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바른 건강정책이란
사회학자 송복 교수가 쓴 <서애 유성룡 위대한 만남>이라는 책을 보면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임금인 선조가 신의주 몽진 중 혼자만 살기 위해 중국으로 도망갈 궁리를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1910년 경술국치가 일어나기 직전, 나라는 일본에 합병이 되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에서도 나라를 움직인다는 왕족과 재상들은 서로 공훈잔치를 벌이느라 여념이 없었다는 기록도 있다.
국가가 국가답게 존재하려면 국가를 다스리는 사람들이 외세의 침범으로부터 나라를 지켜내는 것을 영순위로 두어야 한다. 국민들이 배고프지 않게 잘 먹고 잘 살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두 번째로 필요한 덕목이다. 그래야 국민들이 출산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을 갖고 인구를 늘려나간다. 나라가 튼튼하고 국민이 잘 먹고 잘 살고 건강하면 그 나라는 좋은 나라가 아니겠는가.
그런데 요즈음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보자면 불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먹고 사는 문제는 어느 정도 해결이 된 것 같지만 인구는 오히려 줄어들고 있고 국민들의 질병 지수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기 때문이다. 여기에 대한 대안은 있는 것인가 말이다.
오늘날의 의료 정책 중에서 가장 국민들을 헛갈리게 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최근에는 의료보험 정책이 잘 이루어지고 있고 의료비용의 상당 부분을 국가가 부담하기까지 한다. 언뜻 병원 문턱을 낮추고 진단을 미리 해서 질병의 조기발견이 이루어지는 세상이니 평생 건강을 이룰 수 있을 것처럼도 보인다. 하지만 이것이야말로 대단한 착각이요, 모순이다.
의료비를 국가가 90% 이상 부담해주고 병원 출입이 용이해졌다고 해서 국민이 건강해지는 것은 아니다. 근본적으로는 국민들이 병원을 안 다니면서 살게 하는 것이 진정한 건강정책이다. 국민으로 하여금 아무렇게나 살게 하고 아프면 병원에 가도록 하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의료비를 국가가 부담하고 고통은 본인이 감수하게 하고 불건강한 상태로 생명만 연장하며 살게 하는 것이 진정한 삶이라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요즘 고령화시대라는 말을 많이 쓴다. 하지만 여기에도 함정은 있다. 건강하게 자신의 신체를 마음대로 움직이고, 자유롭게 생각하면서 오래 사는 것이 진정한 고령화 사회이지 집에 누워 있으나 산에 누워있으나 같은 처지로써 수명만 연장되는 것이 과연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있겠는가.
국민건강을 지켜나가려면 네 가지 분야가 제대로 정립되어야 한다. 하나는 농업정책. 두 번째는 영양정책. 세 번째는 식품가공정책. 네 번째는 의료정책. 손질이 잘 된 사륜구동 자동차처럼 이 네 가지 분야가 잘 맞물려 돌아가야 국민이 건강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농업정책을 살펴보자. 농업은 광범위하게 보면 농산, 수산, 임산, 축산 등이 모두 포함된 개념이다. 산업혁명 이래로 농업 분야는 대량생산에 초점을 맞춰 발전해왔다. 노동력을 줄이고 기계화를 발달시키면서 말이다. 시설장비, 약품(농약, 화학비료, 살충제, 제초제, 호르몬제), 유전공학으로 인한 육종과 종자개량을 통해 질은 나쁘면서 양적으로 대량 생산하는 메스프로덕션 시대를 만들어왔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을 중심으로 해서 배고픈 시대에서 포식하는 시대로 넘어온 것도 그 덕분이다. 소위 말하는 관행농 말이다. 식량 수확량은 증가했지만 문제는 질이 떨어졌다는 것이다. 배고픔은 없어졌지만 식원병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숨 쉬고 물 마시고 밥 먹지 않으면 못살기 때문에 먹고 사는 문제는 생명의 원초적인 욕망이다. 여기에 배부르게 먹게 됨으로 해서 몸이 비정상적으로 만들어지게 되는 빌미를 제공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의 진행되어 온 농업 정책이다.
다행히 그 문제점을 깨닫고 친환경 유기농 정책을 채택해 나가고 있지만 정부 주도보다는 민간 주도 차원에서 대부분 이루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하루 빨리 관행농업에서 탈피하여 그 폐단을 인식하고 새로운 패러다임의 농업 정책이 진행되지 않으면 국민 건강을 기대한다는 것은 정점 어렵게 되리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