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중에…

LA에는 여러 가지 볼일로 자주 오는 편이다. 올 때마다 강의 하러 오는 경우도 있고 내가 트레이닝 받으러 오는 경우도 있고 가족끼리 모임이 있어서 오는 경우도 있고 하지만 올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들르는 서너곳이 있다.
우선 이곳에 오기 전 나는 음식점 투어를 계획표에 넣는다. 마치 먹을것 없던 곳에서 산 사람처럼, 이곳 저곳 맛있다는 음식점을 수소문해서 상호와 장소를 확보해놓고 먹이감을 얻은 승냥이처럼 신이나서 한집 한집 다니면서 친구들과 함께 다니며 음식맛을 보며 친구들의 수다도 함께 즐긴다. 아하! 맞아 중년의 아줌마들이 무슨 맛으로 사는가? 먹고 싶은것 맛있게 먹는 재미 말고 또 무슨 ? 매번 항상 가는 곳은 어릴적 한국에서 살 때에 막내오빠와 함께 자주 들렀던 00 칼국수집이다. 내가 처음에 서울에 있는 00 칼국수집을 갔을때는 중학생 때였다. 지금은 하늘나라에 가 있는 막내오빠가 추운 겨울 어느 날 나를 데리고 가서 사준 00칼국수 맛은 부드럽고 감칠맛있는 맛이었다. 그 맛은 지금도 잊지를 못한다. LA에 그때 그 맛을 똑 같이 내는 칼국수집이 있기에 행복해졌다. 이 칼국수와 함께 나오는 지독하리만치 매운 김치 맛은 지금도 생각을 하면 입안이 아리아리 하도록 매운맛을 나게 하지만 그 맛은 환상적이다. 김치를 먹다보면 매움맛에 나중에는 귀까지 먹먹해질 정도 이지만 이 환상적인 매움맛을 그리워 하던 나는 그리고 칼국수를 시키면 칼국수 위에 고명으로 얹혀 있는 4개의 교자의 맛도 너무 환상적이다. 이곳에서는 칼국수 하나시키면 무한정 리필을 해준다. 그런데 나는 한그릇을 먹고 나면 아주 행복해지기 때문에 리필을 하지 않는다. 더먹고 나서의 포만감 때문에 내가 먹고나서 편안하게 누리고 있는 행복한 마음을 잃고 싶지 않아서이다.
두 번째 음식점은 000 순두부 집이다.
물론 시애틀에도 맛있는 순두부집이 아주 많다. 그런데 나는 이집에서 반찬과 함께 나오는 조개젓을 아주 좋아한다. 조개젓은 아주 조그마한 접시에 많이 나오질 않지만 나는 돈을 더 내겠다며 조개젓을 더 달라고 한다. 그런데 일년이면 서너 번밖에 가지 않는 나 인데도 주인은 조개젓을 얼마든지 갖다 주셨다. 그리고는 뜨거운 해물순두부와 함께 그 조개젓의 맛을 음미한다. 조개젓은 밥도둑이라는 말이 무색할만치 밥을 두공기 정도를 후딱 비운다.
언제는 살을 뺀야한다고 탄수화물은 입에도 안대겠다는 나였는데 이곳에 오게 되면 내가 언제 그런 말을 했던가? 라며 조개잣에 밥을 두그릇이나 먹은 날 밤이면 나는 잠을 쉽게 들지 못하고 왔다 갔다한다. 조개젓이 짠편이라 물이 켜서 말이다. 밤늦도록 물마시느라고 왔다갔다 해보지만 아무리 오랜시간이 흘러도 조개젓을 좋아하는 내 마음은 변하지 않는다. 마치 내가 이곳에서 조개젓에 밥을 안먹으면 이집을 배반하는 느낌이 들어서……
그리고 조개젓을 따로 팔기도 하지만 나는 절대로 사오는 일이 없다. 여기에 와서 즐길수 있는 내 작은 행복감을 버리고 싶지 않아서이다.
세 번째 음식점은 000 순대국밥집이다.
