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낭만주의


영국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화가인 컨스터블과 터너에 대해서 알아보며 영국의 낭만주의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기로 한다
. 이 두명의 화가는 풍경화를 미술의 주장르로 만드는데 많은 공헌을 하였다. 이 둘의 그림 스타일에 큰 차이는 없다. 다만 컨스터블은 자연 그 자체를 주제로 한 것에 비해 터너의 주제는 색채였다. 컨스터블이 실제의 시골풍경을 그렸다면, 터너는 자신의 상상속 폭풍우 같은 풍경을 그린 것이다.

컨스터블

존 컨스터블의 그림은 영국 동부의 앵글리아 지방을 묘사하고 있다. 그의 작품은 그 생전에는 제대로 평가 받지 못하였는데 그가 39세가 되는 해까지도 그림을 단 한 점도 팔지 못했을 정도였다. 당시 아카데미는 오늘날 대담하고 혁신적으로 평가받는 그의 그림이 조잡하고 거칠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컨스터블도 그들의 평가에 개의치 않았고 실제 풍경은 연구하지않고 그저 관습대로 그리는 전통적인 풍경화가들을 싫어 하였다. 실제로 그는 해외여행의 경험도 없이 오로지 자신 고향의 자연을 유심히 관찰하여 그림으로 그려나갔다. 그가 묘사하는 영국의 시골 풍경은 매우 조용하고 평화로운 것이었다.

어린시절 컨스터블은 아버지로부터 풍차가 돌아가는 모습으로 기상변화 읽는 법을 배웠다. 어른이 된 후에도 그는 자신의 그림속에서 기상 변화에 대한 관심을 표현하는 것을 즐겼다. 작품의 영감을 더하기 위해 구름 등을 스케치 하는 그는 하늘이야 말로 감수성의 원천이라고 믿고 있었다. 이렇듯 하늘과 구름, 태양을 사랑하였기 때문에 1802년 부터 야외에서 유화를 그리기 시작하였는데 비록 마무리 작업은 화실에서 하였지만 인상주의 이전에 야외제작을 한 최초의 화가로 기록된다.

터너

터너도 컨스터블과 마찬가지로 세부묘사를 위주로 한 부드러운 분위기의 감각적인 풍경화로 시작하였다. 그도 컨스터블과 마찬가지로 후기에는 보다 급진적인 방법들을 실험한 매우 독창적인 작품을 생산하여 후세의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러나 두 화가의 그림은 스타일에서 매우 차이가 나는데 터너는 불이나 폭풍우 같은 트라마틱한 주제를 좋아했다. 즉 터너는 인간의 손이 미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자연을 그렸다. 후에 터너의 스타일은 감성에 호소하는 색채에 의존하게 되며 점차 추상적으로 변해갔다. 이 시대의 가장 위대한 색채화가였던 그는 갈색이나 담황색으로 하던 애벌칠 대신 하얀색 바탕을 사용함으로써 최종적인 완성작을 보다 환하게 보이게 한 최초의 화가이다. 그는 어두운 색은 하얀색과 섞어서 보다 밝게 만들고 노란색 같은 밝은 색깔은 광도를 높이기 위해 희석하지 않고 사용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터너는 그림속에 태양을 가져다 놓은 것 같다고 말했다.

터너는 추상화가라고 자처하지는 않았지만 사후에 발견된 작품들을 보면 단지 빛나는 색채의 소용돌이 만이 그려져 있을 뿐 어떤 주제를 그렸는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색채의 역할을 재평가한 그의 작품은 후대의 미술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터너는 회화 매체로 표현할 수 있는 극단을 실험한 화가라고 할 수있다.

J Art Academy

원장 이준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