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한 미국 대학의 입학 사정

지난 8월 말, 여름의 따가운 햇살들이 그 힘을 잃어갈 즈음에, 옛 소련 연방 시절엔
그루지야, 지금은 조지아라고 불리우는 나라를 방문했다.
그곳에 입국하기 전에 터키의 유서깊은 도시인 이스탄불에서 이틀을 머물렀다.
터키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 명소라고도 할 수 있는 교회당/사원인 하기아 소피아
근처의 한 호텔을 예약해 두었기에 긴 비행기 여행에 지친 몸을 이끌고 찾아갔더니
강한 근동의 담배 냄새가 밴 조그만 호텔방은 안락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기대에 차있던 아내와 함께 편치않은 마음으로 여행 첫날을 지냈다.

한 번 생긴 불편한 마음은 쉽게 가시지 않는 법. 조지아에서 방문한 한 가정의 일상은
우리네
60년대 이전의 푸세식 변소보다 더 열악한 화장실로 대표되는 주거 시설과
따가운 햇볕과 언어불통으로 선교 여행이 아니었다면 당장 뛰쳐 나왔을 성 싶은
열악한 환경이었다
. 그러나, 그 집의 볕이 잘 드는 벤치 위에 놓여진 아이의 기저귀
(우리네의 하기스와 비슷한 종류로 보이는)는 몇번이나 쓰고 말리기를 반복했을
자죽이 남아 있어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 이 댁에 기저귀를 좀 선물해야겠다 싶어
가까운 동네의 가게에서 만난 풍경은 이 동네분들의 사정을 평균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 30-40개들이쯤 되어 보이는 박스가 뜯어져 펼쳐진 기저귀 하나가 속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
메롱, 날 박스채 살 수 있으면 사봐라하며 혀를 낼름 내밀고
있는듯 보였다
. 우리 동네의 코스코에서 박스로, 그것도 여러개를 한번에 사는 광경을
이들이 보면 무어라 말할까 생각하며 괜히 눈시울이 붉어졌다
. 초기 기독교 시절의
그리스도인들처럼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며 더불어 사는 사회가 바람직한 사회의
전형이라고 생각할 때
, 앞으로 이들을 좀 도울 수 있는 일을 진지하게 고려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돌아왔다
.

귀국해 사무실로 돌아오니 현실의 일들이 기다리고 있다. 바쁜 일상이 몰려온다.
바로 대학들의 입학 원서 마감일이 손에 잡힐듯한 저만치에서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이다
. 11 1일에 대부분 명문 사립대들의 조기 전형, 1115일에는 유덥,
1130일에는 버클리 대학을 포함하는 서부의 명문 캘리포니아 대학들의 신입생
원서 접수 마감일이다
.

이런 바쁜 상황속에서도 앞서 만난 저 먼 나라의 안스러운 상황이 미국 대입 사정
방식과 오버랩되어 다가온다
. 미국의 대입 제도에 관심이 있으신 분이라면,
대부분의 경우, 미국 대학의 신입생 또는 편입생 선발을 위한 사정 방식은 통괄적
사정 방식
(Holistic/Comprehensive Review)임을 아신다. 입학 원서에는 지원자 부모의
학력
, 인종, 해당 대학의 졸업생인지의 여부 등을 묻는 난이 있는데, 이 질문들의
쓰임새는 그저 단순한 개인 정보 수집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 ,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온갖 혜택을 누리며 편안히 공부해 당연히 좋은 결과를 이루어 냈는지
,
부모님이 경제적으로 어려우시거나, 체류 신분에 법적으로 하자가 있어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난관을 극복하고 훌륭한 결과를 이루어냈는 지의 여부 등 여러가지 상황들을
고려한다는 의미이다
. 대입 카운슬러로서 일하다 보니, 가정 형편이나 체류 신분
때문에 걱정하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경우가 많다
. 자신들의 불편함은 충분히
견딜 수 있으나 자녀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니 밤잠을 이루시지 못한다는 하소연을
하신다
. 그러나 자녀가 열심히 고교 4년을 보낸 경우, 돈이 없어 대학 공부를 못하게
되는 경우는 별로 없다
. 적지 않은 수의 명문 대학들은 지원자의 성적이 아닌 가정
형편만을 고려해서 재정 보조를 제공한다
. 함께 같이 더불어 사는 모든 이의 사정을
고려하는 인류 공동체의 정신이 아닌가
?

더 나아가, 이러한 대학들은 입학 사정에서 가정 형편이 좋지 않아 재정 지원이
필요한 학생들과 등록금 걱정이 없어 재정 지원을 신청하지 않는 부유한 학생들을
차별없이 사정한다
. , 다른 능력은 부잣집 아이와 비슷한데, 가정 형편이 어려워
자기네 대학의 재정에 도움이 안된다는 이유만으로 불합격을 시키거나 그 반대의
경우라고 합격시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 전국의 35개 명문 사립 대학들의 경우에
재정 지원 여부에 상관없이
(Need Blind라고 함) 합격/불합격을 먼저 결정하고,
일단 합격이 된 학생에게는 전액이든 소액이든, 모든 필요한 비용에서 그 지원자의
가정이 낼 수 있는 만큼의 액수
(Expected Family Contribution)를 뺀 나머지를
대학측이 부담한다
. 부모님의 재정상태, 부동산이나 주식, 지원자의 재정 상태 등과
필요 생활비
, 대학에 재학중인 다른 자녀에게 소용되는 비용 등을 전체 수입에서
빼는 방식으로
EFC를 산정한다. 이러한 재정 보조 시스템의 적용에 따라, 많은
대학들이 가계 소득이
6만불 정도 이하의 가정 출신 학생에게는 전액 장학금을
지원한다
. 게다가, 재정 상태가 풍족한 명문 대학들의 경우에 이 재정 지원이 돈을
빌려 주는 것
(Loans)이 아니라 무상 지원(Grants)이라는 점은 정말 매혹적이라
할만하다
.

또한, 미국의 최고 명문 대학들 중 하버드, 예일 등을 비롯한 몇몇 대학들은 외국인
유학생이나 불법 체류 학생들에게도 내국인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과 똑같은 최상의
재정 보조를 제공한다
. 초기 기독교 시절의 그리스도인들처럼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기는 쉽지 않다 하더라도
, 적게 가진 이들의 시정도 생각하며 사는 것이
현실적으로 바람직한 사회의 전형이라고 생각할 때
, 공평한 입학 사정 방식이요
좋은 재정 보조 시스템임에 틀림없다
. 가정 형편이 바닥을 치면, 전액 장학금으로
상승할 기회가 있으니 힘을 내시라
. 언제나 역전승의 기회는 있는 법이다.

돌아오는 길에 이스탄불의 똑같은 호텔 같은 호수에 하루를 묵었다. 특급 호텔이
부럽지 않았다
. 그 불편함과 어색한 냄새는 어디로 사라졌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