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직을 가르치자

옥스퍼드의 택시 운전사런던의 워털루 메인스테이션을 출발하여 옥스퍼드로 가는 기찻길에는 억새 꽃이 푸짐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벌써 20여 년 전 일이지만 친구 몇 명과 함께‘신사의 나라 영국’을 처음 찾았을 때 옥스퍼드 대학의 본관쯤이면 아마 거창한 간판이 달린 몇 십 층짜리 빌딩이려니 생각하고 찾아갔다.

그런데 우선 역부터가 딱 도둑열차 타기 좋을 듯한 매우 한가로운 시골 분위기였다.역에서 내려 대학 가는 길을 물었더니 어리둥절한 행인이 무슨 소린지 잘 알아듣지 못한다. 그래서 다시 옥스퍼드 대학을 찾아왔다고 하니까 전 시내가 다 옥스퍼드 대학이란다. 이번에는 우리가 무슨 소린지 알아들을 수가 없어서 우선 택시 운전사를 찾았다. 그가 두어 시간 동안 우리를 태우고 시내에 산재해 있는 각단과대학들을 관광시켜 주었다. 이끼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고풍스런 이 마을은 무려 900년의 역사가 있는 단과 대학 40여 개가 박물관 같기도 하고 궁전 같기도 하고 예배당 같기도 한 그런 건물들이 끝없이 널려 있었다.

옥스퍼드의 택시 운전사 그런데 정말 우리의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 것은 이 택시 기사의 해박한 지식이었다. 옥스퍼드의 그 많은 대학 건물을 돌며“이사무실이 바로 몇 년도에 아무개가 노벨 물리학상을 받은 곳이고, 저 사무실을 쓰던 아무개가 그 다음 몇 년도에 노벨 무슨상을 받았습니다.”를 이어 가는데, 우리는 아직 국가적으로노벨상에 명함도 못 내놓던 시절이라 옥스퍼드에서 그렇게 많은 노벨상 수상자가 나왔다는 것에도 놀랐지만 택시 운전사가 이렇게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는 것에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는 단지 노벨상을 받은 사람 이름이나 연도만이 아니라 그가 왜 그런 상을 받을 수 있었는지 연구 내용과 업적을 소상하게 엮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이 대학 출신으로서 세계 역사를 주름잡았던 수많은 사람을 우리가 초등학교나 중학교 다닐 때“태정태세 문단세….”“조선시대 역대 왕을 외우듯 줄줄이 엮어내는 것이다.

필자가 아는 것은 그저 종교개혁자 위클리프나감리교의 창설자 존 웨슬리 정도를 기억하는 것이 고작인데 로저 베이컨이니 에라스무스를 비롯하여 유토피아를 썼던 토머스 모어,토머스 홉스, 존 로크, 아담 스미스, 걸리버여행기의 조나단 스위프트, 시인이자 극작가 T. S 엘리엇, 명재상 글래드스턴 등등 그들이아니었다면 영국뿐 아니라 세계 역사가 달라졌을 사람들에 대해 언급해 나갔다. 그리고 옥스퍼드의 최대 이벤트인 조정경기에서 케임브리지를 이긴 연도와 그때 상황을 설명하는 일도 빼놓지 않았다. 정말 유명대학 안내인답게설명을 끝내면서“여기 돌 하나하나마다 온갖
역사가 서려 있지요!(Each stone of here tellshistory)”라고 한 마지막 말은 정말 이 택시 운전사도 옥소니언(옥스퍼드 대학 출신이라는뜻)인가보다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두어 시간 동안 그의 열정적인 강의를 듣고는 동행했던 우리 네 사람은 그에게 명강을 끝낸 교수에게 하듯 힘차게 박수를 보냈다.

더욱 감동적이었던 것은 그 다음 일이었다. 우리는 세계최고를 자랑하는 학문의 전당인 옥스퍼드에 대해 아주 감동적인 설명을 듣고 만족한 기분으로 기차를 타고 런던을 향하여 출발 직전에 있었다. 한참 그 택시 운전사를 칭찬하고 있는데 누가 기차의 창문을 두드렸다. 우리가 이야기하고 있는 바로 그 택시 운전사였다. 그는 손에 지갑을 하나 들고 열심히 흔들고 있었다. 우리 동행 중 한 사람의 지갑이었다. 깜박 택시에 떨어뜨린 것을 이 사람이 찾아 들고 꽤 거리가 먼 곳을 플랫폼까지 숨이 목까지 차도록 달려온 것이었다. 그것을 잃어버렸다면 유럽 여행에 여러 가지로 차질을 빚을 뻔했는데 그 친절한 운전사 덕택에 내내 훈훈한 가슴으로 나머지 여행을 할 수 있었다. 그 택시 기사는 그렇게 훌륭한 사람들을 많이 배출한 옥스퍼드에 대해서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조국인 영국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보였다. 그런 사람들의 명예에 조금이라도 누가되는 행동은 할 수 없다는 사명감이 얼굴에 서려 있는 것이 분명했다.

정직한 사람을 만나는 것처럼 살아가면서 정직한 사람을 만나는 것만큼 기분이 좋고 마음이 훈훈해지는 일도 드물다. 도스토예프스키가 고백한 것처럼“사람이 살면서 가장 어려운 일 중에 하나가 거짓말하지 않고 사는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사람이 곧이곧 대로 정직하게만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마음먹고 정직하게 살아 보려고 시도해 본 사람이면 알 것이다. 교통법규 하나
곧이곧대로 지킨다는 것만 해도 얼마나 시간이 많이 들고 참을성이 있어야 하는 일인지 모른다.

정직한 사람만 바보가 되는 경우가 한두번이 아니기 때문이다. 정직한 지도자 근래 들어 국가 지도자들의 정직성에 대한 문제가 자주 거론된다. 국가 지도급 인사들의 정직성이 자주 도마 위에 오른다. 얼마 전에는 국가 최고책임자의 정직성이말 거리가 되기도 했다. 국민을 재판해야 하는 사법부에 대해국민이 진심으로 신뢰할 수 없다면“자신은 안 지키면서 남 보고만 지키라고 한다.”는 비난을 면할 수 없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