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에는


독자들께서 이 칼럼을 읽으실 때는 지나간 한 해를 마감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는 시간일 것이다.
12월의 마지막 자정이 여느 자정과 그리 다르지 않고, 1월의 첫 햇살이 그 전의 아침
빛들과 매양 한가지이련만 우리네 인간들이 이런 인위적인 시간의 구분을 만들어 놓은
이유 중의 하나는 뭔가 구태에서 벗어나 새로운 시작을 열망하는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고생 끝, 행복 시작을 바라는 마음은 졸업이나 죽음이라는 말에서도 볼 수 있다는 생각이다.
졸업(Commencement)이라는 말이 중세 프랑스어의 Comencement (발음이 아름다우니 한번
소리 내 따라해 보시라: “꼬망스망,” beginning, start라는 의미)에서 유래했고 졸업 자체가
곧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죽음도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이 세상의 고난을 마감하고 천국의 새 세계로 들어감을
의미한다는 기독교적 사고의 관점에서라면 말이다.

지난 주 필자의 교회에서 지인의 장례식이 있었다.
장례 예식이 시작되기 전에 고인이 생전에 가족과 찍은 사진들의 슬라이드 쇼가 있었다.
행복의 정도를 비교하는 것 자체가 정말 의미없기는 하지만, 어느 가족보다 특별히
행복하고 다정한 가족의 역사가 그림첩으로 꾸며져 커다란 스크린에 펼쳐지는 것을
보고 돌아가신 분이나 남아있는 가족, 그리고 참석한 조객 모두가 마음속으로 흐느꼈을 것이다.
하지만, 돌아가시기 전에 극심한 고통으로 힘들어하신 고인에게는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편안한 일일까라는 생각에 미치자
모두 애달픈 마음이 덜해지는 것을 느꼈으리라.

인간의 구비 구비에서 일어난 여러 행복한 순간들의 기록이며 그 순간들에
덧붙여진 기억들의 파편인 한 장 한 장의 슬라이드가 이어져 한 가족의 사랑의 연작시를
꾸며 주는 것을 보며 떠오른 싯귀는 침례교 목사님인 로버트 헤이스팅스가 1980년에 쓴
“The Station (종착역)”이라는 시였다.

아시는 분들도 많을 것으로 생각하지만, 필자의 졸역으로 여기 소개한다
(전문을 글자 그대로 번역하지 않았기에 원문을 원하시는 분들은
http://www.thestationessay.com/을 참조하시기 바란다):

“잠재의식의 저 깊은 곳에 우린 머나먼 대륙을 횡단하는 긴 열차 여행을 하고
있다는 소박한 느낌을 갖고 있다. 기차의 창가로 지나가는 자동차들, 철로변에서
손을 흔드는 아이들, 한가로이 풀을 뜯는 가축들, 발전소에서 뿜어나오는 연기들,
끝없이 펼쳐지는 목화밭과 옥수수밭, 평지와 계곡들, 도시의 건물들과 시골의
공회당을 보며 우리는 커피 한 잔을 즐긴다.”

하지만 우리의 의식속에 항상 꿈틀대는 것은 종착역에 대해서이다
모월 모시에 우린 목적지에 신나게 기적을 울리며 도달해, 휘날리는 깃발과 밴드의
환영을 받을 것이다. 그날이 오면 모든 아름다운 꿈들이 확연히 이루어질 것이다.
그곳을 기리며 쉼없이 우린 객실 내의 통로를 서성이며시계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그렇지 그곳에 도착하면, 모든게 이루어 질거야. 암, 그렇구말고 우린 다짐한다.
열 여덟살이 되면, 이번에 승진만하면, 우리 애가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벤츠 450SL만 사면, 은퇴 연금만 타면. 계속 다짐을 한다”

“그날 이후론 우리의 행복한 삶은 영원히 지속되는 거야.”
그러나 멀지않아, 우린 안다. 세상 어디에도 그런 종착역은 없고,

땅엔 한번 도달하면 모든게 한 번에 해결되는 그런 곳은 없음을.
여정은 기쁨이다. 그 종착역은 환상이다…그 역은 가까이 가는가하면
계속 멀어진다. 어제는 기억이며, 내일은 꿈이다. 과거는 역사이며,
내일은 하나님에게 속한 것이다.
어젯밤에 스러진 황혼은 내일의 어슴프레한 여명이다.
단지 오늘만이 사랑하고 살아가기에 충분한 빛을 준다.”

“그러니 어쩌랴, 지난 시간에 살며시 문을 닫고 열쇄를 치워버려라.
사람들을 몰아대는 것은 오늘의 짐이 아니라 지난날에 대한 회한이며,
올 날에 대한 두려움인것을. 회한과 두려움은 오늘을 사는 우리를 볶아대는
두 얼굴의 도적인 것을.”

“성경의 시편 118장 24절에 나오는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날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라는 말씀과 함께 생각할 때,
‘현재의 날들을 기쁘게 즐기라’는 경구는 참으로 맞는 말이지 않은가?”

“그러니 객실내의 통로를 서성거리거나 지나간 거리를 세지 마라.
그러기 보다는 강에 나가 수영을 더 하고, 산들을 더 오르고, 어린아이들에게
더 많이 뽀뽀하고, 밤에 나가 더 많은 별들을 세어 보라. 좀 더 자주 활짝 웃고,
가능하면 덜 울어 보라. 더 자주 맨발로 걸어 보며, 좀 더 자주 아이스크림을 먹어 보라.
더 자주 회전목마를 타 보라. 해가 넘어 가는 서산의 모습을 더욱 더 즐기라.
삶이란 우리가 지내는 대로 살아야 하는 것인걸. 종착역은 곧 올 것인 것을.”

우리 모두 올 한 해에 우리 아이들의 어깨를 좀 더 토닥여 주고,
우리가 만나는 이들에게 좀 더 활짝 웃어주고 마음 깊이 시랑하며, 소속한
커뮤니티에서–그것이 가정이든 교회든 비지니스이든 직장이든– 하나되어
서로를 격려하며 함께하는 현재의 날들을 즐겨 보시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