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인원

친하게 지내는 산호세 의사들 사이에 요즘 한창 늦깎이 골프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처음엔 운동을 하려자니 몸이 따라주는 운동이라곤 골프밖에 없어 시작을 해봤지만 그 재미에 솔솔 빠지면서 언제부터인지 멤버들 사이에 보이지 않는 묘한 경쟁 심리까지 가동되어 이젠 왕초보 멤버에서부터 프로급 멤버까지 너나 할 것 없이 그 학구의 열기가 대단하다. 쉽게 될 듯하면서도 실전에서 어이없이 무너질 때의 좌절감과 가뭄에 콩나듯 보기 드물게 만들어내긴 하지만 ‘프로급 샷’후의 가슴 뿌듯한 성취감이 교차하는 감정은 골프를 한번이라도 쳐본 사람이라면 이해할 것이다. 그 맛에 다들 주말만 되면 ‘혹시나?’하는 마음으로 골프장을 향하고 ‘역시나’하는 마음으로 다음기회를 노리며 골프장을 떠나기 때문이다.

골프가 어려운 이유 중에 하나는 머리 속의 완벽한 이론이 행동으로 맘대로 따라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공을 발 사이에 두고 샷을 날리기 직전 머리에 너무 많은 생각을 하면 원하는 샷을 만들어 내기가 더 힘들다. 주부들이 귀중한 손님을 모셔 놓고 음식을 장만 할 때 너무 잘하려고 하면 오히려 간을 망치는 것과 비슷하다고 할까? 좋은 점수를 내겠다는 욕심을 내면 낼수록 생각은 복잡해지고 근육은 굳어버리고 나도 모르게 온몸에 힘이 들어가다 보면 일주일 내내 기다려오던 그 날은 골프가 아니라 농사짓다 오는 날이 되 버린다. 땅만 파다 온단 말이다. 하지만 골프가 삽질과 다른 것은 거기엔 항상 도전의 기회가 있다는 것이다. 노력한 사람에게 언젠가는 좋은 결실이 결코 외면을 하지 않는다는 철학적인 인생의 숨은 교훈이 있기도 하다.

전에 말했듯이 요즘 나는 치과치료를 받으러 일주일에 한번씩 환자의 모습으로 되돌아간다. 치과의사들 사이에선 환자들 중에 가장 치료하기 힘든 사람이 다른 치과의사라고들 한다. 생각해보면 당연히 그렇다. 다른 자동차 세일즈맨에게 자동차를 팔기가 어려운 이유와 흡사할 것이다. 얼마 전, 치료후반 작업의 한 단계에서 치아기공소의 과오로 치료종결이 일주일가량 늦춰지게 되는 일이 있었다. 실제로 의사의 책임도, 기공소의 실수도 아닌, 치료과정중의 예상치 못한 한 단계라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하지만 내 주치의는 동료의사 환자에게 더욱 잘해주려고 하다가 오히려 일을 그르쳤다고 안타까워하며 사과를 했다. 그런 경험은 내 환자들에게 나도 있고 그 속상하는 마음도 잘 알기에 사과를 하는 그의 모습에 내가 덤으로 몸둘 바를 모를 정도로 미안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해 온갖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는 것, 그 든든한 사실하나만으로도 고마웠다. 환자가 미리 생각지 못하던 구석구석까지 염려하고 챙겨준다는 마음에 환자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마음 조려 쳐낸 샷이 비록 홀인원은 놓쳤지만 노력하는 내 주치의의 모습은 아름다웠고 일주일후의 결과는 깃발을 찾아 홀 안에 멋있게 들어가리라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골프나 우리의 삶이나 중간결과에 치중하여 작은 문턱 앞에 좌절하기보단 매번 기회에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는 자세야말로 다시금 찾아오는 도전을 맞이하는 프로의 마음자세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살아있는 한 언제나 다음 주말이 있기 때문이다.

<기분좋은 치과 이성훈 치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