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어가는 가을 소리

[익어가는 가을 소리]

눈부신 햇살 아래로 잎사귀가 하나 둘씩 물들어 가는 나뭇잎들을 바라보면서 이 가을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

지는 계절이다. 노을 진 차창 너머로 하루가 다르게 곱게 색깔을 수놓은 나뭇잎을 바라보면서 가을이 깊어 가는 소리가 들려 온다, 가을은 언제나 우리에게 생각하라고, 한 걸음 저 너머를 바라보라고, 그리고 흘러가는 뜬구름을 바라 보면서, 돌아보지 못했던 지난날을 돌아보라고, 가을의 소리는 이렇게 오늘도 전하여 오는가 보다.
나뭇잎 흩날리는 바람 속에서도 소나무 높은 숲 속에서도 익어가는 가을 소리는 들려온다. 바람에 눕고, 바람 에 일어나는 풀잎, 스세 이는 소리 속에도 가을이 소롯이 담겨 있다. 우리 마음에 담겨 있던 가을 향취에서도 가을의 소리는 어김없이 들려오고 있다

전에는 듣지 못했던 소리를 듣게 되고,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느낌을 가지게 되며, 전에는 갖지 못했던 생각을 갖게 되니 이렇듯 우리는 나이를 더 먹어가는 느낌을 받으며 철이 들어가는 것인가 보다. 삶은 연륜 속에 깊어져 만 가고, 바람 소리에 익어가는 인생인 것 같다. 오래 오래 달려 있어도 익지 못한다면 우리 삶은 허무하게도 맛없는 과실이 되 것이고. 모양이라도 좋으면 다행이겠지만 결국은 그 모양조차도 오래 가지는 못하는 법.

스쳐 부는 가을 바람 소리에 오늘도 스산한 마음 뒤척이다 보면 여전히 삶은 익지 못해 떫은 과육 뿐이고, 이루지 못한 꿈 때문에 속상해하며, 또 하루를 서성이게 되는 게 우리들 모습이다. 그러나 살다 살다 보면 어느 날 문득 가을 바람이 스산하지 않고 푸근하게 느껴질 때가 있을 것이다.

그냥 좋은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이듯 재물이 많아서 좋다거나 노래를 잘해서 좋다거나 집안이 좋아서 좋다거나 그런 이유가 붙지 않는 그냥 좋은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일 것이다. 이유가 붙어 좋아하는 사람은 그 사람에게서 그 이유가 없어지게 되는 날, 그 이유가 어떠한 사정으로 인해 사라지게 되는 날 얼마든지 그 사람을 떠날 가망성이 많은 사람이기 때문 이다.

세상이 우리를 힘들게 하여도 그대와 나 귀뚜라미 노래하는 가을의 향기 속에서 좋아하는데 이유가 없는 사람이 가장 좋은 사람이라면 어디가 좋아하느냐고 물었을 때 딱히 꼬집어 말 한 마디 할 순 없어도, 싫은 느낌은 전혀 없는 사람. 사랑과 행복이 어울림 되어 기쁨이 가득한 사랑으로 풍요로운 가을향기를 나눌 수 있는 느낌이 좋은 사람이 그냥 좋은 사람으로 다가올 것이다.

말 한마디 없는 침묵 속에서도

어색하지 않고 한참을 떠들어도 시끄럽다 느껴지지 않는. 그저 같은 공간과 같은 시간 속에 서로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만으로도 기쁜 사람 그냥 바라만 보아도 좋은 사람이 느낌이 좋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가을이 아름다운 이유는 혼자서 바라보며 감상하기에는 너무 아까울 정도로 아름다운 가을꽃과 같이 그들을 만나 행복을 한아름 안아보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꽃이 전하는 가을 이야기에 귀도 기울여 보고 그 향기에 취해도 보고 그러면 가슴에 무거운 돌 하나 매달아 놓은 듯한 중압감이나 가래처럼 달라붙어 숨통을 조이는 스트레스가 언제 그랬느냐는 듯 사라지기 때문이 아닐까.

가벼운 몸과 마음으로 한없이 높아만 가는 하늘을 향해, 큰 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맘껏 소리쳐보고, 알콩달콩 더불어 살아가는 세상이야기 함께 나누며, 호박같이 둥글게 잘 익은 행복을 마음 가득 담아보는 것이다. 꽃과 나누는 가을이야기에는 지루함이 없고 건조하지 않은 가을만의 쏠쏠한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가을이기에 느낄 수 있는 자연의 위대한 선물.

장맛이 오래될수록 진한 맛을 내는 것처럼, 사람도 오래 만날수록 정은 깊어지게 마련이다 하물며 사람과 꽃이 매년 계절을 달리하며 만나는 돈독한 정이야말로, 어머니 품 속같이 편안하고 행복하리라는 답을 쉽게 얻을 수 있다. 어느 꽃들은 아주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사랑 받고,

인생(人生)은 무지개

가을이 오는 길목의 석양에 떠오르는 고운 무지개를 보다가, 길 옆 논 가에 차를 세우고 소풍 나온 아이처럼 좋아하는 아내와 함께 팔짱을 끼고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무지개가 일곱 색깔이라고 맨 처음 주장한 사람 은 만유인력을 발견했던 아이작 뉴턴이다. 아이작 뉴턴(Isaac Newton)은 서구 과학의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 을 끼친 인물중의 한 사람. 빨강, 주황, 노랑, 초록, 파랑, 남색, 보라색 일곱 가지 색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무지개가 꼭 일곱 가지 색깔만은 아니다 빛의 굴절이 만들어낸 셀 수 없이 많은 색깔로 이루어 진 것이 무지개 이기에 빛이 만들어 내는 모든 아름다움의 총체(總體)라 표현할 수 있다.

가을의 한복판에서 만난 꽃들이 펼치는 환상적인 향연과 무지개는 어느 가수가 부른 노래 가사 한 소절을 떠올리게 한다. “올 가을엔 사랑 할 꺼야” 가을에 피어나 사랑을 나누는 꽃처럼 많은 사람들이 올 가을에는 더 많은 사랑을 나누고 향기를 전하며 아름다운 가을과 함께 다 같이 풍요로움으로 만들어 갈 수 있기를 바라며.

< 칼럼리스트 윤상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