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의 사랑에 내가 있고#2

나는 치장할 시간도 주지 않는 이분들이 서운하기도 하였지만 뭐 이나이에 뭐가 두려우랴! 생각하고 나중에는 이분들이 원하시는 포즈까지도 잡아서 사진을 찍었는데 나중에 이분들이 보내주신 사진을 보니 어디에다 내놓을 사진이 아니라서 한참을 고민했다.

머리는 이제 염색을 하지않으려고 그냥 자라는대로 기르는 중이라 머리뿌리쪽은 하얀머리카락이고 머리중간부터 끝자락은 그동안 브라운컬러로 염색했던 머리카락에 염색이 빠지면서 블런드도 아니고 노란색도 아닌 이상한 색이 되어가지고 나를 잘아는 친구들은 나에게 미쿡아줌마 라고 불러대고는 한다.

30대중반부터 머리카락이 세기시작했다.

아버지가 30대에 머리가 세기 시작하셨다는데 나역시 아버지가 세기 시작하였다는 그나이때부터 머리가 세어지기 시작해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머리염색을 하였는데 이제는 그염색하는 과정이 너무 피곤하고 복잡하기도 하고 또 미장원가서 염색을 하려면 미장원에서 기다리는 동안에 다른일들을 할수없다는 생각에 시간이 아깝고 또 그것도 쉬운일이 아니고 해서 염색을 그만두기 시작한지 3달째되니 내 머리카락은 어느국적인지 알아볼수없게 하얀색 머리 뿌리에, 머리카락 중간은 노란색에, 머리카락 끝은 검은색 에다가, 그동안 신나게 먹고 마음껏 자라도록 내버려둔 사진속의 내몸매는 배가 어디인지 허리가 어디인지 주소를 알수없었다.

아무튼 이 먼곳 포틀랜드까지 출장와서 그것도 수영복만 걸친채로 수영장안에서 나의 글을 읽으시며 나를 속속히 아시는 이분들에게 둘러쌓여 그동안 내가 교차로에 연재했던 글들을 이분들이 말해주시는데 아니, 나는 내가 언제 쓴글인지도 기억이 감감한데 이분들은 그글들을 정확히 기억을 하면서 내용까지도 얘기를 해주시는 것이었다.

이날 나는 수영은 이미 물건너간 얘기이고 물속에서 이분들이 살아가는 이야기를 듣느라고 내귀가 바빴다.

며칠전이었다.

내전화기에 한국분인게 분명한 할머님이 영어로 녹음을 해놓았었다.

하이,레지나채 디스이즈 현0 박. 나는 레지나씨 글 독자요. .나는 쇼우라인에 사는데 지난번에 쓴글, 함께 걸어가는 길을 읽다가 내가 꼭한번은 레지나씨하고 얘기를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를 안받는구려.

나는 지금 나이가 90살이라오..

1974년도에 자식들 데리고 미국에 와서 지금까지 감사하게 잘살고 있어요..

시간되면 전화주시구랴?

나는 휴식시간에 잠깐 전화를 살펴보고 무슨 멧세지인가 살펴보려고 했으나 이분이 90세 어르신인것에 감동이 되어서 무조건 전화를 드렸다.

네, 전화기 저편으로 그연세로 들리지 않는 할머님이 대답을 하신다.

레지나씨, 내가 지나씨 글을 좋아한다우!

레지나씨 글에는 사람사는 맛이 난다우!

레지나씨가 글쓴 것을 내가 다 오려두고 가끔씩 그글을 읽으며 마음이 찡해지기도하고 마음이 슬퍼서 울기도 하고 어떤때는 웃겨서 웃기도 한다우!

레지나씨, 참 고마워요!

이런글을 써주니 당신이 너무 감사하다우!

나는 금요일만 되면 마켓에 간다우!

레지나씨 글이 나오는 날이기 때문이라우!

아직까지는 남의 도움없이 마켓에도 가는데 아무튼 감사하우!

할머니는 1974년에 미국에 오셔서 영어를 배우시느라 3년을 영어학교에 다니셨다는데 49살에 남편과 둘째따님이 연탄가스에 중독이 되셔서 돌아가시고 남은자식들을 데리고 미국에 오셔서 열심히 살아오신 얘기를 한시간이나 해주셨다.

