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으로 보는 예수님의 고난

필자가 미술과 건축의 역사에 관심이 많다고 하면, 친구들은 대뜸 그림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 지 간단히 설명해 줄 수 있으냐고 묻는다. 크리스찬의 경우라면, “성경을 읽으실 때, 그 장의 역사적 배경이나 구체적인 성경 구절의 전후 문맥을 아시면 더 쉽게 정확하게 이해하게 되시지요? 그림을 감상할 때에도 똑같다고 생각하면 돼요.”라고 말해준다. 즉 프랑스의 시인 보들레르가 노래한 것처럼 한 폭의 그림은 캔버스에 그려진 한 편의 시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스페인 화가인 디에고 벨라스케스 (Diego Velasquez, 1599-1660)가 그린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림1)’는 신약 성경에 묘사된 말씀을 그림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 그림을 성경 지식이 전혀 없는 사람이 본(감상한) 다면, 음울한 배경색이나 예수님의 고뇌에 찬 얼굴 모습에서 까닭 모를 비장감이나 슬픔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을 지는 몰라도, 크리스찬이 이 그림을 대할 때 가슴 메어지는 송구함과 비탄의 감정을 경험할 수는 없을 것이다. ,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그 그림이 묘사하고 있는 주제에 대한 이해가 큰 도움이 된다.

     주제에 대한 이해에 더 해서 미술의 역사나 미술 이론 등에 관한 약간의 지식이 있으면 훨씬 맛깔나게 그림을 읽을 수 있다. 뭐 그리 복잡한 이야기를 시작하려는 것은 아니고, 단지 한가지 쉬운 상식을그림 알고 바라보며 즐기는 일에 적용해 보려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인간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하는 방식에는 여러가지 다른 길들이 있음은 누구나 경험으로 안다. 주님의 사랑이 너무나 고맙고 놀라워당신같이 위대한 이께서 어찌 저 같이 천한 존재를 이다지도 사랑하여 주시는지요?”라며 피끓는 애절함으로 소리 높여 외칠 수도 있는 반면에 다른 이는 똑같은 감정을 잔잔히 기도하는 음성으로 가슴 저 깊은 곳에서 심장을 후벼 파는듯한 아픔을 삭여내며 꾹꾹 거릴 수도 있을 것이다.

     위에서 본 17세기 화가는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감당하시는 장면을 화가 자신이 그 현장에서 본 것처럼 사실과 가능한 한 가깝게 그리려고 노력했다. 이에 반해, 20세기 초에 그려진 독일 화가 에밀 놀데 (Emil Nolde, 1867-1956)의 화폭(그림2)는 똑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다른 방식으로 그려져 있다. , 놀데의 그림에서는 한마디로 말해 화가가 주제와 별 상관이 없다고 판단한 자질구레한 것들예를들어 현장의 풍경이나 세세한 근육의 묘사등이 모두 무시되고 강렬한 원색으로 채색된 인물들이 원근법이나 명암법을 모르는 초등학교 학생이 그렸음직한 모습으로 표현되어 있다. 첫번째 그림을 사실주의적이라 한다면, 두번째 것은 표현주의적이라고 한다.

     똑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그려진 그림을 하나 더 보자. 미국 화가인 바넽 뉴먼 (Barnett Newman, 1906-1970)은 앞의 두 그림과는 전혀 다른추상 표현방식을 사용한다. 뉴먼은 사실적인 묘사의 한계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추상적인 형태 (직선, 곡선, 사각형, 타원 등)으로 자신의 주제를 표현한다. 뉴먼의 화폭(그림 3)은 제목과 부제인 “The Stations of the Cross: lema sabachthani)가 암시하듯,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로 오르는 긴 여정 속에서 또는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느끼셨음직한 그 혼란스럽고 고통스러운 마음의 상태를 간결한 한, 두 수직선들 (옷의 지퍼같다고 해서 zips라고 함)과 그 선 주위에 끊어질 듯 이어지는 외침들처럼 매달려 있는 듯한 몇 획의 붓자욱들로 표현하고 있다. 그 붓자욱들의 흔들림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피쏟는 외침을, 그 고통스런 절규를 듣는 듯하다. 레마 사박다니 (아버지 왜 저를 버리십니까?)

     그러나 그림을 볼 때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어떤 기법으로그려졌든지 또는 어떤 주제에 관한 것인지를 모를때에도 그 그림을 평온한 마음으로 아무 생각없이 한 동안 쳐다보면, 화가가 어떤 마음으로 당신과 대화하고자 노력하는지 어느 정도는 느낄 수 있다는 점이다. 심리학자 융이 말한 것처럼, 그림을 그린 사람이나 그림을 보는 사람이나 공통된 무의식의 세계를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아무 생각없이가 중요하다. 정리해야 되는 서류들, 손님과의 다틈의 찌꺼기들을 잠시 묻어 두고, 여기 실린 그림들 속에서 예수님의 고난과 고통, 그 외침에 귀 기울여 보자. 그러면, 곧 부활의 아침이 환희에 가득찬 기쁜 찬송으로 물밀 듯 다가오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