점심때에 가보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이지만 한 시간 넘게 기다려서라도 먹고 싶어 한다. 지금은 그다지 육식을 좋아하지 않치만 어릴때에는 고기를 너무 좋아해서 다른반찬보다는 고기만 있으면 밥을 쉽게 먹을수 있었으나 점점 세월이 가고 또한 먹거리가 풍부해지는 요즈음은 고기는 거의 입에 대지 않는다. 아마도 생선을 좋아하는 엄마의 식습관도 내 입맛을 바꾸는데 한몫을 한 것 같고 또한 메스컴을 통하여 동물들 사육하는법 또는 죽이는 것을 보고 나의 마음이 육식을 하지 않아야겠다고 결심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미국에서는 훼스트후드가 거의가 고기가 들어간 것이라 밖에서 음식을 먹으려고 하면 고기가 안들어간 음식을 찿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이곳 순대국집에 가게 되면 순대만을 넣은 순대국을 달라고 한다. 함께 간 친구들은 “야 순대도 고기피가 들어간 것이야” 라며 나의 육식 반대론에 반기를 들지만 나는 그냥 못들은체 해버리며 순대국집안의 사람들을 바라보며 즐거워한다.
이곳 순대국집에서는 순대국을 시키면 큰접시에 부추 무침이 나온다. 함께 나온 부추 무침을 순대국밥에 넣고 뻘뻘 땀을 흘리고 먹고 나면 기운이 펄펄 나는것 같다. 내가 사는곳에도 이런 집이 있으면 하고 바래보다가 친구들에게 말을 해보면” 야! 너같이 먹는것 좋아하는애가 이런 순대국집이나 있으니까 여기와서 우리와 시간보내지, 아니면 이곳에 오겠냐? 그렇지! 나는 맛있는것 먹는 것(누군 아닌가?) 참 좋아한다. 많이 안먹어도 먹는 맛,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참 좋아한다. 이집에서는 항상 갓김치가 함께 나오는데 갓김치는 짜지도 않게 알맞게 무쳐 있어서 밥이 아직 안 나왔어도 젓가락으로 집어다가 먹을수가 있다. 갓김치 특유의 맛이 나의 어릴적시절로 돌아가게 만든다.
우리 엄마는 갓김치를 아주 좋아하시고 맛있게 담그셨었다. 그래서인지 우리집에는 갓김치가 항상 있었던것 같다.
이집의 점심 가격이 아주 싸서 나는 올 때마다 염려를 한다. 이렇게 팔아서 뭐가 남을까? 그런데 이지역에서 30년 이상을 산 내친구가 젖가락으로 갓김치 들어올리면서 입으로 가져가며 내친구가 말한다. “아줌마 신경 쓰지 말고 잡수셔” 누가 아줌마 쇼셜월커 아니랠까봐 직업의식 발동하냐면서 그리고 우리가 아무리 음식이 싸서 걱정이 된다고 해도 이집 주인 이익이 안남으면 장사 안 할꺼고 그리고 저기 사람들 줄지어서 기다리고 있는것 봐 이집은 많이 팔기 때문에 이익은 우리 생각 보다 많을 꺼라고.
네 번째 가는곳은 세리토스에 있는 멕시칸 레스토랑이다. 레스토랑은 허술하지만 항상 손님이 꽉차 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줄지어 있는 멕시코인들 사이로 함께 줄을 서서 두 조각의 휘씨 타코를 먹고자 긴 줄도 마다 하지 않는다. 줄을 서서 기다리는것을 싫어하는 친구들은 여기 아니면 다른곳은 없냐고 나를 회유한다. 이렇게 기다리지 말고 다른곳으로 가자구. 나는 친구들에게 너희들은 옆에 있는 맥도날드에 가서 기다리면 우리순서가 되면 내가 전화로 호출할테니 들어가 있어라며 혼자서 줄을서서 기다리다가 굳이 이곳으로 들어가 자리를 잡고 휘시타코 몇 개를 시켜 먹으며 마치 몇 년 전 멕시코의 길가에서 파는휘씨타코의 맛을 다시한번 찾아본다. 휘시타코 2개면 $4.23 이다. 두 개면 배가 부르다.
5번째로 늘 들르는 곳은 중학교를 함께 다닌 00 가 운영하고 있는 미용실이다.
머리가 너무 길어서 내가 핸들이 안될 때에는 씨애틀에서 머리를 자르지만 나는 웬만하면 자르고 싶은 마음을 참고 이곳으로와서 머리를 자른다. 친구는 몇 년 전 혼자가 되었다.
친구는 그림을 잘 그려서 미술을 전공을 하였는데 함께 살던 애들 아빠가 중년의 인생에 새로운 여인과 시작하고프다며 이리저리 방황을 해대더니 자기를 이 집 식구들 이름에서 빼달라며 말하며 떠나버렸다.
