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럼비아강 절벽 위에 선 스톤헨지
가을빛 따라 떠나는 골덴데일 메리힐 뮤지엄 여행

가을이면 워싱턴주의 여행지는 대개 단풍이 짙은 숲길이나 호수로 향한다. 그러나 시애틀에서 동쪽으로 약 4시간을 달려 컬럼비아강 협곡으로 내려가면, 전혀 다른 계절이 기다린다. 짙은 초록 숲 대신 황금빛 초원과 갈색 절벽, 깊고 푸른 강이 이어지고, 그 풍경 한가운데에는 뜻밖에도 영국 스톤헨지를 닮은 기념물이 서 있다.
골덴데일 인근의 메리힐 뮤지엄 오브 아트(Maryhill Museum of Art)는 단순히 미술관 하나를 둘러보는 곳이 아니다. 컬럼비아강을 내려다보는 언덕 위에서 예술과 역사, 전쟁의 기억, 서부의 도로 이야기를 차례로 만나는 가을 여행지다. 가까운 워싱턴 스톤헨지와 강변 전망대까지 함께 둘러보면 하루가 짧게 느껴질 만큼 이야기가 풍성하다.
메리힐 뮤지엄은 워싱턴주 남부 골덴데일에서 남쪽으로 내려가 WA-14를 따라가면 만날 수 있다. 맞은편 강 건너에는 오리건주의 빅스 정션(Biggs Junction)과 루퍼스(Rufus)가 자리하고, 발아래로는 컬럼비아강과 철길, 농경지가 넓게 펼쳐진다. 퓨젯사운드 지역의 촉촉한 가을과는 달리 건조한 동부 워싱턴 특유의 빛과 색감이 인상적이다.
강변 언덕에 세워진 뜻밖의 미술관
메리힐 뮤지엄은 초대형 대도시의 유명 미술관처럼 화려하게 알려진 곳은 아니다. 그러나 언덕 위에 단정히 선 건물 안에는 오귀스트 로댕 작품, 루마니아 왕실 관련 유물, 정교회 성화, 체스 컬렉션, 2차 세계대전 직후 파리 패션을 재현한 ‘테아트르 드 라 모드(Théâtre de la Mode)’ 등 의외로 폭넓은 컬렉션이 자리한다.
미술관을 찾는 즐거움은 전시실 안에만 있지 않다. 창밖으로 보이는 컬럼비아강 풍경이 작품의 배경처럼 이어지고, 건물 밖으로 나오면 강과 협곡, 건조한 구릉이 한눈에 들어온다. 화려한 단풍 명소라기보다 넓은 하늘과 강물, 바람이 만들어 내는 ‘서부의 가을’을 느끼기에 좋은 장소다. 특히 가을 오후에는 빛이 낮아지면서 강변 절벽과 들판의 색감이 더욱 선명해진다. 사진을 찍는다면 박물관 외부 전망과 스톤헨지 기념물은 늦은 오후에, 미술관 내부는 한낮에 둘러보는 일정이 좋다.
영국이 아닌 워싱턴주에 있는 스톤헨지

메리힐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은 워싱턴 스톤헨지(Maryhill Stonehenge Memorial)다. 박물관에서 멀지 않은 언덕 위에 있는 이 콘크리트 구조물은 영국 스톤헨지를 본떠 만든 기념물이다. 이곳은 단순한 이색 포토존이 아니다. 1차 세계대전에서 희생된 지역 주민들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전쟁기념물로, 컬럼비아강 협곡을 바라보는 높은 언덕 위에 자리한다. 거대한 돌기둥 사이로 강과 하늘을 바라보면, 영국의 고대 유적을 흉내 낸 장소라기보다 미국 서부의 풍경 속에 세워진 평화와 희생의 기억으로 다가온다.
가족과 함께 찾는다면 “왜 이곳에 스톤헨지를 만들었을까”라는 질문에서 여행 이야기를 시작해도 좋다. 아이들에게는 역사와 지리, 전쟁기념물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는 장소다.
도로를 사랑했던 샘 힐의 꿈
메리힐 일대의 이야기는 사업가이자 도로 건설을 꿈꿨던 샘 힐(Sam Hill)에게서 시작된다. 그는 험준한 컬럼비아강 협곡에 좋은 도로를 만들고, 이 지역을 문화와 예술이 만나는 장소로 만들고자 했다. 메리힐 뮤지엄과 스톤헨지 기념물, 인근의 메리힐 루프 로드(Maryhill Loops Road)는 모두 그의 구상과 연결돼 있다. 오늘날 이곳을 찾는 여행자는 미술관과 기념물을 둘러보지만, 한 세기 전 이 지역에 도로와 예술, 전망대를 함께 만들려 했던 한 사람의 큰 꿈도 함께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메리힐은 ‘가을 경치 좋은 곳’ 이상의 여행지가 된다.
함께 들르면 좋은 인근 코스
메리힐 뮤지엄과 스톤헨지를 본 뒤에는 WA-14를 따라 컬럼비아강변을 천천히 달려보자. 길 자체가 여행의 일부다. 강 건너 오레곤주의 건조한 절벽과 워싱턴주의 구릉이 시야에 번갈아 들어온다. 성인 여행객이라면 인근 메리힐 와이너리에서 강 전망과 함께 와인을 즐길 수 있다. 가족 여행이라면 골덴데일 시내로 올라가 간단한 식사를 하거나, 조금 더 시간을 낼 수 있다면 골덴데일 천문대(Goldendale Observatory)까지 이어 가는 방법도 좋다. 낮에는 강과 절벽을 보고, 해가 진 뒤에는 별을 보는 일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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