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 천국이라는 싱가포르, 은퇴지로도 적합할까
오늘은 싱가포르에 대한 얘기를 해보겠습니다. 말레이 반도 남쪽 끝의 한 구석진 섬, 서울보다 약간 큰 정도의 사이즈, 자원도 없고 인구도 몇백만 수준의 도시 국가가 어떻게 세계가 주목할 정도의 경제 성장을 이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그런 나라에서 사는 건 어떨까 하는 호기심 때문입니다.
겉으로 보는 싱가포르는 정말 깨끗합니다. 콩크리트 정글인 줄 알았는데 가로수들도 많아서 그렇고 싱그럽고 분위기도 풍요롭습니다. 삶의 질은 어떨까요.괜찮을 겁니다. 1인당 구매력 평가 기준, PPP GDP 는 2024 년 기준 세계 1위에다 의료수준도 세계 최고 수준, 게다가 치안도 좋은 나라에서 사는게 궁상 맞을 린 없겠죠.
싱가포르가 경제적으로 발전할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요. 아무래도 정치적 리더쉽, 특히 싱가포르 국부 대접을 받는 리콴유 덕분 같아 보입니다. 홍콩을 닮아야 살 수 있다고 믿고 홍콩 식 성장 모델, 즉 산업구조를 해운과 금융 기반의 서비스 중심으로 적극 밀어 붙인 사람이니까요.
인도양과 태평양을 이어주는 말라카 해협 중심에 싱가포르가 있다는 지정학적 이점, 이것도 물론 중요할 겁니다. 하지만 리콴유의 비젼이 없었다면 이 이점을 제대로 이용할 수 있었을까 하는 의문도 듭니다.
싱가포르는 사실 말레이시아의 일부로 남아 있는 걸 원했다죠. 그러나 말레이시아 연방 정부가 말레이인 중심으로 연방을 운영하겠다고 나오니까 중국계가 다수인 싱가포르는 여기에 반대를 했고 덕분에 연방에서 쫓겨난 거죠.
상황이 이렇게 되니까 앞으로 어떻게 살지 하면서 리콴유가 대성통곡을 했다고 하지요. 그러나 주저앉는 대신 리콴유는 과감한 시도를 합니다. 해외 투자를 끌어 들이기 위해서 세율도 낮추고 텍스 시스템을 고치기 시작한 거죠.
리콴유가 공을 들인 일 중 하나는 관료 조직의 청렴도를 높이는 일이였다고 합니다. 외국인 투자유치를 위해선 법적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이 필수니까요. 그래서 공무원 봉급을 대폭 올려준 다음 부패 공무원들은 탐오(貪汚)조사국이란 기구를 통해 일벌백계 하는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하더군요. 싱가포르 공무원들의 청렴성과 관련된 일화가 하나 있습니다. 지금은 고인이 된 현대 정주영 회장이 살아 계실 때 싱가포르에서 사업하기 좋은 이유 중 하나는 공무원 상대로 로비를 할 필요가 없어서란 말을 남겼다는게 바로 그겁니다.
어쨌든 최근 한국의 슈퍼리치들 사이에선 싱가포르 이민이 유행이라고 하더군요. 한국에서라면 최고 60% 증여세나 상속세를 내야 하는데 싱가포르로 이민 가면 이걸 안낸다 그래서라죠. 게다가 이자나 배당 소득 그리고 양도소득세도 없다고 하니까 슈퍼리치들이 군침을 흘릴 만 합니다.
그러나 한국의 증여세나 상속세는 증여나 상속을 받은 사람이 내는게 원칙 아닙니까? 자녀들은 그대로 한국에 살고 있다 그러면 싱가포르 이민이 해답이 될 수 있을지, 그래서 의문입니다.