친구는 남편이 방황을 할 때 무척이나 마음이 상해 괴로워하면서도 가정의 평안을 위해 그리고 아이들에게 좋은 본보기가 되는가정이되고자 남편을 붙잡고 설득도 해보았으나 남편은 뒤돌아보지도 않고 긴머리 휘날리는 새로운 여인과 훌쩍 떠나버렸다. 친구는 처음엔 남편이 떠나간 상황이 이해가 안되는지 아무 반응이 없다가 분노가 생기더니 한참을 우울증에 헤메이면서 잠을 못이루고 밥을 못먹고 괴로워 하면서 밤낮으로 전화를 해대었다. 나도 전화를 받으며 친구의 아픔에 함께 울면서 새로운 여인의 옷자락을 붙잡고 떠나간 친구의 남편이 십리도 못가서 발병나기를 기도했었다. 일년을 실컷운 친구는 우리 6명의 친구들의 끝없는 관심과 사랑에 얼마 후 정신을 차리며 두 아이를 잘 길러야한다며 아이구 이 싸가지 없는 인간 내가 생각하면 뭐하냐구! 그래 너 잘살아봐라. (몇 년 후 친구의 남편은 새로운 여자하고의 삶에 지친 것인지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왔단다. 그리고는 당신이 그리웠다며 당신에게 돌아갈수만 있으면 돌아가고프다며 애걸을 하는 전화가 왔으나 친구는 이미 아픔을 이긴 상태이고 이혼후에 서로의 나눔 때문에 경제적으로 너무 많은 고통을 받은 후여서 그리고 이미 대학생들이 되어버린 두 아들들의 반대로 돌아오고자 하는 남편에게 “당신과 나는 이미 가까이하기엔 먼 당신이 되어버렸으니 새 여자 울리지 말고 잘 사시게! 라며 전화통을 매섭게 끊어버렸노라며 통쾌하다고 했다.) 친구는 미국가면 미술 전공한것 가지고는 살기가 쉽지 않다는 이민선배님들의 말씀에 따라 한국에서 배워온 비장의 무기 미용기술을 가지고 한국인들이 많이사는 000 곳에 미용실을 차려서 지금은 제법 자리가 잡혀져서 먹고사는데 큰걱정없이 사는 중이나 역시경제가 악화된 시대의 흐름은 어쩔수 없어서 일하던 미용사 다 내보내고 나니 혼자서 미용실을 운영하느라고 일이 끝나는 저녁 즈음엔 발이 퉁퉁불어서 걷기도 힘이 들어했다.
친구는 길게 자란 내 머리를 솜씨를 내어서 예쁘게 잘라주었다. 마침 날씨가 더워서인지 손님이 뜸해서 나는 친구의 발을 보며 친구를 행복하게 해주고 싶었다. 그래서 친구에게 내가 머리를 감겨줄께!라며 친구를 머리감는데 뒤로 눕게 한 후 정성스럽게 머리를 감기기 시작했다. 머리에 물을 적시고 고운 향기의 샴퓨를 손에 비벼서 거품을 내어 머리를 맛사지하며 한참을 씻은 후 깨끗히 헹군다음 컨디션으로 머리를 맛사지하듯이 문지르며 두피맛사지를하여 주었다. 친구는 애! 너 여기자주와라 오늘같으면 너무 행복해! 라며 즐거워한다. 나는 친구에게 조금 더 있어봐라고 말한 후 마침 커다란 대야 같은것이 있어서 대야에다가 따뜻한 물을 담아다가 친구더러 발을 담그라고 한 후에 친구의 왼쪽 발을 맛사지해주기 시작을 했다. 나는 미용실 바닥에 수건을 깔고 주저 앉아서 친구의 발가락 한 개씩 잡아가며 발바닥, 발등까지 정성스럽게 만져주고 눌러주었다. 친구의 오른쪽 발은 왼쪽 보다 더 부어 있었다. 나는 부은 발을 따뜻한 물에 담그었다가 다시 찬물로 맛사지를 해주고 꼭꼭 주물러주었다. 친구의 발을 맛사지해주면서 가슴이 아팠다. 혼자서 집페이먼트, 가게세, 아이들 학비 등으로 정신없이 빠쁘게 사는 친구의 발을 보며 눈물이 맺혔다 그러나 열심으로 사는 친구가 참으로 예뻐보였다. 한참을 친구의 발을 맛사지를 해주며 내가 하는 작은 사랑의 손길 때문에 친구가 행복하다고 생각하기를 바래본다.자주 만나지 못하지만 잠깐 여행으로 와서 친구에게 줄 수 있는 작은 기쁨 때문에 나도 행복해진 여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