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로 가는 치과

돌아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있다.
목적지에 도착만 무사히 한다면 그 경로는 그리 중요치 않다는 속담 풀이쯤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상식이다. 결과만 급급한 나머지 그 도중의 수단과 방법을 전혀 무시하는 현실을 낳을 수 있는 속담이기도 하지만 서울로 가는 길은 단 하나가 아니니까 비록 자기가 걷는 길이 목적지에 벗어나 보이더라도 실망이나 포기를 하지 말라는 해석이 옳지 않은가 싶다.
정치인들의 최고 목적은 좋은 나라 만들기이겠고 산부인과 의사는 산모가 신생아를 건강하게 낳을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치과의사의 최고 목적은 환자가 불편없이 건강하게 음식을 씹을 수 있는 치아를 보존시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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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는 뚜렷하지만 치과에서“서울”까지 가는 길이란 그야말로 가지각색이다. 치과에서는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야말로 조그만 입안에서 벌어지는 문제로 치과를 찾아오지만 똑같은 문제를 갖은 두 사람을 찾아볼 수는 없다.
유형은 비슷하더라도 동일한 형태의 문제는 없다는 것이다.
“그야, 세상에 똑같은 사람이 없으니까,”
하고 생각하면 단순한 발견인데 치과의사가 하루에도 몇 번씩 반복되는 일상적인 치료에도 항상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임하는 이유는 모든 환자가 독특한 특성을 가진 유일한 케이스이기 때문일 것이다.
썩은 이는 때우고 더러운 이는 스켈링하고 부러진 이는 뽑는게 치과의사가 하는 일의 전부가 아니냐고 따진다면 맥이 빠져 더 이상 할 말이 없지만 환자가 원하는 목적지까지 어는 경로를 거쳐 데려다 주느냐야 말로 치과의사의 가장 큰 임무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치아를 여러개를 뽑아야만 할 형편에 놓인 환자가 있다고 가정하자. 수년간 악화된 잇몸 질환으로 본인의 컨디션이 예상했던 것 보다 훨씬 좋지 못해 치아를 여러대 뽑고 틀니를 끼워야만 한다는 진단이 나온 것이다.
이를 뽑아야 한다는 말부터 청천병력인데 생전처음 듣는 틀니 진단을 달갑게 받아들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치과의사는 환자의 신체질환이나 연령, 치주상태를 엑스레이와 임상을 분석한 끝에 힘들게 발치라는 진단을 내리고 이미 손쓰기 때늦은 치아는 미련을 버리고 그보다 더 중요한 뽑은 자리들을 매꾸는 치료 방법에 대해 환자와 상의를 한다.
부분적으로 치아가 없을 경우 브릿지 같은 보철이나 인공치아 이식이 가능한지 아니면 부분 틀니가 필요한지 연구하고 이 세가지 시술이 모두 가능한 케이스라면 환자와 상담을 통해 시술 방법을 선택하게 된다.
환자가 원하는 시술법이 불가능하거나 의사가 권장 못하는 경우가 아니라면환자가 자신의 실정에 적합한 치료 옵션을 선택하여야 하는 것이다. 생전 처음 사용하여야만 하는 틀니를 양처럼 순순히 승락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틀니는 남북통일 이전에는 절대 용납 못한다는 사람도 있다.

일생을 살면서 자신이 자신의 치아에 대해 평소에 매겨 두었던 값어치가 사람마다 각각 다르기 때문이다. 6개월을 초과할 수 있는 치아 이식 치료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하는 환자를 보지만 6개월은 커녕 6일안에 해결을 보기 원하는 환자도 볼 수 있다. 때문에 부분 틀니가 그릇된 치료 선택일 수 도 없고 고가인 치아이식 치료를 선택한 환자의 선택이 더 올바르다고 할 수 도 없는 것이다.
자신에게 주어진 옵션들의 장단점들을 환자가 모두 이해하고 의사가 승인하는 범위안에서 선택하는 환자의 결정이 틀릴 수 없는 것이다.
의사는 서울까지 갈 수 있는 길들을 보여주는 길잡이일뿐 어느길이 자신에게 적합한지 최종 결정을 환자에게 달려있는 것이다. 오히려 치과 의사나 다른 제3인의 강요로 환자의 생활습관, 환경, 수준을 무시하고 썩 내키지 않는 치료를 선택하였을 경우 환자의 기대에 못 미치는 치료 결과만 낳을 뿐이다. 환자와 의사간의 진솔한 의사소통은 모든 치료의 절반인 것이다.

“내가 어디가 아픈지 네가 찾아서 알아서 고쳐봐라,” 또는 “난 모르겠으니 알아서 해 달라.”는 식의 안이한 태도는 좋은 치료 결과를 볼 수 없다.
환자가 의사에게 갖는 신뢰감이 진솔한 대화와 환자의 참여가 없이 있을 수 없고 서로의 신뢰감 없이 치료하는 병원 또한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환자와 진솔한 대화가 필요없는 의사는 수의사와 장의사밖에 없지 않는가?
자신에게 내린 뜻밖의 진단에 당황함이 가신 뒤에 의사가 말한 듣도 보지도 못한 그 치료 이름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의사에게 물어보기 바란다.
스펠링까지 받아 적어와서 그게 도대체 무슨 치료이고 왜 필요한지 집에 와서 백과사전이든 인터넷을 한번 뒤져보자.

한번 상담으로는 시간이 모자른다면 재 상담을 권한다. “치과 상담을 한번” 이란 법도 없는데 복잡한 치료 계획에 놓여진 옵션 하나하나를 충분히 이해 못 한 채 무리해서 첫상담에 모든 치료 결정을 내리려 하기 전에 말이다.

택시 운전사에게 “서울까지 가요”하고 도착할 때까지 뒷자석에서 잠만 자는 것 처럼 자신의 치료에 나몰라라 뒷전 자리를 자청하고 나선다면 항상 자신이 원하던 목적지에서 벗어날 수 도 있는 위험또한 알아야 한다.
명동 한복판만 서울이 아니라 울릉도 오지에서 오는 사람들에겐 일산도 서울이기 때문이고, 치과에서 일산은 서울과 너무 멀다.

<기분좋은 치과 이성훈 치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