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잃은 그대에게

삶을 잃은 그대에게

지난 5년간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는 유명인들의 잇단 자살 사건은 우리사회에서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특히 자살사이트, 자살 클럽, 자살 여행, 베르테르 신드롬 등 자살문화의 현주소를 알려 주는 신조어들이 인터넷을 뒤덮고 있다.
최근에도 젊은이들의 자살이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해마다 수 천명의 십대들이 자살을 한다. 자살은 15세 – 24세 연령대의 사망 원인 중 세 번째이며, 5세 – 14세 연령 대에서는 여섯 번째를 차지합니다. (역자 註: 1998년 통계에 따르면 우리나라 10대의 자살은 인구 십만 명당 6.2명으로 십대 사망 원인의 두 번째를 차지하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십대들은 스트레스, 혼란스러움, 자기자신에 대한 회의, 성공에 대한 부담, 경제적인 불확실성, 그리고 성장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두려움 들을 강하게 느낍니다. 어떤 십대들에게는 부모의 이혼, 의붓 부모와 그리고 의붓 형제와 새로운 가정을 이루는 것, 또는 새로운 곳으로의 이사 등으로 인해 심하게 동요할 수 있고 자기회의가 심해질 수 있다. 어떤 경우에 자살은 문제의 해결책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부모들이 자신의 자녀가 심각한 문제를 가진 것은 아닌가 의심이 간다면, 정신과적 검사를 통해 많은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삶의 여건이 현저하게 개선되고 있는 문명의 시대에 삶을 스스로 포기하는 자살이 늘어나는 원인은 무엇인가? 존재감의 상실이 그 궁극적 원인으로 나타나고 있다. 현대의학적 관점에서 볼 때 자살 요인의 80퍼센트는 우울증이라고 한다. 연예인의 자살은 대개 이 우울증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저들이 우울증에 걸리는 이유는]

대개 인기에 대한 부담감, 소속 사와의 갈등, 팬들과의 관계, 사생활의 노출 때문이다. 물질과 명예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는 연예사회에서 저들은 순간적인 존재감의 상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우울증에 빠지게 된다. 그런 정신적인 혼돈이 결국 자살 충동을 유발시키게 되는 것이다.

<자살의 역사와 기술>이라는 매우 독특한 문제를 다룬 책에서 프랑스 저널리스트 마리탱 모네스티에는 자살이 발생하는 빈도가 아노미 상태의 혼란한 사회보다는 안정되고 풍요로운 사회에서 더 높게 나타난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자살하는 비율은 가난하고 어려운 경제적인 여건에 놓여 있는 사람들보다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공부를 많이 한 사람들에게서 더 높게 나타난다는 것이 인류 역사에 나타난 통계이다. 우리가 잘 아는 역사적인 인물 중에 많은 수가 인생의 정상에서 자살을 선택했다. 음악가 슈만은 그러 한 때 자신의 몸을 나일강에 던져 투신자살을 했으며, 고흐는 천재화가로서의 명성을 누릴 즈음에 자신의 머리에 권총을 쏘아 자살했다.

결국 저들이 자살을 선택하게 된 것은 물질적인 삶이 고달프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질 것에 대한 두려움, 즉 존재감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이다. 그렇게 의식을 소멸시킴으로써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것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만연하고 있는 자살문화도 역시 마찬가지이다. 자살 신드롬의 주체들은 모두 자기 분야에서 정상의 위치에 있던 사람들이었지만 존재감의 상실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살을 선택했다.

[이런 문화적 현상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개인의 자살은 당사자는 물론 그의 가정과 사회의 비극이라는 점에서 결코 긍정적인 것이 될 수 없음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 가정 또는 사회는 개개인들의 유대로 구성된 유기체이다. 따라서 개인은 한 사회의 생명력이나 다름없다. 하나가 아프면 모두가 아프고, 하나가 병들면 모두가 고통을 나누어야 한다. 따라서 하나가 죽으면 모두가 죽음으로 인한 상실을 체험하게 된다. 이런 유기체의 사회에서 한 사람의 자살은 사회의 존재와 생명력에 매우 큰 파장을 끼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괴테 시대의 독일과 같이 죽음의 바이러스를 온 사회에 퍼트릴 수도 있고, 2차 세계대전 당시의 일본 젊은이들처럼 무모한 제국주의에 내몰릴 수도 있다.
지금 우리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불행과 아픔의 기억들도 마찬가지이다. 한 사람의 자살로 우리 사회는 지금 심각한 고통과 절망을 경험하고 있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사회적 허무주의가 우리 사회를 감싸게 될지도 모른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모두 함께 상생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 중 아무도 삶의 비애와 존재감의 상실을 맛보지 않도록 서로를 아끼고 돌봐 주며 보호해야 한다. 물질적 풍요와 사회적 안정이 정착될수록 그 이면에 나타나게 되는 새로운 정신적 빈곤과 절망의 요인들이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풍요로운 사회에서 혹시 누군가가 그러한 빈곤에 처하게 된다면 모두가 힘을 합쳐 그를 절망에서 구출해 내야 한다. 그것이 이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사랑으로 실천하는 길이다

[봄과 같은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그는 아마도 늘 희망하는 사람, 기뻐하는 사람, 따뜻한 사람, 친절한 사람, 명랑한 사람, 온유한 사람,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 고마워할 줄 아는 사람, 창조적인 사람, 긍정적인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사람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계절의 봄이 있기 위해서 먼저 혹독한 겨울이 있어야 하듯이 인생의 봄 역시 겨울을 지나서야 제대로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참으로 봄을 사는 사람이란 모진 시련과 고통, 아픔과 좌절이라는 겨울 추위를 누구보다도 잘 극복해 낸 끝없는 인내와 노력의 투사인 것이다. 자기 처지를 원망하고 불평하기 전에 우선 그 안에서 해야 할 바를 최선의 성실과 믿음으로 수행하는 사람,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과 용기를 품고 나아가는 사람이다.

[칼럼리스트 윤상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