 학생이지만, 자신이 원하는 전공에 들어갈 자신이 없는 학생들의 경우, 좀 더 좋은 학점을 받기가 용이한 커뮤니티 칼리지에 진학해 올 A를 받고 유덥의 공대나 비지니스 등의 전공에 편입을 하려는 학생들이 상당수 있다.

이와는 반대로, 유덥에 재학 중인 학생들이 엔지니어링이나 비지니스 프로그램의 인기가 하늘을 찔러 이러한 프로그램에 들어 가기가 너무 어려우니 역으로 다른 대학으로 편입을 하는 학생들이 생겨나는 기현상도 있었다. 2018년 이전에는 한 학년 약 6천 5백여명 중 매년 약 2천여명이 엔지니어링에 들어가기를 희망하는데, 바이오 엔지니어링에 들어가려면 1학년 과목들에서 대부분 A를 받아야 하고 지원자의 약 반 정도만 합격을 했으니 타대학으로 옮기는 것이 무리가 아니었다. 아주 높은 학점을 가진 학생들이 지원하는 비지니스 전공의 경우도 지원자의 약 40%, 컴퓨터 전공은 3분의 1 정도만이 합격을 하는데, 이 전공들에 지원하는 학생들의 자질을 볼 때, 상당히 낮은 비율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생기는 문제는 원하는 전공에 못 들어가고 불합격된 학생들이 재수, 삼수를 하며 대학에서 미아 생활을 하게 된다는 점이다.

비지니스 전공을 희망하는 학생들 중에서 합격이 안된 학생들은 보통 경제학 전공을 백업 플랜으로 생각하는데, 경제학 전공도 약 3분의 2만 합격시키니 참 이들에게 인생은 고달프고, 대학 생활의 자유와 재미는 생각도 못하며, 도서관에서 자정에 가깝게까지 공부에 열을 올려야 하는 것이다. 그나마 컴퓨터 전공 희망자들에게 희망적인 소식은 주정부와 민간 기업들의 지원으로 유덥은 컴퓨터 학과의 건물을 한 동 더 지을 수 있게 되어, 정원이 크게 늘어난다는 점이다.

유덥측은 이러한 역편입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2018년 학번부터는Direct to College admission을 시작해 공과대 신입생 정원의 절반 정도인 400여명을 신입생으로 선발해 일년 또는 이년간 공대생으로서 수업을 들은 뒤 자신에게 맞는 공대 전공 (컴퓨터 공학, 전기, 토목 공학 등등)에 들어가는 제도를 시행했었다. 하지만,  금년부터는  이 제도를 더욱 강화해, 컴퓨터 사이언스처럼,  편입생을 위한 정원외의 대부분을 신입생 지원자에서 선발한다. 그러니 이제는 유덥에 다른 예비 전공으로 입학해 컴퓨터 사이언스 학과나 엔지니어링 전공에 들어갈 확률이 거의 없어진 셈이다.

이러한 STEM 프로그램 인기의 주요인은 물론 졸업후 직장을 잡기가 용이하다는 것인데, 역으로 인문학 전공자의 숫자가 점차 줄어드는 것은 그 반대의 이유이다. 작년 시애틀 타임즈의 보도에 의하면, 2007년 이래 미국 대학의 역사와 영문학 전공자의 숫자는 각각 45%와 50%가 격감했고, 유덥의 경우 2008년 이래 STEM 전공자의 비율은 37% 증가한 반면, 비 STEM 분야는 13%가 줄었다. 그 결과, 이전에는 유덥의 STEM 전공자 숫자가  비 STEM 전공자의 반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둘의 숫자가 거의 비슷해진 상태이다. 이것은 인문학의 쇠퇴를 초래할 뿐만 아니라, 대학의 재정에도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현저한 예로, 전기공학 과목 1크레딭을 가르치는데 소요되는 비용은 $410인데 비해, 사회학 과목 1크레딭에 소요되는 비용은 $176에 불과하다. 그런데, 유덥은 각 과목당 학비를 동일하게 책정해 부과하고 있으니 대학들의 입장에서는 재정에 문제를 초래한다고 아우성을 치는 상황이고, 특정 공학 전공에의 지원자 집중 현상은 각 대학들이 해결해야 할 중대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역발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영화나 다른 인문학 전공으로도 재능이 있다면 과감하게 선택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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