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어도 낡지 않는 삶!

[늙어도 낡지 않는 삶!]

늙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사람

가난하지만 쓸쓸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이미 풍요로움으로 채워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고독하지만 전혀 서글퍼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이미 행복한 사람으로 드높아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말이 없지만 전혀 답답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이미 평화의 사람으로 투명해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름을 알아주는 이가 없으나 결코 낮아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인간적으로 이미 순수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만히 앉아 있지만 놀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이미 신비한 사람으로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결함이 있지만 그것이 결함으로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는 이미 세속의 틀 따위를 뛰어넘은 사람으로 우뚝 서 있기 때문일 것이다. 나이가 많지만 늙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 사람이 있다. 그는 정녕 싱싱하고 젊은 영혼의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나는 어디쯤 서서 그들을 바라보고만 있는가. 필자는 관찰자 아닌 주인공의 잎 장 에서 풍요로운 마음가짐으로 채워 보라는 어느 풍경 속의 이야기를 담아보았다.

거울에 비친 자기의 모습

사람은 삼면경(三面鏡) 즉 세 가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에서 늙음을 발견한다고 한다. 첫째 거울은 기력을 잃고 노쇠해진 노부모의 모습이고, 둘째 거울은 성장하여 곁을 떠나는 자녀의 모습이고, 셋째 거울은 전과 다른 자신의 모습이다. 늙음은 어느 날 문득 발견된다. 거울을 보다가 미간과 눈가에서 발견되기도 하고, 우연히 들여다 본 탄력 잃은 손등에서 발견되기도 한다. 원불교의 교조 소태산은 인생을, 천심을 소유한 유년기, 기운이 넘치는 청년기 그리고 수양으로 늙어가는 노년기로 분류하였다. 그리고“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유년기에는 문자를 배우게 하고, 장년기에는 도학을 배우며 제도사업에 노력하게 하고, 노년기에는 경치 좋은 한적한 곳에 들어가서 세상의 애착 탐착을 다 여의고 생사 대사를 연마하게 한다.”고 하였다. 즉 노년기를 낡아가는 시기가 아닌 자신을 곱게 빗질하는 시기로 본 것이다.

고독이 사랑에 닿을 때

누구나 자신이 늙어가기 시작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그 기분은 묘했다. 그리고 가끔 늙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어떻게 늙어가야 하나 늙어가는 것에 대해 생각할 때마다 어린 시절 수학여행에서 만난 그 할아 버지 이야기의 쓴 사람이 생각이 난다. 노구(老軀)에도 불구하고 끝내 자리를 사양하던 그 넉넉함은 어디서 나왔을까? 나 또한 그렇게 늙어갈 수 있을까? 김영수 님은 <고독이 사랑에 닿을 때>에서“늙고 있다는 것이 기쁨일 수 있다 는 것은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뒤를 돌아보면서 덧없음의 눈물만 흘리거나 남을 원망하면서 삶에 대한 허무감에 젖지 않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성스러운 존재와, 가족들과 이웃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일구면서 미소를 지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기쁜 일이다.”라고 하였다.
늙어간다고 해서 반드시 낡아가는 것은 아니다.

이해인 님의 시집 <작은위로>에 실린‘어느 노인의 고백’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하루 종일 창 밖을 내다보는 일이 나의 일과가 되었다. 누가 오지 않아도 창이 있어 고맙고 하늘도 구름도 바람도 벗이 됩니다. 외로움 온다 해도 친구 삼아 음악을 듣습니다. 이 세상을 떠나기 전 내가 용서할 일도 용서 받을 일도 참 많지만 너무 조바심하거나 걱정하진 않는다는 것이다. 고요하고 고요하게 하나의 노래처럼 한 잎의 풀잎처럼 사라질 수 있다면 난 잊혀져도 행복할 거예요.”늙어간다고 해서 반드시 낡아가는 것은 아니다. ‘늙음’과‘낡음’은 동의어가 아니다. 비록 글자로는 한 획 차이밖에 없지만, 그 품은 뜻은 정반대일 수 있다. 늙음과 낡음이 함께 만나면 허무와 절망밖에 남지 않는다. 그러나 늙어도 낡지 않는 삶이 있다. 몸은 늙어도 마음과 인격은 더욱 새로워질 수 있다. 아름답게 늙어가는 비결은 겉은 비록 낡아 가도 속은 날로 새로워지는 것이다. 몸은 늙어 가지만, 날마다 마음만은 새로워진다면 평생을 살아도 늙지 않는다.

낙조(落照)가 더 아름다운 이유

6월 신록의 푸르름과 <정동진>의 일출만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10월의 단풍과 시애틀 호숫가에 내려앉은 낙조 또 한 아름답기 그지없다. 오십 줄에 들어 선 친구들의 히끗히끗한 머리칼과 적당히 주름 잡힌 눈가를 보고 있노라면 인생의 역정과 노련함이 느껴져서 좋다. 며칠 전, 천상 병 님의‘귀천’(歸天)이라는 시를 읽으면서 마지막 단에서 문득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단언하건대 깊어진 가을 때문만은 아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노을 빛 함께 단 둘이서 /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 손짓하면은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10월 한 해를 정리하는 가을의 문턱에서 – 인생을 소풍 나온 것으로 생각하며 항상 긍정적으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사람이 되라는 시인님의 메시지일 것이다 필자는 이 시를 가슴에 담는 순간 인생이 바뀌는 계기가 되고파 항상 마음에 새기려고 노력하며 살려고 한답니다..

< 칼럼리스트 윤상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