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족하며 사는 법!

만족하며 사는 법!

인생이 가장 잘 안 풀릴 때에도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 하지만 오늘날과 같이 혼란스러운 이 세상에서 어떻게 하면 행복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인생이란 두 개의 기찻길 위로 여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기찻길 하나는 우리에게 일어나는 나쁜 일이고 다른 하나는 좋은 일이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 양기찻길을 달린다. 여러분도 살면서 그렇다고 느낀 적이 있는가? 직장에서 봉급이 올랐는데 다음날 가족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아이가 장학금을 받고 명문대학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다음주에 가족이 탄 차가 교통사고를 당한다.

이 세상에는 몇 초에 한 명씩 아이가 태어나고 몇 초에 한 명씩 누군가 죽는다.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일을 동시에 경험하면서 스트레스가 쌓인다. 이러한 세상에서 평
안과 만족을 찾는 것이 가능할까? 그렇다면“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는”방법을 살펴보도록 하자.

1. 빚을 지지 마라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는 말이 있다.
커다란 집을 소유하고 집 앞에 차를 여러 대 세워 두고, 방 마다 텔레비전을 비치하고, 장롱을 옷과 장난감으로 가득 채 우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을
사려고 빚을 지면 걱정거리가 생긴다. 미국 가정의 평균 신용카드 빚이 7천2백 달러(6백7십만 원)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이는 거의 없다. 빚이 수많은 걱정과 불만을 불러일으킨다. 빚은 결혼생활도 좀먹는다. 한도액을 넘긴 카드가 20개나 되는 부부가 있었다. 수표에 일부러 서명을 하지 않고 보내 나중에 수표가 되돌아오는 동안 은행에서 돈을 얻을 수 있는 시간을 버는 등 채무자와 숨바꼭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숨 막히게 살아가던 그들은 경제적으로 쪼들리면서 말다툼이 빈번해졌다. 빚을 지기보다 소유하고자 마음을 먹으면 더 큰 만족을 발견할 것이다.

2. 가진 것에 감사하라
둘째 아이를 낳고는 우울해지면서 모든 것이 불만스러웠다. 우리 부부는 동해안에 살고 있었고 친가와 아내의 가족들은 모두 서해안에 살고 있었다. 아기를 보러 오는 친척이 없었다. 그 동네에 갓 이사 왔기 때문에 아기의 탄생을 함께 기뻐해 줄 친구가 없었다. 나는 외로웠고 지쳐 있었다. 어느 날 새로 태어난 딸을 안고 흔들의자에 앉아 울고 있는데 내가 받은 복에 대해 감사하라고 무엇인가가 나를 재촉했다.
그래서 울먹이는 소리로 감사를 표시하기 시작했다. “이렇게 건강하고 예쁜 아기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내 진을 있는 대로 빼는 어린 아들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면서 미소가 약간 지어졌다. “나와 아이들에게 헌신하는 남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내가 생각할 수 있는 작은 것 하나하나에 대해 감사하다 보니 다시 삶이 긍정적으로 보였다.

3.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기억하라
큰 불행을 딛고 일어난 사람들은 그들이 잃은 재산은 자신 들의 삶 속에 자리잡은 사람들보다 중요하지 않다고 말한다. 우리 집 아이들이 일곱 살과 네 살 되던 때였다. 그 당시 나는 봉급으로만 생활을 했다. 생일이 다가와서 아이들에게 좋은 선물을 해 주고 싶었지만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아 많은 돈을 쓸 수가 없었다. 그러던 중 한 친구가 선물을 살 돈을 벌기 위해 백화점에서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었다는 말을 들었다. 이거다 싶어 나도 J. C. 페니 백화점 장난감 매장에 아르바이트 자리를 얻었다. (그러고 보니 마침 크리스마스가 끝나자마자 이사를 가야 한다는 말을
빠뜨렸다.) 무슨 생각으로 그랬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엄청난 스트레스만 더하게 되어 내 속에 남아 있던 기쁨이란 기쁨은 다 빠져나가 버렸다. 그 해 가족에게 더 많은 선물을 주었지만 이것도 곧 잊혀졌다. 물건보다는 사람에게 시간을 더 들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배웠다.

4. 두려움은 만족을 훔치는 도둑과 같다.
다음 월급날이 오기전에 돈이 다 떨어질까봐 두려워한다. 아프고 늙고 그 뒤에 무슨 일이 생길지 두려워한다. 아이들을 대학에 보낼 돈이 넉넉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재앙이 닥쳐 그 동안 이룬 것을 모두 잃을까봐 걱정한다.

5. 더 많이 가졌다고 더 만족하는 건 아니다
영국의 어느 묘지에 남편과 아내의 묘비가 나란히 있다. 아내의 묘비에는“더 많이 원하다 죽다.”라고, 남편의 묘비에는“아내에게 더 많이 주려다 죽다.”라고 적혀 있었다. 더 많이 원하는 욕망에 우리는 쉽게 사로잡힌다. 친구가 고 화질의 평면 텔레비전을 사면 나도 따라 사고 싶다. 이웃에서 부엌을 새로 고치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할 것 같다. 물건 하나를 사러 가게에 갔다가 다른 물건을 잔뜩 사 들고 나온 적이 없는가? 상점에서는 우리가 필요 이상으로 사도록 부추기는 방식으로 상품을 진열한다. 몇 달 전 마시 백화점에서 신발을 세일했다. 내가 신발을 신어보고 있는데 다른 손님이 오더니 물었다. “저 샌들 나한테 어울리지 않아요?”“네, 그러네요.”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그녀가 웃더니 말했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그냥 세일이 되면 주체를 못하겠어요. 이미 집에 신발이 69켤레나 있어요. 보육 사로 일하기 때문에 작업화 외에는 신지 않는데 말이에요.”나도 그녀와 함께 웃으면서도 그녀가 멀리 사라질 때 나에게 더 많이 가지려는 욕망을 눌러 주시고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다.

[칼럼리스트 윤상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