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를 빌려 드립니다

아빠를 빌려 드립니다

엄마가 있어서 좋다. 나를 예뻐해 주어서 냉장고가 있어서 좋다. 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 강아지가 있어서 좋다. 나랑 놀아 주어서 그런데 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여러 해 전, 세간(世間)에 말 거리가 되었던 어느 초등학교 2학년 학생의 동시(童詩)이다.

세상에 용도가 불분명한 것이 더러 있지만 거기 아빠가 끼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 그렇다고 아이만 타박할 일도 못 되는 것 같다. 초등학교 2학년짜리가 무슨 억하심정이 있어서 아빠를 왕 따 시키려고 작심한 것도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느
끼는 대로 말하고 생각나는 대로 행동하는 게 어린아이인데 그렇게 말한 데는 아빠의 책임도 적지 않을 것이다. 아빠의 무관심에 대한 섭섭함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닌 모양이다.

스텐 게브하르트라는 사람이
<뉴욕타임스>에 이런 글을 썼다.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저번 날 저는 아빠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어요. 저는 아빠가 바라볼 줄 알았지만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저는 아빠에게 “사랑해요.”라고 말하고는 아빠가 무슨 말을 해 주시기를 기다렸어요. 전 아빠가 제 말을 듣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저는 아빠에게 밖으로 나가서 저와 함께 공놀이를 하자고 부탁했어요. 저는 아빠가 저를 따라 밖으로 나오실 줄 알았지만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저는 아빠가 봐 주기를 기대하며 그림을 그렸어요. 저는 아빠가 그 그림을 간직할 줄 알았지만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저는 집 뒤의 빈터에 야영 장소를 만들었어요. 저는 아빠가 저와 함께 하룻밤 캠핑을 할 줄 알았지만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저는 낚시하는 데 필요한 지렁이를 잡았어요. 저는 아빠가 함께 낚시를 가 줄 줄 알았지만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저는 아빠와 대화하면서 제 생각을 나누고 싶었어요. 저는 아빠도 그걸 원하시는 줄 알았지만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저는 아빠가 와 주기를 기대하면서 제가 참가하는 경기 일정을 말씀 드렸어요.

저는 아빠가 꼭 올 줄 알았지만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저는 아빠와 저의 젊음을 나누고 싶었어요. 저는 아빠도 그걸 원하시는 줄 알았지만 아빠는 그렇게 하지 않았어요. 조국이 저를 불러 저는 국방의 의무에 따라 전쟁터로 떠났어요. 아빠는 저에게 무사히 집으로 돌아오라고 말했지만, 하지만 저는 그렇게 하지 못했어요.
이토록 뼈에 사무친 아빠에 대한 섭섭함을 읽으면 그 무심하기 이를 데 없는 아빠를 향해 돌이라도 던지고 싶은 생각이 든다. 아빠가 꼭 그랬을까 마는 아이가 그렇게 느꼈다는 데는 할 말이 없다. 세계 여러 나라의 성공한 CEO들에게 이 세상에서 가중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이냐는 설문조사 결과를 읽은 적이 있다. 놀랍게도 미국인들은 거의 100퍼센트가 가정과 가족관계를 가장 중요하다고 대답한 반면, 우리나라의 CEO들은 22퍼센트 정도가 가정보다는 사업의 성공이 더 중요하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독일의 CEO 6퍼센트 역시 사업의 중요성을 첫째로 꼽았는데 거기에 비해도 우리나라에는 사업지상주의자들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렇다 보니 언제 자식들과 차분히 앉아서 이야기를 나누고 고민을 덜어 줄 시간이 있었으랴.

아빠를 빌려 드립니다

한때 어느 회사의 부장을 지낸 김승주라는 사람은 두 자식과 아내를 미국에 보내고 그저 매달 힘에 겹도록 돈을 부치는 일에 목숨을 건 기러기 아빠이다. 설상가상으로 실직까지 당해서 돈을 마련할 길은 아득하고 그렇다고 돈마저 보내지 못했을 때 아버지라는 존재 가치는 이 세상 아무 데서도 찾을 수 없게 될 것 같은 두려움에 빠진다.
아내에게서 밤중이고 새벽이 고를 가리지 않고 오는 전화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과 아내가 맡겨 두고 간 애완동물 이구아나의 안부를 묻는 것이 고작이다. 그런 압박에 시달리던 어느 날 그가 치과에서 치료를 받다가 건너편 공사장 에서 추락하는 인부를 보면서 돈을 마련할 길을 생각해 낸 것이 아빠를 팔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아버지를 팔겠다는 것이 아니고 아빠가 필요한 사람에게 자신이 아빠의 역할을 해 주는 아르바이트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터넷에 광고를 낸다. 그런데 생각보다 놀라운 반응이 왔다. 아비를 다 팔아먹는 후레자식이라고 욕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기저기서 진짜 주문 상담이 온 것이다.

첫 번째 고객은 어려서부터 아빠 없이 살아온 어느 새댁이 오래 전에 돌아가신 자기 아빠에게 제사를 지내고 싶어하는 데 제사 음식을 대접 받는 죽은 아빠의 혼령 노릇을 하는 역할이었다.

다음으로는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아버지를 모셔오라는 담임선생님의 요구에 친아버지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서 대역을 구하는 고등학생의 부탁을 들어주는 일이었다.
또 아버지 같은 연인을 찾는 여인의 야한 요구를 들어주기도 한다. 자장면을 먹고 싶은데 어려서부터 아버지로부터 짬뽕만 먹도록 강요 당한 청년의 복수의 대상이 되어 지하실에 갇혀 짬뽕만 먹는 아버지의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정자은행을 통해 아기를 낳은 어느 쇼핑호스트의 부탁을 받고 딱 한 번 그 아이의 아빠가 되어 하루 동안 놀아 주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아버지라는 존재의 의미가 무엇인가에 대해 심각한 갈등을 하게 된다. 부모와 자식간에 정상적인 관계가 깨지면 가정이라는 인류 행복의 기본단위가 흔들리게 된다. 그 이후의 사태는 쉽게 짐작하고 남는 일이다.

[칼럼리스트 윤상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