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를 버리는 사람

[자기를 버리는 사람]

전무출신(全無出身)은 스스로 발언하고 스스로 주인 되어 영생토록 몸바칠 각자의 聖職(성직)이므로 누가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근심 할 일도 아니요 또는 나에게 대우가 없음을 성낼 일도 없나니 만일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했다. 자기 목숨만을 사랑하는 사람은 잃을 것이요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비우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기까지 그 목숨을 보존할 것이다. 佛敎(불교)의 法句經 (법구경)에서는 몸과 마음에 내 것 이라는 생각이 없고 그 것이 없어진다 하여도 조금도 걱정하지 않는 사람 세상은 그를 “수행승(修行承)” 이라 부른다
유교의 論語(논어)에서는 자기자신을 누르고 禮(예)로 돌아감이 仁(인)이다. 하루라도 자기를 누르고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갈 것이다.

당신의 選擇(선택)

사람들은 저마다 부자를 꿈꾼다. 왜 그럴까? 행복한 삶을 위해서다. 그러나 부자라고 해서 누구나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니다. 남들에게 존경 받으며 행복한 인생을 사는 부자가 있는가 하면, 돈 때문 에 불행에 빠지는 부자도 있다. 전자가 누구나 꿈꾸는 진짜 부자라면, 후자는 누구도 부러워하지 않는 가짜 부자이다.
그렇다면 왜 누구는 행복한 진짜 부자가 되고, 누구는 그저 그런 가짜 부자가 되는 걸까? 그것은 그들 선택의 결과이다. 부요는 분명 마음이 가난한 자가 위로 주시는 축복을 받는 것이다. 이전시대, 사회에 존경 받는 사람들은 모두 부자로 사는 축복을 누린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늘로 주신 부요의 축복을 온전히 누리는 것과 그렇지 못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즉, 창조주가 주신 부요의 축복 가운데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더 행복한 삶을 살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부자로서 인생의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현명한 선택, 우리는 그 해답을 세 명의 부자이야기를 통해 진짜 부자가 되기 위한 현명한 선택은 무엇인지 살펴보자.

貪慾(탐욕)의 選擇(선택)

10대, 20대는 이성과 성, 30대는 돈, 40대는 사업과 부동산, 50대는 권력, 60대는 건강에 탐심을 품게 된다고 한다. 우리의 마음에 쉴 새 없이 다가오는 탐욕의 유혹. 그러나 탐욕은 아무리 채워도 좀처럼 채워지지 않는다. 오히려 채워지지 않는 탐욕으로 근심과 걱정거리를 만들 뿐이다. 러시아의 대문호 톨스토이가 “탐심이 없으면 없을수록 인생이 행복하다”라고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처럼 오늘날 현대인들은 각종 탐욕으로 가득한 인생을 살고 있다. 부자도 예외는 아니다. 탐욕을 버리지 못한 부자 관원의 이야기처럼 어느 날 중생이 부자 관원이 찾아와 영생을 얻는 방법을 물었다. 이에 스승은 가진 재물을 모두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고 하셨다. 그러나 가진 것이 많았던 부자 관원은 근심 끝에 그만 돌아가고 말았다. 영생보다 탐욕을 선택한 부자. 탐욕을 버리기 어려운 것이 이 부자 관원만의 이야기일까?

부요가 축복인 것은 그것이 세상에 사랑의 씨앗으로 뿌려져 열매를 맺는 까닭이다. 그리고 부자는 그러한 역할을 위해 특별히 선택된 축복의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탐욕을 절제하지 못하고, 개인의 부요만을 탐한다면 진짜 부자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무소유의 참된 의미.

無所有(무소유)의 저자 法定(법정) 스님의 이야기 내용에 무소유는 아무 것도 소유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이 책에서 ´우리는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이게 된다. 따라서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인가에 얽매이는 것, 그러므로 많이 갖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많이 얽혀 있다는 것이다´ 라고 말씀하신다.

´소유하다´라는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그냥 쉽게 ´필요에 따라서 갖는다´ 라고 나와 있다. 우리는 많이 소유하고 싶어한다. 우리가 열심히 공부하는 목적은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것이고, 다시 말하면 물질적으로 풍요롭게 살기 위해서이다. 결국 더 많은 돈을 소유하기 위해 더 열심히 공부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작가는 소유하는 만큼 얽힌다고 했다.

나도 무소유를 무조건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정말 세상 사람들이 모두 무소유를 고집한다면 세상은 원시 시대로 다시 돌아갈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람들이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 만들어 낸 산업화, 기계화, 도시화 속에서 사는 우리는 이러한 정신을 알아야 할 필요성을 느낀다. 모두가 무소유의 경지에 다다르진 않더라도 최소한 일상에서 한번쯤 무소유를 생각하고 자신을 반성할 수 있게 말이다. 이 책의 내용은 복잡하지도 길지도 않다. 하지만 감정이 격분할 때 이 책을 읽으면 내가 격분하는 일이 아무것도 아니게 느껴지고 이내 안정을 찾게 된다

< 칼럼리스트 윤상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