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갈 길이 더 좋은 길?

이 잡지를 펴드시는 주의 일요일인 5월 1일은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이 특정 대학에 등록을 하겠다는 의사표시를 해야하는 마지막 날로 National Decision Day라고도 부른다. 통계에 의하면 대학에 합격한 학생들의 70% 정도가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합격한 경우이며, 나머지 30%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은 경우라 한다. 이 후자의 학생들에게 5월 1일은 잔인한 4월의 정점을 찍는 힘든 날이었으리라 짐작이 된다. 하지만, 어떤 특정 시점에서 최선으로 보이는 선택이 후일에 돌아 보아도 제일의 선택이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로버트 프로스트가 그의 시 “가지 않은 길”에서 노래한 것처럼, 인생의 여정 어느 지점에서 우리는 선택의 기로에 놓이게 되고, 그 선택의 결과는 나중에 돌아 보면 지금의 상상과는 전혀 다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여기 그 일부를 조신권 교수의 번역으로 옮겨본다: “두 길이 누런 숲 속으로 갈라져 있어, 아쉽게도 두 길을 한꺼번에 갈 수 있는, 한 나그네가 아니기에, 나는 오래 서서, 한 길이 덤불로 꺾이는 데까지, 할 수 있는 한 멀리 바라보았네. 그러다가 매한가지로 아름답고, 풀이 우거지고 밟히지 않았기에, 더 낫지 않을까 하는 딴 길로 들어섰지, 설령 그리로 지나감으로써, 정말 똑같은 정도로 밟힐 테지만. 그날 아침 그 두 길은 모두, 검게 밟은 자취 하나 없는 낙엽에 덮여 있었네. 처음 길은 다른 날로 미루어 두었지! 그러나 길은 길로 이어진 것이기에, 다시 돌아올 가망은 없었지. 나는 이 이야길 먼 훗날, 어디선가 한숨지으며 말하게 되리라, 두 길이 숲 속에서갈라져 있어, 나는 결국 덜 다닌 길을 택하였고, 그리고 그것이 큰 차이를 만들었노라고.” 대학과 연관하여 많은 다른 갈래길들이 있겠지만, 여기 우리가 보기에는 순탄치 않았던 몇몇 험난한 길을 마지못해 (?) 택했으나 목표에 도달한 여정을 소개한다. 길 하나: 고등 학교를 자퇴하고, 대학 문턱도 밟지 못한 헨리 포드는 최초로 자동차 제작에 어셈블리 라인을 도입해 자동차왕이 되었고, 존 록펠러는 석유왕으로 당대 최고의 부자가 되었다. 길 둘: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시애틀의 프레드 허친슨 암 센터의 리 하트웰 소장과 패션계를 선도하는 캘빈 클라인, 영화 배우인 클린트 이스트 우드와 탐 행크스 등은 모두 커뮤니티 칼리지에서 시작해 꿈을 이룬 맹장들이다. 길 셋: 스티븐 스필버그는USC에 두 번이나 낙방하고 결국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의 롱비치 캠퍼스에 입학했지만, 이 대학도 중퇴했다. 인생의 꿈을 계속 추구해 마침내는 세계적인 영화 감독이 되었다. 길 넷: 마이크로 소프트의 설립자인 빌 게이츠 (하버드)와 폴 알렌 (워싱턴 주립 대학), 애플의 스티브 잡스 (오레곤의 리드 칼리지), 페이스 북의 마크 주커버그 (하버드), 오라클의 래리 알리슨 (일리노이 주립 대학), 델 컴퓨터의 마이클 델 (텍사스 주립 대학 오스틴 캠퍼스) 등 기라성같은 IT 산업의 주역들은 하나같이 대학을 중퇴했지만 자신의 꿈을 쫒아 열심을 낸 결과 지금의 위치에 올랐다. 5월 1일에 차선의 대학에 등록 통보를 했지만, 어떤 학생들은 아직도 다른 선택의 가능성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있는 경우도 있다.

제 1 지망 대학에서 대기자 명단에 오른 학생들인데, 사실 이들이 합격으로 전환될 가능성이 그리 크진 않지만, 아주 없는 것은 분명히 아니다. 제일 지망 대학의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린 경우에는, 원하는 학교에서 합격 통지를 기다리는 동안 손을 놓고 기다릴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 즉, 대학의 입학 담당자에게 전화를 하거나 이메일을 보내 전년도에 대기자 명단에서 입학이 허가된 학생의 숫자는 어느 정도였는 지 등을 묻고 (물론 많은 대학의 경우, 대기자 명단에 올랐다는 통보와 함께 전년도의 통계를 보내 주기도 함), 자신이 꼭 그 대학에 가고 싶다는 의사 표시를 하는 것이 좋다. 또한 원서를 제출한 이후에 상을 받았다거나 다른 업적을 이룬 것이 있다면, 지원 대학에 알려야 할 것이다. 이러한 노력으로 그 대학에 허가를 받으면 좋을 것이고 그렇지 않은 경우라면, 대학은 잘 알려진 곳에 들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기 보다는 자신에게 가장 잘맞는 곳에 들어간 후에 어떻게 공부하는가가 정말 중요함을 명심하면 될 일이다. 세상은 정말 성적순만은 아니니 말이다. 지원 대학에서 공감할 수 없는 결과를 통보받은 학생들이 진로 문제로 밤잠을 설치는 그런 계절이다.

만일 자녀가 아직도 대학의 입시 결과에 만족치 못하고 번민한다면, 위에 언급한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를 읽도록 권하시기를 추천한다. 세상에는 여러가지 다른 길들이 있고, 살면서 여러가지 선택을 해야하는데 설령 지금 택해야하는 길이 지금 이 시점에는 마음이 차지 않더라도 먼 훗날 돌아보면 어떤 선택이 자신의 인생을 가장 윤택하게 했는 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는 것을 이 시는 노래한다. 공교롭게도 위의 시를 쓴 프로스트를 포함해 빌 게이츠, 폴 알렌, 스필버그 등은 모두 비록 학교를 중퇴하고 학위를 받지 못했으나 나중에 모교 또는 다른 대학으로부터 세상에 기여한 공훈을 인정받아 명예 박사학위를 받았으니, 참 인간의 앞날은 알 수 없으며 지금 우리가 처한 상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자만하거나, 좌절에 빠져 자포자기할만큼 그리 막다른 길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는 듯하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