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와 손님

제가 환자에요?!
한 젊은 여성의 치과검진이 끝나고 한창 검진결과 설명을 시작하려 하는 도중, 그녀가 의아하다는듯 내 말문을 가로막았다. 연거푸 자신을 환자라고 부르는 내 말에 조금 심기가 거슬렸나보다. 마땅히 사용할 존칭이 없거나 일반적으로 진료 의자에 앉은 모든 사람을 가리킬 때 환자라고 부르는 내 습관에 그 순간 제동이 걸렸던것이다.

내가 치대를 갖 졸업했을 무렵에만 해도 주변사람들이 내게 물어오는 ‘손님 많냐?’는 식의 인삿말에 대단한 불쾌감을 가졌던 것이 사실이다. 그리고 일일이 나는 곧 ‘환자 많냐?’가 옳은 표현이라고 수정을 해주곤 했다. 병원에 ‘손님’이란 말이 웬 말이냐는 것이 내 생각이었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 내 과거의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생각이었는지 깨닫고 있다. 초등학교적 사회시간에 배운대로라면 논밭에서 일하는 농민이나 공장원 같은 생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현대인은 서비스를 밥줄로 하는 3차산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다. 미장원의 미용사나 식당의 종업원이나 서비스를 상품으로 파는 사람들이고 의사역시 의술을 서비스로 하는 직종임을 부인할 수 없다. 사람의 몸을 다룬다는데에 일반적인 상업개념의 차원을 넘어 윤리와 도덕적인 의무가 따른다는 사실외엔 다를게 없다는 주장이다.

손님이란 단어의 뜻을 보면 ‘자신의 집에 잠시 머무는 사람’이라고 한다. 어느 직종을 막론하고 내 집을 찾아온 사람이라면 손님이란 단어를 사용하기에 전혀 어색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막상 병원문을 들어서는 사람을 손님이라 부르며 반기기엔 아직 자연스럽지가 못한 것이 사실이다. 혹 다른 사람이 나의 의도를 잘못 해석하는 것이 아닐까하는 불안감과 병원의 질을 너무 상업적으로 깍아내리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에 하나님 다음으로 높은 자리를 의사들은 고수하고 있진않나 내 자신에게 먼저 물어본다.
반면에 치과를 찾는 사람모두를 ‘환자’라고 일컫는 데에도 문제는 있다. 다시 한번 사전을 뒤적여 보면 환자라는 뜻은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고 나와있는데 자신이 ‘치과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고 스스로 자칭하는 사람을 아직 만나보지도 못했거니와 치과는 병을 앓기 전에 미리 찾아야 하는 곳이기에 모든 사람을 환자라고 부르기엔 적합하지가 못하다.

생명에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치과 분야의 특정상, 예를 들어 이가 없어 틀니가 필요한 사람이나 이가 고르지 못해 교정을 하는 사람들을 ‘병을 앓고 있는 사람’이라고 부르기가 따져보면 곤란하다는 얘기이다. 특히 요즘처럼 미용치과나 심미치과를 이유로 치과를 찾는 많은 사람들은 더욱 예뻐지고 싶은, 아름다움을 갈구하는 사람들이지 아파서 병원을 찾는 환자들은 아니다. 자신이 원하는 모습을 위해 성형외과를 찾는 건강한 사람들을 중환자 취급할 수 없음과 진배 없다. 간혹, 몸이 아파 찾아가 보는 큰 종합병원에서 환자의 대우는 커녕 사람대접도 제대로 못받으며 몇시간 기다림 끝에 아주 짧게 만나본 의사의 무성의한 태도에 우린 이미 익숙해져 버렸는지 모른다.

예전 드라마 ‘허준’을 통쾌하게 보았던 이유도 줄거리의 전개나 드라마 구성의 짜임새보다 그 드라마의 주인공이 환자를 대하는 태도나 마음자세가 우리가 알고 있는 지금의 병원과 의사모습이 아닌, 우리가 간곡히 바라는 의사의 모습을 드라마에서나마 만족시켜 줄수있었기가 아닌가 추측해본다. 병원을 찾는 사람들마다 손님이라고 부를 수는 없더라도 내집을 찾아주는 손님으로 의사는 환자를 대하고 손님의 예와 의무를 지키는 환자는 자신의 권익을 떳떳하게 요구할 수 있는 이민병원 풍토가 아쉽다.
그 젊은 여성의 당찬 질문에, <…뭐라고… 달리 부를게 없잖아요..…>라고 얼버무린 나의 대꾸에 아직도 얼굴이 붉어 오른다.

<기분좋은 치과 이성훈 치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