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널 지켜줄게

자기보다 더 어리고 약한, 돌봄을 필요로 하는 대상 앞에서는 누구나 더 굳세어지고, 무서움도 피하지 않고 맞설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는 말이 떠오른다.
아이는 작은 곰 인형을 안고 숲 속을 걸어가면서 “걱정하지마, 내가 널 지켜줄게”라고 말하며 혼자 걸어가기에는 쉽지 않은 낯선 숲길을 헤쳐 나간다. 숲에는 동물 울음소리 같은 여러 가지 소리들도 들리고, 커다란 나무토막도 떨어져 있다.
이리로 가면 집으로 나오는 길이 열릴 거라 생각하고 곰돌이를 안심시키며 걸어가는 작은 아이. 바람처럼 달릴 수도 있고, 나쁜 애들이 나오면 커다란 몽둥이로 때려눕힐 테니 하나도 안 무섭다고 큰소리치며 걸어가지만 마음속으로는 두려움에 떨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새로운 길을 걸어가야 할 때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어려움에 부딪히거나, 낯선 새로운 길을 걸어가야 할 때, 잘 해보겠다고, 잘 할 수 있다고 자기 암시를 하며, 그렇게 용기를 내어보다가도 막상 그 길을 들어서고 나면 잘 할 수 있을까? 이 길이 맞기나 하는 걸까? 어디까지 가야 하는 걸까? 두려움이 일기도 하고 자신이 없어지기 도 한다. 이제 막 혼자 힘으로 일어서기 시작하고, 세상에 맞서야 하는 아이들은 어떤 느낌일까?

물론 새로운 상황에 쉽게 적응하고, 두려움을 느끼지 않는 아이들도 있겠지만, 소심한 아이들은 자기 혼자 힘으로 세상을 만나야 한다는 게 두렵고, 힘들기도 할 것이다. 그걸 옆에서 지켜보는 부모는 마음이 안타깝긴 해도 직접 거기에 뛰어 들어 아이를 꺼 집어낼 수는 없다. 아이가 스스로 두려움을 딛고 일어설 수 있도록 지켜보고 마음으로 응원하는 수밖에…….

따뜻한 눈길

그런데 부모가 할 수 없는 일을 곰돌이 인형이 해주었다. 큰소리치며 자신감에 차 있던 아이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고, 몸은 자꾸만 움츠러들고 있으니 이때부터 아이의 품 안에 안겨 있던 곰돌이 인형이 아이와 손을 잡고 함께 걸어간다. 곰돌이 인형의 몸집은 점점 커져서 아이를 감싸기도 하고, 어깨를 어루만지고, 안아주었다.
커다랗게 변한 곰 인형이 두려워서 떨고 있는 아이의 손을 잡아 주고 말없이 아이를 쳐다보는데 ‘그래 무섭지, 아까는 네가 날 지켜줬으니 이제 내가 널 지켜줄게’ 하고 말하는 듯하다. 따뜻한 곰 인형의 눈길이 느껴지는 그림이 참 좋다.

자기 경험을 들려주는 것

처음에는 아이가 곰돌이 인형을 돌보아 주고, 무서움에서 지켜주는 형 노릇을 했지만 나중에는 곰돌이 인형이 아이를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었다. 곰돌이 인형 앞에서 아이는 씩씩하고 용기 있는 안내자가 되기도 하고, 또 두렵고 무서운 자기 마음을 폭신하고 넉넉한 곰돌이 품에 기대고도 싶어했다. 누구한테나 이런 곰돌이 인형 같은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낯선 곳을 두려워하고, 새로운 곳에 적응하기 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는 큰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있어 이래저래 걱정이 많은데 어쩔 수 없이 어린이 집에 가야 하는 어린 동생을 두고 “누나도 처음에 유치원에 갔을 때 좀 울었어,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처음에는 울 수도 있어” 하며 자기 경험을 들려주는 걸 들었다. 아직 세 돌이 되지 않은 어린 동생 앞에서 큰 아이는 어른스러운 모습을 보이며 동생을 격려해주고 있었다.

곰돌이 인형 같은 존재가 있다면

엄마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이는 훨씬 더 씩씩하고 용기가 있겠지만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동네도 낯서니, 혼자서 학교에 걸어가는 게 쉽지 않을 텐데…….
그럴 때 아이에게 용기를 주고, 아이를 지켜주기도 하는 곰돌이 인형 같은 존재가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학교를 오가는 길에 친구가 될 수 있는 작은 인형 하나를 가방에 메달아 주어야겠다.

[칼럼리스트 : 윤상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