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사람의 발을 씻어 주는 새해
묵은 해를 보내고 새해가 시작되는 무렵에는 작은 일에도 큰 의미를 두는 경향이 있다. 뒤뜰의 트렐리스에 매달아 놓은 새모이 통에 다른 때보다 많은 새들이 모이는 것을 보며, 올 해는 뭔가 좋은 일들이 생길 것 같다고 하다가 한국의 안타까운 비행기 사고와 여야를 막론하고 자기네 잇속만 챙기는 정치 상황을 들으며 반대의 상상을 한다. 하여간, 정초에는 우리네 상상속에서나 주변의 이곳 저곳에서 의미심장한 말씀들이 북적거린다.
이런 때는 마음을 가다듬고 올 해 개인적으로 이루었으면 하는 새해의 결심을 종이에 적어 보는 것도 좋다. 뭐, 꼭 새해가 시작하는 때에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인위적으로 획을 긋는 시간을 잘 활용하는 것이 나쁘진 않다. 마음속으로만 생각하는 것보다 어디에든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좋은데, 실질적으로 마음을 가다듬기도 효과적이고, 연말에 ‘흠, 이것은 지켰네’하며 그곳에 X를 치곤 자신의 어깨를 쓰다듬어 주며 뿌듯할 수 있기 때문이다. 거기에다, “아니 이건 하다가 말았네, 다음에는 꼭”하며 다짐을 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새해의 결심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세가지 제안을 작년 말 뉴욕 타임즈에서 읽어 여기 간단히 소개한다: 1) 되도록 측정 가능해야 한다 (예를 들어, ‘되도록 아내에게 칭찬을 하자’보다는 ‘적어도 일주일에 세번은 하자’ 식이다; 2) 현실적인 것이 좋다 (‘운동을 매일 하자’ 보다는 ‘한달에 적어도 열 번은 하자’가 실천 가능하지 않은가?; 3) 자신이 꼭 하길 원하는 목표를 세우자 (역기를 들고 일 마일을 달리는 것보다 요가를 하는 것이 더 즐겁다면 비슷한 효과를 내지만 즐거운 일을 택하라고 권한다).
새 해에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건강하게 하는 일도 좋지만, 우리 주위의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고 위하는 일에도 신경을 쓸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몇 번 소개했던 말이지만, 새해에 더 귀히 다가오는 말씀이라 여기 다시 소개한다. 필자가 출석하는 교회 목사님의 몇 해전 설교 말씀 중에 “대야 신학”이라는 용어가 등장했었다. 영어로 설명을 듣기 전에는 ‘신학’이라는 학문이 주는 무겁고 어려운 분위기 때문인지, “대야망”을 가진 사람들의 ‘신학’ 정도로 생각하다가, 영어로 “Basin Theology”라는 번역을 듣고는 실소를 머금었다. “(세수) 대야 신학”이 아닌가? 필자의 얼굴에 스친 그 실소는 말씀이 깊어 지며 심(각한 미)소로 바뀌었다. 내용인즉슨, 성경에 등장하는 두가지 대야에 관한 비교였다. 하나는 예수님 당시 유대 나라에 파견된 로마의 총독이었던 빌라도가 사용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에서 사용한 것이란다.
시간상 먼저 사용된 예수님의 대야를 보자. 신약 성경의 요한 복음 13장을 보면, 예수님이 최후의 만찬을 갖는 장면이 기술되어 있다. “저녁을 드시던 자리에서 일어나 겉 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 다가 허리에 두르셨다. 그리고 대야에 물을 담아 다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그 두른 수건으로 닦아 주셨다.” 그 당시의 관습에 의하면, 주인이나 방문한 손님들의 발을 씻어 주는 것은 종들의 몫이었다. 발을 씻기신 이유는 같은 장에 1) “자기의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셨”기 때문이고, 2) “내가 너를 씻기지 아니하면 너는 나와 상관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셨다. 이 관습을 깨는 파격에 마음이 움직였다. 더욱 마음이 아팟던 장면은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시기 전에 이미 제자들이 당신을 곧 배반할 것이라는 점을 알고 계셨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행했다는 점이다. 수제자인 베드로는 다음 날 아침 닭이 울기 전에 3번이나 자기가 예수와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고 부인을 할 터이고, 요한을 제외한 다른 제자들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힐 때 모두 도망을 갈 것이며, 가롯 유다는 식사 후에 예수를 은 30에 팔아 넘길 것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어디선가 들려 오는 “너는 그러지 않을 수 있는가?”라는 물음이 필자의 귓가에 쟁쟁했다.
빌라도의 대야. 같은 신약 성경의 구절인 마태 복음은 빌라도의 대야를 상세히 묘사해 전해 준다. 유대인의 신학자들과 그 하수인들이 가롯 유다의 밀고로 예수를 붙잡아와 재판을 요구하고 사형에 처하라고 외치며, 아니면 민란이라도 일으킬 기세이자, 빌라도는 예수가 죄가 없고 ‘옳은 사람’임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로서는 어찌할 도리가 없다는 것과 또 민란이 일어나려는 것을 보고, (대야에) 물을 가져 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고 말하였다. 나는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책임이 없으니 여러분이 알아서 하시요.” 자신에게 닥칠 해가 예견되면 옳은 일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안위를 위해 손을 씻고 자신은 그 행위에 대해 아무런 상관/책임이 없음을 밝히는 도구로 쓰인 빌라도의 대야. 이 사건에서 영어의 숙어인, “wash my hands of something (손을 씻음으로서 그 일어난 일이 나에게는 책임이나 의무가 없다는 어구)”가 유래했다고 한다. 한국어의 관용 어구인 나는 ‘그 일에서 손을 씻었어’와 좀 뉘앙스가 다르긴 하지만 일견 통하는 말처럼 보이기도 한다는 점에서 흥미가 있다.
새해에는 우리 어른들이나 우리의 자녀들이 자신에게 어느 정도의 해가 예견되더라도, 혹시라도 자신이 섬기는 이들의 배반이 염려되더라도, 옳은 일을 위해 또는 사랑하는 마음으로 우리의 이웃을 섬기며 발을 씻어 주는 삶의 태도를 견지했으면 하는 마음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의 발을 씻겨 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남의 발을 씻겨 주어야 한다”고 하시지 않았는가?
| 벨뷰 EWAY학원 원장 민명기 Tel.425-467-6895 ewaybellevu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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