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마태복음 6장 1절).


산 위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은 그분께서 생애를 통해 말없이 가르쳐 오셨으나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한 교훈을 말로 표현한 것이었다
. 그들은 예수께서 그처럼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도 그들이 가장 좋게 생각하는 것을 얻는 데 그 능력을 사용하시지 않자 어떻게 저럴 수 있는가 하고 의아해 했다. 그들의 정신과 동기와 방법은 예수님과 반대였다. 그들은 매우 열성적으로 율법을 존중했지만 실제적인 목적은 자신의 영광이었다. 이 때문에 그리스도께서는, 자아를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범하는 자임을 그들에게 나타내시고자 하셨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이 중히 여기던 원칙들은 각 시대 사람들의 특성을 그대로 보여 준다. 바리새인의 정신은 인간의 본성에 속한 정신이다. 따라서 구주께서 당신 자신의 정신과 방법이 랍비들의 그것들과 상이함을 나타내셨을 때, 그분의 교훈은 각 시대의 사람들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리스도 당시, 바리새인들은 그들이 덕행의 보상으로 간주해 온 세상의 명예와 번영을 얻기 위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자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었다. 동시에, 그들은 세인의 주목을 끌고 거룩하다는 명성을 얻기 위하여 사람들 앞에서 자선 행위를 자랑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그러한 봉사를 인정치 않으신다는 것과 또 그들이 받게 될 상은 그처럼 추구하던 사람들의 아첨과 칭찬뿐일 것이라는 사실을 단언하시면서 그들의 외식을 책망하셨다.

그분께서는 “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하실 때 예수께서는, 친절한 행동은 항상 비밀로 지켜져야 된다고 가르치신 것이 아니다. 사도 바울은 성령의 감동으로 편지를 쓰면서, 마게도니아 교인들의 관대한 자아 희생의 정신을 숨기지 않은 것은 물론,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서 역사하신 은혜를 이야기함으로써 다른 사람들도 동일한 정신으로 물들게 하였다. 그는 또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너희 열심이 퍽 많은 사람들을 격동시켰느니라”(고린도후서 9장 2절)고 말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자선이 사람들에게서 칭찬과 명예를 얻기 위한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그분의 생각을 분명히 밝혀 준다. 진정으로 경건하면 자랑하려는 마음이 들지 않는다. 칭찬과 아첨의 말을 듣기 원하고 그것들을 달콤한 음식으로 먹는 자들은 이름만의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들의 선행을 통하여 영광을 그들 자신에게 돌리지 아니하고, 그들에게 일하도록 은혜와 능력을 주신 분에게 돌려야 한다. 모든 선한 일은 성령을 통하여 성취되며, 성령은 받는 자가 아닌 주신 분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주어진다. 그리스도의 빛이 심령 속에서 빛나게 되면, 입술이 하나님께 돌리는 찬송과 감사로 채워질 것이다. 그대의 기도, 의무 수행, 자선, 극기가 생각과 대화의 주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찬양을 받으시고, 자신은 숨겨질 것이다. 오로지 그리스도만이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진실한 마음으로 주되 선한 행실을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생하는 자들에 대한 동정과 사랑으로 해야 한다. 목적의 진실, 곧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정한 친절은 하늘이 귀하게 여기는 동기이다. 하나님께서는 진실로 사랑하고 마음을 다하여 헌신하는 영혼을 오빌의 순금보다 더 가치 있게 여기신다.

우리는 보상이 아닌 봉사를 생각해야 한다. 이런 정신으로 나타내는 친절에는 필히 그 보상이 있을 것이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하나님 자신이 다른 모든 상급을 포함하는 위대한 상급이 되시는 것은 사실이나, 영혼은 품성 면에서 그분과 동화될 때만 그분을 받아들이고 그분으로 인해 즐거워 할 수 있다. 동류가 되어야 서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가 인류의 봉사를 위해 자신을 하나님께 바칠 때, 비로소 그분은 당신을 우리에게 주신다.

누구든지 마음과 생애에 하나님의 축복이 다른 사람들에게 흘러 들어갈 수 있는 길을 내면 자신도 반드시 풍성한 축복을 받게 된다. 산과 들은 산 속의 개울이 바다로 흘러가도록 길을 제공하지만 그것 때문에 피해를 보는 일이 없다. 오히려, 주는 것으로 인해 몇 백 배 보답을 받는다. 노래를 부르며 흘러가는 시냇물이 신록과 수확이라는 선물을 남기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기슭의 풀을 봐도 다른 곳보다 더 푸르고, 나무들도 더 싱싱하고, 꽃들도 더 탐스럽다. 대지가 여름의 폭염으로 바짝 말라 갈색으로 변할 때에도, 강줄기는 하나의 파란 선을 이룬다. 이리하여 산의 보화가 바다로 흘러가도록 가슴을 열어 준 들판은 생기와 아름다움, 곧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으로 흘려 보내는 통로로 자신을 제공한 사람이면 누구나 받게 되는 그분의 은혜의 보상을 증거하는 것들로 옷 입게 된다.

이것은 불쌍한 사람들에게 자비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받는 축복이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한다.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 하리니…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이사야 58장 7~11절).

자선 사업은 이중으로 축복을 받는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선을 베푸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축복하기도 하지만 스스로 더 큰 축복을 받는다. 마음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은혜는 이기심과 반대되는 품성의 특성 곧 생애를 깨끗하게 하고, 고상하게 하고, 풍성하게 해줄 특성을 계발시켜 준다. 은밀한 중에 행한 친절한 행동은 마음을 하나로 묶어 주고, 이들을 모든 관대한 생각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의 마음에 더욱 가까이 가도록 이끌어줄 것이다. 꽃에서 풍겨 나는 향기처럼 생애 속에서 조용하게 흘러나오는 작은 친절, 곧 사랑과 자아 희생의 작은 행동은 생애의 축복과 행복을 나누어 가지는 일에 작지 않은 부분을 이룬다. 타인의 유익과 행복을 위한 극기가 비록 이 땅에서는 비천하고 칭찬 받지 못할 일로 취급될지 모르나 하늘에서는, 부요하였으나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영광의 왕이신 그분과 우리가 하나 된 것을 나타내는 표로 인정받게 된다는 사실을 결국 알게 될 것이다.

친절한 행동은 은밀한 중에 행해질 수 있으나, 그렇게 한 사람의 품성에 나타나는 결과는 숨겨질 수 없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로서 성의와 관심을 가지고 일한다면, 마음이 하나님과 밀접히 상통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우리의 마음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영은 그 거룩한 접촉에 대한 응답으로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과 조화되게 하실 것이다.

맡겨진 재능을 지혜롭게 활용한 자들에게 더 많은 재능을 허락하시는 분께서는 사랑하는 분을 믿는 백성들이 그분의 은혜와 능력을 힘입어 행한 봉사를 즐겨 인정하신다. 선한 사업에서 그들의 재능을 활용함으로 그리스도인 품성의 계발과 완성을 위하여 노력해 온 사람들은 장차 올 세상에서 그들이 뿌린 씨를 거두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 시작된 사업은 영원히 계속될 더욱 거룩하고 고상한 생애에서 그 극치를 이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