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랑드르 바로크 – 프랑드르의 거장 루벤스

이번호에서는 오늘날의 벨기에와 남부 네덜란드에 해당하는 플랑드르(플란다스)바로크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보자. 종교개혁 이후에도 카톨릭 국가로 남아있던 플랑드르는 예술가들에게 종교화를 제작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었다. 플랑드르 바로크의 많은 화가들 가운데에서도 독보적인 화가가 있었다. [플란다스의 개]의 마지막 장면을 기억하는가? 가난했던 네로는 돈이 없어서 그토록 좋아하는 화가의 그림을 볼 수가 없었다. 추위와 배고픔속에 갈 곳 조차 없던 네로는 그의 그림이 있는 성당으로 갔고 성당지기의 도움으로 그토록 보고 싶어하던 그림을 보며 파트라슈와 함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렇게 죽어간 네로의 얼굴에 평온한 미소를 짓게 했던 안트워프 대 성당안의 유화 작품 두 점, 이 작품의 화가는 바로 루벤스였다.

루벤스는 빛나는 색채와 관능미 그리고 생동하는 에너지로 가득찬 독자적인 바로크 양식을 확립한 화가였다. 그는 “화가들의 왕자이며 왕자들의 화가이다.”라고 극찬을 받은 사람이었다. 그는 매우 화려한 일생을 살았는데 전 유럽의 궁전에 파견되어 화가이자 외교관으로 활약했다. 그는 어느 지역의 화가라기 보다는 플랑드르를 포함한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영국등 전 유럽의 군주들을 위한 궁정 화가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전 유럽에서 활동 하였고 그렇기에 그의 작품들은 남부나 북부를 망라한 전곳의 스타일이나 사고와 잘 어울어졌던 것이다. 창조력 넘치는 천재에게서는 보기 드물게 루벤스는 국제적인 명성과 개인적인 행복을 함께 누렸다. 그는 교양이 있고 핸섬했다고 한다. 여행을 좋아했고 6개 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했다던 그의 삶과 예술에는 지칠 줄 모르는 에너지가 넘치고 있었다.

루벤스는 다작을 하던 화가로 유명하다. 그가 그린 그림들의 대다수는 종교적인 주제나 신화를 바탕으로 것과 역사화, 그리고 사냥을 하는 모습 등이 있다. 루벤스는 또한 친구들의 초상화를 많이 그렸고 자화상 또한 여러점을 남겼는데 노년기의 그는 풍경화를 많이 제작 하였다. 2,000여점이 넘는 작품을 남긴 그는 피카소와 견줄만큼 많은 수의 작품을 만들어 냈는데 끊임없는 작품 주문에 부와 명성을 함께 가질 수가 있었다. 그는 많은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이른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작업을 해야 했고, 많은 제자들이 그들 도왔다고 한다. 루벤스가 구상스케치를 하면 그의 제자들이 채색하고 다시 그가 마무리 하는 방식으로 그림은 제작 되었다. 루벤스의 그림 스타일을 보면 알겠지만 혼자서 2,000 여점이 넘는 그림을 제작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많은 그림의 완성에는 그의 제자들의 수고도 함께한 것이다.

역사화· 종교화· 풍경화· 인물화 등 각 분야에 걸친 그의 작품은 모두 생기가 넘친다. 선은 힘차고 색채는 풍부하고 화려하며, 구도 또한 웅대하여 야성적·관능적 표현에 뛰어났다.

루벤스는 두 여인과 두 번의 행복한 결혼생활을 보냈는데 첫번째 부인이 죽은 후에는 어린 신부와 재혼 하였다. 두 여인 모두 풍만하고 금발에 윤기있는 피부를 가졌다. 그는 그의 부인들을 그리는 것을 무척 즐겨했으며 특히 피부표현에 능숙하였다. 이렇듯 풍만한 육체에 대한 맹신은 훗날 ‘Rubensian’이나 ‘Rubenesque’와 같은 신종어를 만들어내기도 하였다. ‘Rubensiaans’이란 단어는 그 때의 풍만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특히 네덜란드에서 자주 쓰이게 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이 있다. 그린 작품 중에 조선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나오는 작품이 나 있다는 것이다. 망건과 도포를 걸친 모습 영락없는 조선인의 모습이며,1608년즈음 그려진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과 유럽의 교류가 없었던 그때에 루벤스 어떻게 조선인의 모습을 그렸는지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인물에 중점을 두고 그렸다기 보다는 동양의상에 관한 스케치였다는 주장도 있고 당시 이탈리아에 살았던 안토니오 코레아라는 노예의 그림이란 주장도 있지만 아직까지 그 그림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는 없었다. 루벤스의 그림이 우리에게 참으로 여러방면에서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17세기 바로크를 대표하는 화가 루벤스를 짧은 지면에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당대의 최고의 화가였음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J Art Academy

원장 이준규


십자가에서 내림 (안트워프 대성당, 안트워프)


조선인 추정 드로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