물론 미국에 살고 있는 분들이라면 이런 걸 걱정할 필요는 없겠죠. 증여세나 유산세는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이 내는 거고 또 미국 유산세는 2025년 현재 일인 당 1400만 달러 정도나 되니까 억만장자가 아니라면 걱정해야 할 문제는 아닐 테니까요.
소득세나 법인세는 어떨까요. 이런 세금들도 싱가포르에선 낮을까요? 물론입니다. 법인세는 17% 플랫이니까 미국보다는 4% 나 낮습니다. 소득세는 미국과 마찬가지로 누진세율이지만 최고 세율은 24% 에 불과합니다. 미국 최고 세율 37% 하고 비교하면 엄청 낮은 수준입니다.
게다가 외국 발생 소득은 비과세라고 합니다. 미국에서 받는 소셜연금이나 은퇴 연금을 싱가포르에 살면서 받는다면 싱가포르 세금은 안낸다는 뜻이죠. 물론 미국 납세자라면 싱가포르에 산다 해도 미국 세금 신고 의무를 해야 한다는 점은 잊어선 안되겠죠. 그런데 싱가포르에는 세율이 9%인 GST, Goods and Service Tax 라고 하는 세금이 있다고 합니다. 일종의 부가가치세니까 미국엔 없는 세금이죠.
물론 판매세는 미국도 주에 따라 있긴 하지만 부가가치세하고는 개념이 다릅니다. 그리고 그로서리같은 생필품인 경우엔 판매세 면제가 되는 곳이 많지 않습니까? 하지만 GST 에는 그런 식의 면제는없다더군요. 그런데 싱가포르로 은퇴하는게 쉽지 않다고 합니다. 공식적인 은퇴 비자 프로그램이 없다고 하니까요. 그래서 싱가포르에서 살려면 돈이 많이 드는 Global Immigration Program, GIP 라고 하는 투자이민을 이용하거나 아니면 싱가포르 취업 비자를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게다가 싱가포르는 생활비가 많이 드는 도시입니다. 물가도 비싼 축에 들지만 주택 가격은 정말 놀라 자빠질 정도로 높습니다. 좀 살만 한 사이즈다 그러면 2-3백만 달러는 줘야 한다니까요. 집 값이 높으니까 렌트도 당연히 비싸겠죠. 지역이 어디냐, 베드룸이 몇개냐, 이런 것들에 따라 다르겠지만 월 4-5천 달러는 줘야 그래도 살 만한 곳을 찾을 수 있다고 합니다.
날씨가 무덥다는 점, 그리고 나라 자체가 좁기 때문에 겪어야 하는 생활의 불편함과 지나치게 엄격한 법 집행과 통제… 이런 것들 때문에 싱가포르 생활이 어렵다는 분들도 있다지요.
싱가포르의 엄격한 법 집행에 대해선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얘기가 하나 있습니다. 1994년에 미국 청년 하나가 기물 파손죄로 곤장 2대를 맞았다는게 바로 그거죠. 물론 요샌 이런 식으로 무식하게 처벌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만 안심하기엔 이를 지도 모릅니다. 싱가포르 법에는 태형이란 형벌은 아직도 남아 있다니까요.
언론 통제와 인터넷 검열도 싱가포르에서 살 때 감내해야 할 문제일 겁니다. 리콴유의 아들 리센룽은 20년간 쥐고 있던 총리직을 작년에 로렌스 웡에게 물려줬지만 어쨌든 부자 세습 문제 그리고 집권 여당인 인민행동당 (PAP)의 독주 정치체제 같은 얘기는 절대 터치하면 안되는 주제라니까요 .
싱가포르는 잘 사는 북한이란 말이 떠도는 건 다 이유가 있을 겁니다. 그래서 싱가포르에 은퇴해 산다면 세금 걱정없이 비교적 안정된 삶을 살 수 있겠지만 지리적 그리고 정치적 측면에선 답답할 지도 모른다, 이렇게 정리하면 싱가포르 은퇴에 대해 어느 정도 감이 잡힐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