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생각하는 올바른 자녀 교육법

출석하는 교회에서 주일 오후에 목사님과 함께하는 성경 공부반에 지난 몇 달간 참석하고 있다. 마침 지난주의 주제가 기독교인의 가정 안에서 부모 자식간의 올바른 관계를 어떻게 정립하는 것이 좋은지, 그리고 자녀 교육의 바람직한 방법론은 어떤 것인지였기에 여기 잠깐 소개한다. 성경이 말하는 이 주제에 대한 해결책을 간단히 요약한다면, 에베소서라는 성경의 한 부분에 나오는 구절들을 들 수 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있는 첫계명이니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이 구절들을 읽으며, 사용된 단어의 의미들에 대한 확실한 개념이 뚜렷히 파악되는 것은 아니었음에도 이것이 올바른 자녀 교육의 출발점이 될 수는 있겠구나라는 깨달음이 들었다.

크리스챤이 아닌 분들도, ‘부모와 자식간의 관계에서 자녀는 부모를 순종과 공경으로 대하고, 부모는 자식을 노엽게하지 않는 선에서 교양과 훈계로 가르친다면 세상에 무슨 가정 문제가 생기겠는가?’하시며 고개를 끄덕이실 것이다. 물론 ‘”노엽게 하지 말라”와 “교양과 훈계”라는 말이 정확히 뭘 뜻하는 거요?’하시며, 좀 더 진지하게 대응하시는 분도 계실 것이다. 우리 목사님의 가르침과 수업 시간에 참석자들이 내놓은 사항 등을 종합해 이것들의 의미를 아직 정리되지는 않은 상태이나 여기 보따리채 성급히 풀어 보인다.

먼저, 자녀를 노엽지 않게 하려면, 우선 무엇이 그들을 화나게 하는 지를 살펴 본 뒤, 그런 행동을 절제하면 될 것이다. 그러면, 어떤 행동들이 우리 아이들을 노엽게 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자녀를 극도로 화나게 만드는 것들 몇가지를 들어 본다:

먼저, 부모가 자녀에게 어떤 잘못을 지적할 때, 이성을 잃고 화가 난 상태에서 분별없이 꾸지람을 할 때이다. 자녀의 잘못이 화를 돋군 이유일 경우도 그렇지만, 만약 부부간이나 다른 관계의 불화에서 오는 감정 악화의 불똥이 아이에게 튄 것이라면 최악의 경우이다. 예를 들어 부부 싸움 뒤, 시끄러운 다툼의 여파로 자다가 깬 아이에게 ‘너는 누구를 닮아서 이리 공부를 안하고 잠만 처 자냐’고 나무라는 부모에게 아이들은 ‘아 이젠 잠 줄이고 공부 열심히 해야지’라는 동기 부여를 받을까? 둘째, 쌍스러운 언사나 모욕적인 말로 자녀를 몰아 세울 때이다. 특히 다른 아이들과 자녀의 단점을 비교하며 너는 왜 이 모양이냐고 언어 폭력을 행사할 때. 친형제나 자매간에도 비교 당하며 자란 아이들이 자신감을 부쩍 잃고 지냄을 보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셋째로, 신체적 폭력을 사용할 때이다. 자녀가 어리고 힘이 없으니 손찌검을 한다든지 집기를 던진다든지 하는 태도. 고등 학생이 된 아들 녀석에게 주먹을 휘두르시다가 손목을 잡혀 꺽히는 수모를 당하셨다는 모 아버님의 무용담은 듣고 흘려 버릴 한담이 아니다. 네번째, 변덕스럽고 비이성적인 태도를 보일 때이다. 즉, 기분 좋을 때는 같은 사안에 대해 그냥 웃고 지나치다가도, 울화가 치민 상태에서는 똑같은 일에 극도로 예민하게 반응 할 때 아이들을 혼란을 느낀다. 다섯째, 자신들은 전혀 하지 않는 일들을 자녀에게는 자녀라는 이유로 강요할 때 아이들은 화가 난다. 즉 부모님이 자신의 부모님을 존경하고 순종하지 않으면서도, 자녀들이 자신들의 말을 순종하지 않는다고 다그치거나, 아이가 공부 안 한다고 꾸지람을 하실 때, 다시말해 모범을 보이기는 커녕, 자녀와 부모는 다르기에 나는 안 해도 너는 해야 된다는 태도를 은연 중에 보일 때, 아이들은 절망한다. 마지막으로, 공공 장소나 다른 친구나 친지들 앞에서 잘못을 모질게 지적할 때 우리 자녀들은 노여움을 느낀다.

그러면, 왜 대부분의 부모들은 사랑하는 자녀들에게 이런 상식에 벗어난 일들을 할까? 첫쩨, 이러한 행동들 속에 잠재해 있는 부모들의 의식은 아마도 자녀는 내 소유라는 의식 때문일 수 있다. 너는 내 것이니, 내가 이렇게 고생하며 일해서 먹여 살리는 객체이니 내가 어찌해도 무슨 잘못이냐 또는 백보 양보해서 이런 것 쯤은 받아 들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잠재 의식의 발현이랄 수 있다. 둘째, 이것은 더 나아가 많은 부모님들의 경우, 내가 이렇게 너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다 너를 위한 나의 사랑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자기 위안을 삼는 지경에 이르게 되는데, 이 경지에서는 어떤 잘못된 비이성적 행위도 합리화가 되는 법이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잘못된 길을 가지 말도록 지적하는 것은 그 방법이 조금 과하더라도 결국은 자녀의 미래에 유익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자위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셋째, 이러한 사랑에 입각한 교정이라는 허위 의식은 잘못을 지적하는 방식이 과했다고 느끼는 경우, 다음번에는 똑같은 잘못에도 지적하기 보다는 그냥 넘어가주는 아량을 베푸는 단초가 된다. 그런데, 이것은 오히려 부모가 자녀에게 일관성이 없이 감정에 따라 혼을 내는 믿을 수 없는 존재라는 인식을 심어 주게 된다.

이런 문제들에 대해 생각을 진행시키다 보니, 정말 우리 자녀들을 노엽게 하는 일은 피해야 될 잘못된 일이라는 확신이 듭니다. 물론, 그렇다고 ‘자녀들에게 오냐 오냐 네가 옳다. 너는 특별한 아이야. 네가 최고이지’하며 칭찬만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자녀 교육에 임하는 것이 좋을까요? 위에 언급한대로, 주의 교양과 훈계로 하면 된다하니 이것이 과연 무엇일 지, 아니면 무슨 다른 제안이 있으신지 함께 한주간 동안 생각해 보는 것이 어떨까요? 이 글을 읽으시고 관심이 있으신 독자께서는 여러분의 의견을 저에게 이메일 해 주시면 다음주의 칼럼에 반영하도록 하겠습니다. 중요한 일이니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myungkee.edu@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