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인상주의 4
폴 고갱 – 색채의 화가
2012년에 시애틀 아트 뮤지엄에서 전시를 했던 폴 고갱의 작품들 그것을 기억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곳에서 유명작가의 작품을 직접감상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기에 필자도 화려한
색채의 화가 폴 고갱의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찾아갔던 기억이있다.
고갱은 예술과 관계가 없는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증권 거래업자 였던 그는 다섯명의
자식을 눈 평범한 중산층 가장이었다. 그러나가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고
인상주의 기법을 배워 전시하기 시작 했다.
그러던중 그림에 전념하기 위해서 가정을 버렸으며 본능에서 우러나오는 그림을 그리기위해
여느 인상주의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전통적인 회화기법을 버렸다.
고갱의 일생은 어린 시절부터 남달랐고 특이하였다. 언제나 나무를 조각하였고 이웃들은
그가 유명한 조각가가 될것라고 생각을 하였다. 고갱은 자유로움과 방랑하는
인생을 동경하여 9살에 집을 뛰쳐나간 일화도 있다.
이런 모습등으로 인해 그의 선생은 그가 천재 아니면 바보 둘중에
하나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어른이 되어서 그는 그림에 전념하기위해 프랑스의 시골로 이사를 하였고
그곳의 생활에 만족하였다.
그는 그림에서 원시적인 감정과 상상력이라는 회화의 근본원리를 간직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러한 고갱의 믿음은 이제까지의 회화를 완전히 바꾸어 놓을 만한 혁신적인 것이 었다.
그의 작품<황색 예수>에서 고갱의 얼굴을 한 예수는 완전히 노랑색으로 표현되어있고
배경의 나무들은 주황색으로 칠이 되었다. 그는 원근법이나 명암법으로 인해 그림의
색채효과를 감소 시킨다고 전통적인 방법을 사용하기 거부하였다.
이러한 선구적인 색채의 사용으로 아방가르드 화가들은 그의 색채 사용법을
배우려 몰려들었다.
그러나 그역시도 대중에게 인기를 얻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렸다. 여느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힘든 무명화가의 시절을 보냈다. 그는 종종 물감을 살돈마저 없어서 타히티에서 그린 그림을
보면 상당히 얇게 발라져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이러한 고통속에서도 그가 그림을 계속 할 수있었던 것은 전혀 알려지지않는 새로운 그림을
그리고자 하는 염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사물의 외관을 그대로 그리지 않고 색채변환과 형태 왜곡을 통해
그의 감정을 전달하려 하였다.
말년의 고갱은 타락한 문명을 거부하고 순수한 감각을 찾아 말년을 타히티에서 보냈다.
그는 돈이나 사랑에 대한 근심없이 노래하고 죽을 수있는 이곳에서 드디어 자유를 얻었다.”라고
하였다. 그는 열세살 먹은 타히티 원주민 소녀와 동거하며 생동감 넘치는 원색의 상징적인
회화들과 조각 작품들, 판화들을 만들었다.
후회 없는 삶을 산 그는 쉰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고갱이 감각적인 효과를 나타내기 위해서 사용한 평면적인 형태와 자의적으로 사용한
강력한 색채, 무엇보다도 사실을 주관적인 감정으로 표현한 기법은 다른 화가들의 마음을
사로잡아 널리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J Art Academy
원장 이준규
고갱,<황색 예수>, 1889, 녹스 미술관, 버팔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