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주의 – 강렬한 색채

야수주의 – 강렬한 색채

20세기 초반에 잠시 나타났던 미술사조로서 밝고 강렬하고 충격적인 색채를
사용하며 형태와 원근법의 왜곡하고 거친 화필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파리에서 야수주의 전시회가 열리던 날은 미술사에 큰 전환점이 된 날이었다.

그 이유는 화가들이 바라보는 색의 시각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하늘은 파란색으로 잔디는 초록색으로 칠해져 있었다. 하지만 마티스, 루오, 브라크
같은 야수주의 화가들의 그림에는 겨자색의 하늘이나 빨강색의 나무, 연두색 피부를
가진 사람들이 그려져 있었다, 이를 본 대중들의 반응은 매우 적대적이었다.

비평가 들이 야수들 이라는 표현으로 비꼬는 것에서 야수 주의란 명칭이 붙게 된 것이다.
당시 비평가로 하여금 야수주의 화가들의 작품은 한마디로 미친 짓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 이유는 실제와는 연관이 없는 색채를 사용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야수주의 화가들은 미친 것이 아니라 진지하게 어떤 풍경을 대할 때.
자신의 감정적 반응을 표현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실험한 것이었다. 이렇게 야수
주의 화가들이 전통을 거부하고 실험적인 회화 방식을 연구하게 했었던 것은
후기인상주의 화가들의 영향 때문이었다.

자연을 모방하는 것을 거부했던 야수주의 화가들의 또다른 중요한 미술계의 영향은
유럽 안에만 머물러 있지않고 비 유럽 적인 전통부족 미술품을 발견했다는 데 있다.

아프리카의 가면을 수집하거나 남태평양이나 남 아메리카의 원주민 미술품을 수집
하였으며 그것들을 에서 르네상스적인 전통에서 벗어나 보다 자유롭고 개인적인
창작 표현을 하는데 영감을 얻었고 이러한 것들은 훗날 현대미술 형성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

야수주의 화가들은 모두 강렬하고 과장된 색에 취해있었다. 그들은 대상을 묘사하는
데만 쓰이는 전통적인 색채에서 해방되어 감정을 표현하는 데 색채를 사용하였다
.
이후에 비현실 적인 색채를 극단까지 사용하다가 점차적으로 세잔이 강조한 내부
구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훗날 입체주의 미술에 영향을 주었다
.

이처럼 야수파는 몇 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의 미술 활동 이었지만 20세기 현대미술의
신호탄과같은 주요사조로써 평가된다. 그 이유는 위에서 말했듯이 야수주의를 시작으로
화가의 주관이 색채로 표출되는, 즉 관념적 사상이 색채로써 표출될수있는 색채의
추상성에 대한 가능성을 열어주었기 때문이다. 다음호 에서는 야수주의 대표화가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도록 한다..

J Art Academy

원장 이준규

드랭, <빅벤> 개인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