나는 할머님 얘기가 너무 재미있고 감동이 되어서 나를 만나러온 홈리스고객이 기다리는 로비로 내려가 한시간후에 다시오라고 말한후 할머님의 애기를 들었다.

할머님의 긍정적인 사고 방식, 자신이 하면 된다고 생각하시고 무슨일든지 적극적으로 삶을 살아오신 태도 등… 여러말씀을 들으면서 많이 배울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감사한 것은 나는 글을 잘쓰는 사람이 아닌데에도 내가 쓰는 글을 아껴주시고 그글을 귀히 여기시는 분들이 계시다는데에 나역시 감동을 받았다.

사실 글쓰는 일이 쉬운일은 아니다.

더구나 나처럼 훌타임으로 일하면서 각주로 출장도 다니고 가끔씩 컴뮤니티 봉사도 하면서 매주 글을 쓴다는 일이 쉬운일은 아닌데 이렇게 글을 재미있게 읽어주시고 그글을 아껴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계속 글을 쓸수있는 것이다.

가끔씩은 시간에 쫒겨서 글을 쓸수 없을때가 있는데 여러분들의 내글을 기다리고 있을 것을 생각하면 웬만하면 아니, 잠자는시간을 줄여서라도 글을 써야한다는 의무감도 생긴다.

며칠전에는 지난 8월에 식도암이 생겨서 6개월정도 살수있다는 내고객이었던 부르스앞으로 온 편지를 보면서 가슴이 찡하게 아파오면서 그아픈 마음을 글로 써놓았다.

부르스는 암이 발생한지 얼마 안되어서 급하게 저세상 딴나라로 가버렸다. 죽기전에 꼭하고 싶다던 네가지 소원을 들어주려고 나는 정신없이 바쁘게 뛰어다니다가 준비가 다되어 갈 무렵 별안간 브루스가 떠나버린 것이었다. 부르스의 네가지 소원은 그레이트윌 타보기, 스페이스 니들에서 밥먹어보기, 캐나다에 사는 부르스의 90여세 이모님 만나보기, 샌디에고에 있는 노숙자 동생 만나보기,

내가 부르스의 카운셀러였는데 부르스가 죽은 것이 아마도 정부기관에 제대로 알려지지않았는지 나에게 부르스의 베네핏을 재조정한다고 알려주는 편지가 왔다.

편지내용에는 이편지를 받고 만일 동의를 안하면 상고를 해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이편지를 읽으며 잠시 눈시울이 뜨거워지며 세상을 떠나기 며칠전 나에게 레지나 그동안 사랑해주어서, 잘해주어서 고마워! 라고 숨이 차서 겨우 입을 떼면서 얘기를 하던 그부르스를 생각하면서 부르스 이야기를 글로 써보기 시작했다. 아직은 글이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

내가 글을 쓸수 있는 이유는 내가 일하고 있는, 아니 내게 주어진 일들이, 아니 내가 사랑하는 이들의 삶에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인 것이다.

세상에 하나도 부러운 것이 없다라고 얘기를 하면 우스울까?

그런데 내가 그렇다! 세상에 부러운일이 없다. 나는 내가 하는일이 너무 좋고 감사하고 귀해서 그무엇하고도 바꾸지 않을것이다. 내가 하는일을 아는분들이 물어온다.

냄새나고, 더럽고, 욕들어 먹고, 지저분한 그일이 왜?

냄새나고 더럽고 추한이들의 삶에 나도 함께 걸어간다는게 얼마나 신기한 일인가?

이들이 혼자서 외롭지 않도록 내가 이들의 손을 잡아줄수있는 일이 축복이 아니라면 뭘까?

가끔씩은 이일 더이상 못해! 라고 화도 날만큼 ( 30분에 fucking이라는 욕지거리를 한 60번쯤 들으면 나도 화가나기에) 힘이들적도 있지만 그래도 이들을 바라다보면 손을 잡아주고 싶은 심정이 되어지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