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인생

아버지의 인생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
한 때,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던 한 카드회사 선전에 삽입되었던 노래의 한구절이다. 나는 이 노래를 들을 때마다, ‘인생을 즐기라’고 말씀하시기는 커녕, 당신 스스로 평생 교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시느라 집과 학교밖에 모르셨던, 그야말로 ‘재미없는’ 인생을 사셨던 아버지 생각을 하곤 한다.
비단 필자의 아버지뿐 아니라, 일제 해방을 거치고 한국 전쟁을 겪으며 험난한 청년기를 보내셨던 모든 우리 아버지 세대의 인생은 CM송에서 ‘인생을 즐기라’던 쿨한 아버지와는 달리, 가족들을 부양하기 위해 하루하루를 애쓰며 살아야 했던 ‘재미없는 인생’이 아니었을까… 나이가 들어 결혼을 하고, 또 자식을 낳아서 키우다 보니, 제대로 즐기실 수 없었던 아버지의 인생이 더 가슴에 와닿기도 하고, 또 그럴수록 지금부터라도 순간 순간 즐거운 마음으로 인생을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아버지’라는 자리가 그렇게 쉽게 인생을 즐기면서 살 수 있는 자리는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우리 병원은 유난히 가족 환자가 많아서, 가족들이 한꺼번에 오셔서 진료를 받고 가시는 경우가 많은데, 재미있게도 한인 가족분들께서는 대개 아버지를 제외한 엄마와 어린 자녀분들만 진료를 받고 가는 경우가 많다. 나중에 알고보면 정작 가장 크게 치과 진료가 필요한 사람은 아버지, 본인인 경우가 많은데도, 대부분의 한인 가정에서는 아버지가 ‘처자식’을 우선 치료받도록 배려하느라 본의아니게 자신의 치과 질환은 방치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다. 참으로 ‘가시고기’같은 눈물겨운 부정 (父精)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한인 아버지의 애틋한 가족 사랑은 치과 의사의 관점에서 본다면 결코 바람직한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가정을 한참 꾸려나가고 있을 40대 이후의 중년 남성은 시기적으로 여러가지 질환에 노출되어있는 시기이다. 특히, 흡연과 스트레스, 그리고 정기적인 구강 관리의 소홀로 인한 여러가지 심각한 구강 질환이 나타나기 시작하는 중요한 시기이다. 이러한 시기를 지나고 있는 아버지가 그저 가족을 위한답시고 정작 본인의 건강을 뒷전으로 미루는 것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바람직하지 않을 뿐 아니라 진정으로 가족을 위한 길도 아닌 것 같다. 진정으로 ‘처자식’을 위해 애쓰고 싶다면, 아버지 스스로가 먼저 건강해야하지 않을까.
오는 6월 20일은 “아버지날”이다. ‘아버지날’의 유래를 살펴보니 다름아닌 우리가 살고 있는 워싱턴주에서 시작되어 더 의미깊게 느껴진다. 1909년 워싱턴주 스포케인의 소노라 스마트 도드 부인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 다섯 자녀를 키운 아버지 헨리 잭슨 스마트의 깊은 사랑과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아버지가 태어난 6월 19일을 “아버지날”을 정하면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우리의 아버지도 마찬가지이다. 겉으로는 무뚝뚝한 척 하지만, ‘처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내놓을 수 있었던 우리의 아버지들.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면 ‘기러기’가 되는 것도 불사하는 우리 한국의 아버지들.
이번 ‘아버지날’만큼은 이렇게 가족을 위해 애쓰는 우리 ‘아버지’들이 한껏 가슴을 펼 수 있는 날이 되기를 바래본다. 이날만큼은 ‘처자식’이 아닌, 오직 ‘아버지’들 스스로를 위해 애쓰는 그런 날이 되기를 바래본다.

[칼럼제공 : 프라임덴탈그룹 김용재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