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미술계의 두 거장

마티스와 피카소2

피카소1

우리는 한번쯤 내가 그려도 피카소보다는 잘 그리겠다… 란 말을 해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 과연 피카소가 그런 말을 들을 만큼 실력이 없는 화가일까?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거장 피카소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기로 한다
.

반세기 동안 피카소는 미술의 개혁을 이루어 내고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 낸 후
그것이 자리도 잡기 전에 또 다른 스타일로 옮겨 가며 작품활동을 하는 작가 였다
.
그런 이유로 피카소의 작품을 몇가지 시대별로 구분을 하여 감상을 할 수가 있다.
그 중에서도 미술사에서 가장 큰 업적은 현대미술에서 중요한 혁신이었던 입체주의를
창안해 내었다는 것이었다. 아흔 살의 나이에도 그는 왕성한 작업 능력을 보였고
미술계에서도 다작을 하는 작가로서 평생5만 점이 넘는 작품을 만들었다. 참으로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가 없다.

스페인의 평범한 화가의 아들로 태어난 피카소는 이미 십대 때에 그림을 사진처럼 정확
하게 그릴 수 있었다
. 여기서 우리는 피카소가 그림을 잘 그렸다는 것을 알 수 가 있다.
피카소는 수많은 스타일로 그림을 그렸지만 “그림이란 내 일기의 한 부분이다.”라고
말했듯이 그의 그림은 언제나 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특히나 그에게 영감을 주는
주요 원인은 여성이었고 총 8명의 여인이 그에게 영감을 주었을 만큼 그는 바람둥이
였다. 피카소의 그림을 시대별로 구분하면서 이야기를 해보기로 한다.

청색시대

피카소가 보여준 최초의 독창적인 스타일은 가난 속에서 나온 것이었다. 이 청색
시대란 말은 피카소가 차가운 인디고와 코발트 블루를 즐겨 사용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 시기의 그림들은 연료를 살 돈이 없어서 자신의 그림을 태워 난방을 해야만 했던
비관적
상황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이 당시 그는 인정을 받지 못한 시기였기에
그의 그림은 사지가 비정상적인으로 긴 창백한 인물들이 그림의 주제로 나타났으며
그의 가난했던 좌절의 시기를 잘 표현하고 있다.

장미빛시대

이시기는 피카소가 파리에 완전히 정착을 하며 첫번째 애인인 올리비에를 만났던
시기이다
.

이때부터 피카소의 좌절감은 사라졌다. 이때부터 그는 세련된 장미빛과 같은 색조로
광대와 곡예사같은 서커스 광대들을 즐겨 그렸다. 이시기의 그림은 감상적이고 로맨틱
하였다. 그의 감정이 연애로 인하여 로맨틱하였던 시기였다.

J Art Academy

원장 이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