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주의 1
20세기 미술계의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던 입체주의 미술은 1900년대 초반에만 지속
되었다. 피카소가 <아비뇽의 아가씨들>을 발표함으로써 전개되었던 이 운동은 대체적
으로 크게 3시기로 나눌 수 있다. “자연을 원추,원통,구에 따라 취급한다”는 세잔의 말이
바로 입체주의 시작의 계기가 되었고, 그의 미술과 아프리카 흑인 조각은 이 운동의
초기에 큰 영향을 끼쳤다.
입체주의라는 말은 마티스가 조르주 브라크의 입체주의 적인 풍경화를 보고 말한데서
연유가 되었다. 피카소, 브라크, 레제등의 입체주의 화가의 그림을 보면 사물을 수많은
조각으로 분할을 하였지만, 그런 모양들이 진짜 입체적이지는 않았다. 그럼 왜 그들의
그림이 실제로 입체적으로 보이지 않았는데도 입체주의라고 했을까? 라고 의구심이
들게 만드는 대목이다. 실제로 입체주의는 입체적인것으로 보이거나 수많은 면 분할로
인하여 한쪽 방향의 모습만 표현한 것이 아니라 여러 방향에서 본 모습을 표현 하였기에
입체주의 그림이라고 한다. 이렇듯 입체주의 자들은 “미술은 모방이 아니라 창조이다”
라는 신념으로 기존의 미술을 자유롭게 하였다.
입체주의는 르네상스 이후 서양화의 전통적인 원근법과 명암법, 인상주의의 순간적인
현실 묘사를 거부하고, 자연의 여러가지 형태를 기하학적인 형상으로 환원, 시점을
여러방면으로 하여 사물의 형태를 2차원의 회화 평면 속에서 만들어서 재현하고자
했듯이. 이러한 시도들은 중기에 이르러 대상이 극한적으로 분할되어 나타난다. 그 후에
파피에 꼴레의 수법을 채용하고 되고, 이것을 과도기로 입체파 운동은 후기로 들어간다.
여기에는 풍부한 색채가 부활되어 기하학적인 색면과 결합된다.
입체주의는 피카소, 브라크와 더불어 후앙 그리가 대표적 인물들이다. 이들의 입체주의
운동은 1차대전의 발발로 종말을 맞았으나 그 성과는 그 후의 여러 미술에 영향을 미쳤다.
색채와 다이나믹한 율동을 도입했던 레제와 들로네의 오르피즘과 기계의 속도미를
표현 하고자 했던 이탈리아의 미래주의등이 그 대표적 예이다.
사물의 정면/측면/입면을 모두 관찰해서 그 모습들을 한꺼번에 재현해내고 또한 화면
전체가 동일한 중요성을 갖는 균일한 평면으로 구성되는 것으로서 정의 내려지는
입체주의의 미술 운동은 대개 피카소와 브라크의 작품을 중심으로, 세잔적 입체주의,
분석적 입체주의 그리고 종합적 입체주의로 세 시기로 나눠지는데 이 세 시기는
다음호에서 이야기 해보기로 한다.
J Art Academy
원장 이준규
피카소, <암브루아즈 볼라르의 초상> 메트로 폴리탄 미술관, 뉴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