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 2

모더니즘

구축주의(구성주의)

혁명이 일어나던 1917년경부터 러시아는 사회주의 원칙하에 나은 사회의 건설을
위해 열광적으로 동요하고 있었다. 혁명기간 가장 중요한 예술은 건축, 도시 건설,
공공 포스터와 선전 문학, 산업 디자인 등이었다. 이때 타를린, 폽포바, 말레비치,
가보 등 미술가들로 구성된 하나의 아방가르드 미술사조가 생기면서 구축주의 또는
구성주의라 칭하게 되었다.

구축주의(구성주의) 1920 6 가보와 펩스너 형제의리얼리스트 선언에서
타틀린의 미학적 사상을 언급하면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리얼리스트 선언에서
가보는 자신이 옹호하는 비대상 미술의 경향을 설명 하기 위해 구성이란 말을
사용하였다.

구축주의 자들은 입체주의로부터 절단된 면 분할법을 미래주의로부터는 역동적인
면을 표현하는 중복적인 이미지를 차용해왔다. 그들은 미술의 재현적인 측면을 절대적
추상의 형태로 이끌어 갔다. 구축주의는 새로운 미술을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구성하고
구축하는 것이 었다. 그 스타일은 유리, 금속, 플라스틱 같은 산업소재를 사용하여
입체 작품을 만드는 것이었다.

구축주의 대표 작가중 한명인 타를린은 볼세비키 혁명을 축하하는 기념작을
만을었는데 이는 에펠탑보다 높은 탑으로 모스크바 중앙에 세워질 예정이었으나
소재의 부족으로 완성되지 못하고 모형작만이 남아있게 됐다
. 이 작품이 완성 되었다면
구축주의 건축물의 대표적인 작품이 었을 것이다. 이 작품은 인류사회가 점진적으로
상승하며 진보하고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또한 명의 구축주의의 선구자인 말레비치는 기하학적 추상미술의 대가였다.
그의 작품은 이전의 어떤 작품보다도 미술을 혁신적으로 단순화 시켰다.
형태와 색채들을 어떤 구체적인 사물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하지 않고 순수한 추상으로
만들었다.

이렇듯 타를린과 말레비치를 포함한20세기 초 러시아 화가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통해
과학 기술의 진보에 의한 유토피아를 건설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지만 공산혁명으로 공산정권에 의해 그들의 생각은 무참히 짓밟히게 되었다.
공산당들은 미술의 정치선전용으로 이용하였고 스탈린은 자신들의 정책에 호응하지
않는 예술가들을 강제수용소에 수감을 하였다. 이로 인해 러시아미술에서 혁신의
무드는 너무나 짧은 순간에 막을 내리게 되었다.

J Art Academy

원장 이준규

타들린<3세계를 위한 기념비 모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