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모 지상주의 시대

외모 지상주의 시대

‘예쁘면 모든 것이 용서된다.’는 말이 있다. 정말 그런가? 최근 외모 지상주의(lookism : 외모가 개인 간의 우열과 성패를 가름 한다고 믿어 외모에 지나치게 집착하는 현상)가 팽배하여 성형외과와 피부과들이 난데 없이 호황을 누린다고 한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 문제일까? 사실, 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외모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

아마도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고 본다. 여러 지표와 객관적 사실이 그것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취업이 그렇고, 결혼이 그렇다. 심지어 TV와 미디어 그리고 정치가 그렇지 않은가? 그러나 그럼에도 나는 보여지는 모습이 전부가 아니며 겉모습보다는 내면의 아름다움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즉 외적인 아름다움 도 중요하지만 내면의 아름다움 역시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서양인들이 생각하는 외모의 기준

가끔 서양인들을 보면 삶의 방식이 우리와 참 많이 다르다는 것을 느낍니다. 남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여름에 어구부츠를 신기도 하고 해가 비치면 어디서든 여유롭게 일광욕을 즐긴다. 멋을 아는 것 같지만 그 멋이 다른 사람을 의식 한데서 시작되는 것 같지는 않다.
어떻게 보면 남의 이목을 신경 쓰지 않는 사고방식이 참으로 부럽다. 서양인은 어떤 것을 선택할 때 내 주관 과 가치에 따라 판단하기 때문에 스스로에 대한 평가도 이에 근거한다. 따라서 자기 자신이 만족하면 남의 의견이야 어떻든 상관없는 것이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것만 아니면 자기자신의 만족에만 중점을 두어 선택 하는 마인드 사실 겉모습만 봐도 이러게 많이 느껴진다.
대학원시절 잠시 강의를 나가 던 대학원이 있었다. 그 대학원에서 담임 교수님의 모습은 평생 잊을 수가 없다. 늘 조용하게 명상하시면서 단아하게 걸으시던 모습, 곱고 정갈하게 빗어 올린 회색 머리카락, 늘 책을 보면서 배우고자 갈망하시던 모습,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과감히 추진하시는 결단성, 대화할 때 상대방을 배려하시는 너그러움, 비록 작은 키지 만 감히 넘볼 수 없는 힘이 느껴지는 그분의 모습에 같은 남자임에도 난 정말 그 학기 내내 정신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 학기 이후 그분은 나의 멘토가 되어 버렸다.
그 후 가끔씩 그분을 뵙고 덕담을 듣는 것이 한 해를 시작하는 나의 생활이 되었다. 늘 자기 생각보다는 상대방의 생각을 들으시려는 노력에서 배울 점이 많았다. 외모는 수수하셨으며 생활은 검소하셨다. 그분은 가정적이었으며 자손들에게는 자상한 아버지와 할아버지로 사랑을 나눠 주셨다. 그리고 집 앞에 있는 장로 교회를 다니시며 하나님을 섬기는 평범한 성도로 살아가셨다. 지난날 그분께서 가지고 계시던 삶의 태도와 향기로 인해 나의 멘토가 되셨고, 지금까지 내 가슴속에 살아 계신다. 나는 정말 그분을 닮고 싶어했다.

성형수술 잘하는 나라 한국

사실 외모 외에도 중요한 것이 얼마나 많은가? 어느 TV 광고에서 모두가 다 “예.”라고 할 때 “아니요.”라고 당당히 외치던 멋진 남자배우가 생각난다. 인생의 마지막 여정에 서서 “그래도 나는 내 길을 갔었다.”라고 과감하게 말할 수 있는 용기. 그래서 나는 프랭크 시나트라의 ‘My Way라는 노래를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정반대죠 우리는 내 주관과 가치에 따라 중요한 뭔가를 선택할 때 불안을 느낍니다. 내 선택이 남들과 다를 때 상당한 용기와 부담을 감당해야 할 때도 있다. 사실 필자도 옷 하나 고를 때조차 내게 어울리 는 것과 남에게 보여지는 부분 두 가지를 동시에 생각하니까 말입니다. 그냥 저만 생각하고 산다면 아무 생각 없이 금세 구입할 것들도 항상 남의 이목 때문에 시간이 더 걸리곤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상대방에게 비치는 나를 통해서 나를 판단하는데 익숙해졌기 때문인데 타인의 눈에 비치는 나를 통해 나를 판단하는 것은 성형수술에 대한 욕구를 발달시키는 계기가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예뻐지고 싶고, 여러 사람들 중에서 눈에 띄고 싶고, 인정 받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것이 당연 서양인이라고 다르지는 않습니다.

얼굴에 책임을 진다는 이미

‘40이 넘으면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의 의미를 이제 생각해 보니, 아마도 자신의 얼굴을 웃는 모습으로 바꾸고 내면의 아름다움을 채우는 동시에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변화하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다행히도 성경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선포한다. 이런 말씀은 나 같은 사람에게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하나님은 외모에 상관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나 보다.“여호와께서는 사무엘에게 이르시되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하시더라”(사무엘상 16장 7절).
사람은 누구나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또한 아름답고자 하는 것은 결코 허물이 아니다. 하지만, 요즘 급속하게 확산되는 성형 바람은 대한민국을 성형 공화국으로 전락시킬 우려를 만들어 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