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쟁과 에티오피아

독자들께서 이 칼럼을 읽으시게될 25일은 고국 대한민국에서 6.25라는 비극적인
전쟁이 일어난 지 67년 째가 되는 날이다. 미국에 와 있으니 누가 표나게 기념식을 하는
것도 아니고, 한인 사회의 행사에 발을 끊은지도 오래여서인지, 우리 대한민국의
역사만이 아니라 세계사의 흐름에 큰 궤적을 그은 이 전쟁에 대해 아주 잊어 버리고
살았다. 하긴 미국 사람들이나 역사학자들은 이 전쟁을 잊혀진 전쟁
(The Forgotten War)이라고 부른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난지 얼마되지 않아 일어난데다가, 비록 3만7천여명의 전사자가
생겼으나 미국 전체에 끼친 영향이 바로 전의 세계 대전에 비해 거의 미미한(?)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이차 세계 대전에서는 거의 41만명의 미군 전사자가 있었음).
게다가, 전쟁에서 완전한 승리를 한 것도 아니고 휴전으로 정전이 되었으니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별 소회가 없는 것이리라. 필자 역시 이 전쟁을 직접 겪지도, 또는
부모님이나 주위분들로 부터 직접 이 전쟁에서 겪은 상처나 쓰라림에 대해 자세히
들은바도 없었기에 이 동족상잔의 비극이 역사 시간에 배워서 외운 머릿속의 전쟁에
불과했고 그 지식마저도 타향에서 점점 잊혀가던 것이 사실이었다.

며칠 전 서울의 동생이 보내준 기도 편지에는 이 전쟁에 참전해 싸워준 에티오피아
군인들에 관한 가슴이 찡한 사연이 들어 있었다
: 에티오피아는 1935년에 이탈리아의
침공을 받아 셀라시에 황제가 영국으로 망명해 세계 각국에 도움을 호소했으나
어느 누구도 이 작은 나라를 선뜻 도와주는 나라가 없었단다
. 마침내 1941
이탈리아를 몰아내고 유엔이 설립되자 셀라시에 황제는
우리가 어려울 땐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지만
, 앞으로는 우리와 같은 나라가 나오지 않도록 모두가 힘을 모아
약한 나라를 도와주자
는 집단안보를 주창해 받아들여졌다.
이어, 1950년에 한국 전쟁이 일어나자 한국을 도울 것을 강력히 주장했고 자신도
근위병을 파견해 싸우도록 했다 한다
.

이 부대를 파병할 때
, 황제는 이렇게 말했다한다. 세계 평화를 위해 가서 침략군과
싸워라
.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
이들은 16개국의 참전 부대중에서도 가장 용감하게 싸웠고, 그 결과 참전한 6,037명 중
123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부상자를 냈지만, 단 한 명의 포로도 없이 253번의 전투에서
253번의 승리를 거두었다 한다. 전승의 이유는 이기든지 죽든지 둘 중 하나만 선택했기
때문이란다
. 우리가 아프리카의 가난한 나라로만 기억하는 에티오피아인들의 희생의
대가로 우리는 자유를 얻은 것이 아닌가
?

지난 해 이맘때 쯤, 시애틀 텔레비전의 로칼 뉴스 시간에 본 흥미로운 장면들과 이
기도 편지의 내용이 오버랩 되었다
. 오래되어 기억이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도
한국전쟁의 기념일이 다가오니 어느 방송사가 기념 특집을 만들어 방송한 것으로
생각된다
. 워싱턴 특별구에 있는 한국전 참전 용사 기념비에 쓰인자유는 대가가 없이
얻어진 것이 아니다
(Freedom is not free)”라는 어구를 소개하며 이 전쟁에서 스러져간
미국의 참전 용사들을 기리는 프로그램이었다
. 세계의 역사를 뒤돌아 볼 때, 자유를
얻기 위해 목숨을 바친 많은 순국 선열들의 피가 없이는 지금 우리가 누리는 이 자유가
결코 가능하지 않았으리라는 이 다큐멘타리의 주제는 보수 꼴통들만의 생각은 단연코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

이런 잊혀진 전쟁으로 생각에 잠겨 있다가 약속이 있다는 것도 잊고 있었는데,
한 어머님이 아들 녀석을 데리고 사무실로 들어 서신다. 처음 뵙는 분인데다가 필자가
약속을 잊고 있었던터라
어색한 인사를 나누고는 학생을 자세히 살펴 볼 여유를 찾았다.
남쪽 지역의 한 시골에서 벨뷰로 최근에 이사한 가족이었는데, 두 지역의 학력 차이에
대한 걱정이 상당했다
. 한국에서 미국에 온지 얼마되지 않아 이전의 학교에서도 고생이
심했는데
, 개학을 하면 공부잘하는 아이들 틈에서 어떻게 지낼까에 대해 생각하면
잠이 잘 안 올 지경이란다
. 이 고등 학생에게, “마침 방학이니, 열심히 대비를 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 있지 않은가
? 지금 우리 고국 대한민국이 누리는 자유가 많은 사람들의
희생 위에서 만들어 진 것처럼
, 개학후 학교 공부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려면
올 여름의 자유 시간을 희생하고 공부에 전념해 보는 것이 어떠냐
고 조언을 했다.

그렇다. 더 나아가면, 학생들이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서는,
다시 말해 대학에서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는 자유를 얻기 위해서는 편안함과
자신의 욕구를 만족시키려는 본능과의 치열한 투쟁을 벌여 이겨야만 얻을 수 있는
결과라는 것은 말하지 않아도 분명한 사실이다
. 방학동안 대입 에세이 작성에, 아니면
대입 시험 준비에 코피를 쏟으며
(또는 잠을 쫒으려 허둥대다 커피를 쏟든지하면서라도)
열심을 다해야 한다. 여기에 더해, 만약 자신이 신앙이 있는 학생이라면, 자신의 신에
모든 노력의 결과를 맡기고 겸손하게 최선을 다한다면
, 방학이 끝나는 노동절 휴가의
끝자락에 이르러 제법 만족한 미소를 쓰윽 날릴 수 있는 경지에 달하게 될 것으로
확신한다
.

이 나이쯤 살아본 우리네 인생을 돌아볼 때
, 최선을 다하고 겸손하게 결과를 기다리면
십중팔구는 미소에 걸맞는 결과가 나옴을 알지 않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