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Way 교육 – 하버드 합격 취소를 불러 온 과거의 언행

     요즘엔 어느 공적, 사적인 모임을 막론하고 사람이 모인 자리엔 의례껏 셀폰 벨이 울리는 소리나 “카톡”하는 소리에 나도 몰래 내 전화가 사일런트나 진동으로 되어 있는 지를 확인하곤 한다. 필자의 사무실에서 한 학부모님과 상담을 하던 중에, “카톡”하는 소리에 놀라 황급히 전화 소리를 줄이고, 미안하단 사과를 한 뒤에도 내내 말씀을 나누던 학부모님께 교양인의 기본(?)을 못 지킨 것에 대해 죄송한 마음을 가졌던 적도 있었다. 그 이후에 “카톡”하는 좀 경박스럽게 “카랑 카랑하고 톡톡 쏘는” 소리를 다른 것으로 바꿨다. 사무실에서 아내가 준비해 준 맛있는 점심을 먹는데, 그 바뀐 알림음 소리가 울린다. 확인해 보니 서울의 동생이 매번 보내 주는 기도 편지및 서울 소식이었다. 우리 민씨네 가족 모두에게 “전달”하는 이 편지는 거의 항상 심금을 울리거나 깊이 생각하게 만드는 내용들이 많았기에 점심을 즐기는 시간을 방해받았다는 짜증난 마음을 접고 오늘도 기대하는 심정으로 주욱 읽어 내려 갔다.

     6·25전쟁 발발 69주년을 맞아 어느 신문의 사설로 실린 이야기를 보내온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어제 6·25 유공자를 초청한 자리에서 우리 선배들이 “북한의 침략을 이겨냄으로써 대한민국 정체성을 지켰다”고 말했다. 6·25가 북한의 침략이었다는 것은 당연한 사실이긴 하지만 문 대통령이 이를 처음 언급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 김정은은 지난주 중국 국가주석으로서는 14년 만에 방북한 시진핑과 함께 조중우의(朝中友誼)탑을 참배한 뒤 “조선(북한)이 침략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중국 인민지원군이 치른 용감한 희생을 영원히 기억하겠다”고 말했다. 중국은 6·25를, 북한을 도와 미국에 대항한 항미원조(抗美援朝) 전쟁이라 부르며 북한이 침략당한 것처럼 호도해왔다. 문 대통령의 ‘북한의 침략’ 언급은 북한과 중국이 6·25를 우의 회복의 잘못된 상징으로 이용하는 데 대한 대응의 성격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보수와 진보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상황에서,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작금의 한국내 정치상황에 대한 호불호나 진위 여부를 논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나 지난해 이 맘 때 동생이 보내준 카톡의 기도 편지가 생각나 여기 싣는다.

     이 편지에는 한국 전쟁에 참전해 싸워준 에티오피아 군인들에 관한 가슴이 찡한 사연이 들어 있었다: 에티오피아는 1935년에 이탈리아의 침공을 받아 셀라시에 황제가 영국으로 망명해 세계 각국에 도움을 호소했으나 어느 누구도 이 작은 나라를 선뜻 도와주는 나라가 없었단다. 마침내 1941년 이탈리아를 몰아내고 유엔이 설립되자 셀라시에 황제는 “우리가 어려울 땐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지만, 앞으로는 우리와 같은 나라가 나오지 않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 약한 나라를 도와주자”는 집단안보를 주창해 받아들여졌다. 이어, 1950년에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한국을 도울 것을 강력히 주장했고 자신도 근위병을 파견해 싸우도록 했다 한다. 이 부대를 파병할 때, 황제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세계 평화를 위해 가서 침략군과 싸워라.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 이들은 16개국의 참전 부대중에서도 가장 용감하게 싸웠고, 그 결과 참전한 6,037명 중 123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부상자를 냈지만, 단 한 명의 포로도 없이 253번의 전투에서 253번의 승리를 거두었다 한다. 전승의 이유는 이기든지 죽든지 둘 중 하나만 선택했기 때문이란다. 우리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로만 기억하는 에티오피아인들의 희생의 대가로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닌가?

     지난 해 이맘때 쯤, 시애틀 텔레비전의 로칼 뉴스 시간에 본 흥미로운 장면들과 이 기도 편지의 내용이 오버랩 되었다. 오래되어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한국전쟁의 기념일이 다가오니 어느 방송사가 기념 특집을 만들어 방송한 것으로 생각된다. 워싱턴 특별구에 있는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에 쓰인 “자유는 대가가 없이 얻어진 것이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라는 어구를 소개하며 이 전쟁에서 스러져간 미국의 참전 용사들을 기리는 프로그램이었다. 세계의 역사를 뒤돌아 볼 때, 자유를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친 많은 순국 선열들의 피가 없이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가 결코 가능하지 않았으리라는 이 다큐멘타리의 주제는 보수 꼴통들만의 생각은 단연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잊혀진 전쟁’으로 생각에 잠겨 있는데, 이번에는 이메일이 전송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음이 “띠리링” 울린다. 올 해 하버드에 합격한 카일 카슈브라는 학생이 고교 일학년때 소셜 네트 웍에 올린 인종 차별적인 내용의 글들이 드러나 합격이 취소되었다는 내용의 메일이 필자가 정기적으로 받아 보는 기관으로부터 배달된 것이었다. 자신의 어린 시절 일시적인 생각을 글로 써 내 뱉어 두고는 뇌리에서 “잊혀진” 것이었을텐데, 결정적인 순간에 튀어 나와 발목을 잡은 격이다.

     내용인 즉슨, 카일이라는 이 학생은 작년 2018년 2월 퇴학생이 저지른 총격 사건으로 17명이 사망한 플로리다의 스톤맨 더글라스 고등학교 출신으로, 이 사건 후, 트럼프 진영의 논리와 유사하게 총기 소유를 옹호하는 활동을 벌여 일약 유명해졌다. 이런 경력탓인지 올 해 하버드에 입학을 허락 받았다 (흥미롭게도, 이 학교의 동급생으로, 반대쪽인 총기 소유 금지를 주장한 다른 학생인 데이빗 호그 역시 올 해 하버드에 합격한 바 있다). 얼마전, 카일의 친구가 온라인에 인종차별적인 내용이 담긴 카일의 옛글을 온라인에 올려 문제가 되었고, 하버드 입학 위원회는 모임을 갖고 이를 심사한뒤, 합격을 취소하기로 결정했다는 내용이었다.

잊혀진 전쟁의 상흔은 잊지 말고 기억해 현재의 길잡이로 삼고, 잊혀진 잘못은 언젠가는 세간에 드러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며, 오늘도 역사속에서 배우며 겸손하게 살아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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