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혹스 코치의 용병술

밤사이 불어 닥친 강풍으로 전기가 나가, 발전기를 돌려 켠 비상등 아래 지난 주일 예배를 드렸다. 평소보다 훨씬 어두운 장소에서 드린 예배였지만, 다른 주일의 예배보다 훨씬 집중할 수 있어 목사님의 말씀이 더 깊이 있게 와 닿았다. 예배를 마치고, 집에 들어 가기 전에 점심 식사를 해결하는 것으로 아내와 마음을 모았다. 되도록이면 집으로 곧장 가 어제 맛있게 끓여 놓은 김치 찌개에 두부를 듬뿍 넝어 먹으면 건강에도 좋고 비용도 절약되니 일석이조 아니냐며 브레이크를 슬쩍 걸었으나 내 의견을 못 이기는 체 따라 주었다. 오로라 변에 있는 한 식당으로 향하는 길이 왠지 너무나 한산했다. 평소보다 손님이 눈이 띄게 적은 식당에서 음식을 시켜 놓고는, “일요일임을 감안하더라도 이렇게 식당도 거리도 한산한 건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아”라는 아내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날 있는 시혹스와 그린베이의 풋볼 게임이 생각났다.

음식을 먹는둥 마는둥하고 부리나케 집으로 돌아와 텔레비젼을 켰다. 마지막 쿼터도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인데 22대 7로 뒤지고 있었다. 그린베이의 벤치는 거의 승리를 확신한 듯 기세가 올라 있는 반면, 조급한 시혹스의 선수들은 실수 연발이었다. 맥이 빠져 그만 볼까 하던 중 이변이 일어났다. 터치다운을 한 후 기적적인 온사이드 킥으로 공격권을 가져오더니 15점 차이를 극복하고 덜컥 3점을 앞서게 되었다. 독자들도 아시지만, 결국은 연장전에서 시혹스가 승리했다. 승리후, 양팀 선수들의 기세는 10분 전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시애틀의 수훈갑인 쿼터백은 승리 직후의 인터뷰에서 “God has been always good!”을 외치며 하나님이 자신을 항상 선하게 대하심에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일흔이 넘은 시애틀의 코치는 잠시후의 인터뷰에서, 한참 지고 있을 때, 선수들을 어떻게 격려했느냐는 질문에, 한 순간도 선수들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았기에 우리가 진다는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저 선수들에게 조금 더 침착하면 기회가 틀림없이 온다는 믿음을 주려고 애썻다는 요지의 말을 했다.

우리 부모님들이 이 코치와 같은 믿음을 자녀들에게 갖고 있다면, 우리 아이들도 인생의 수퍼 볼에서 승리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우리 부모님들 중에는 아이에 대한 믿음보다는 자신의 경험이나 지식에 대한 믿음이 훨씬 크신 분들이 많을 지도 모른다. 우리네 한인 동포뿐만 아니라 미국 부모들도 마찬가지인데, 이러한 부모들을 일컫는 말들이 미국 매스컴의 교육난을 심심찮게 도배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첫째, 헬리콥터 부모 (Helicopter Parents)는 자녀 교육에 있어 자상함이 지나친 부모를 일컫는 말이다. 헬리콥터는 다른 비행기들에 비해서 지상에서 그리 멀지 않은 상공을 비행하기에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더 자세하게 관찰할 수 있는 이점이 있는데, 이 점을 비유하여 헬리콥터 부모라는 말을 만들어 낸 것이다. 즉, 자녀를 교육함에 있어 지나치게 세세한 것들까지 챙기고 간섭하는 부모님을 지칭하는 말이다. 물론 이것은 간섭이나 강요 (필자가 만들어낸 용어로 forge: 부모의 틀에 맞게 자녀를 맞추기 위해 강제하는 행태)이며, 보살핌 (nudge: 자녀를 팔꿈치로 슬쩍 자극하여 어떤 일을 하도록 계도하는 것)과는 차별되는 개념이다.

둘째로, 헬리콥터 부모님 보다 더 정도가 지나친 부모님을 비꼬는 말인 블랙 혹스 부모님 (Black Hawks Parents)이 사용된다. 블랙 혹스는 전투용 헬리콥터로 매가 지상의 먹이를 채고 자유롭게 재비상하듯, 지상에서 먹이가 이동하는 것을 꿰뚫고 있고, 경우에 따라서는 지상에 내려 가 먹이를 낙아채는 일도 밥먹듯하는 것을 비유한다. 다시말해, 자녀가 학교에서 또는 학교 밖에서 행하는 모든 일들을 꼬치꼬치 지나치게 간섭하는 것은 물론이고 때로는 학교의 카운슬러를 필요 이상으로 만나 벼라별 잡다한 것을 요구하거나 대입 원서의 에세이를 대신 써 준다거나 하는 몰지각한 부모님을 일컫는 말이다.

셋째로, 지상에서 가장 긴 탯줄 (the longest umbilical Code)이라는 재미난 말이 있다. 이것은 셀룰라 폰 등을 이용해 멀리있는 자녀의 일상을 하나 하나 지적하고 감시하는 행태를 지칭하는 것으로, 자녀가 대학이나 직장을 위해 먼 지방으로 떠난 경우에, 또는 같은 지역의 학교에 진학했으나 기숙사에서 거주하는 관계로 집을 떠난 자녀들에게 수시로 셀폰을 이용해 무엇을 하는 지 세세히 캐묻는 등의 지나친 보호를 하는 부모님의 행태를 아직도 못끊은 탯즐에 비유해 은근히 비꼬는 말이다.

우리 자녀들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이 쉽지는 않기에 위와 같은 부모님들의 태도가 나온다. 우리 자녀들은 아직 어리고 경험이 부족하니 실수하기가 쉬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시혹스 쿼터백이나 코치의 고백처럼 아이들을 어떤 상황에서라도 믿어주고 기대하며 격려하면 결국은 아름다운 열매가 맺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