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르네상스

지난 호에서 다루었던 네델란드 화가들 못지 않게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독일르네상스 화가들은 네델란드 화가들에 비해 독창성면에서 많이 뒤쳐져 있었지만 16세기 초반부터 이탈리아 르네상스 3대 거장의 업적에 비할 만한 회화적 발전을 이루어내면서, 북유럽 화파의 주도권을 잡기 시작한다. 이탈리아 예술의 최전성기와 동시에 독일도 전성기 르네상스를 구가했으며 이 시기를 이끈 화가로는 홀바인과 뒤러가 있다.

홀바인- 궁정 화가

홀바인은 역사상 가장 위대한 초상화가로 알려져 있다. 그는 정확한 사실주의와 선을 주로 사용하는 네덜란드 적인 방법과 이탈리아의 균형적인 구성, 명암 대조법, 조각적인 형태, 원근법을 결합하여 작품을 만들었다. 홀바인은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화가로서 일한 곳은 바젤이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으로 인하여 교회의 장식이 금지되면서 화가들의 설자리가 없어지자 홀바인은 영국으로 건너가 그 곳에서 일자리를 알아보던 중 그의 놀라운 재능 덕에 헨리 8세의 궁정화가가 되었는데 주로 왕과 네명의 왕비를 그렸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인 <프랑스 대사들>을 보면 동양풍의 양탄자와 다바스커스 산 커튼의 선적인 문양, 정확한 모피와 천들의 질감묘사, 대리석 바닥의 정확한 원근법 그리고 에나멜칠이 된 탁월한 색채, 세부묘사가 정확한 사실주의등 호바인의 놀라운 테크닉을 엿볼 수가 있다. 홀바인은 이후 3세기에 걸쳐 영국에서 가장 중요한 미술의 장르인 초상화의 기준을 정립한 화가로 유명하다.

뒤러 – 판화 예술

또 한명의 독일 르네상스 대표화가는 뒤러이다. 그는 사실주의라는 북유럽 미술의 특성과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혁신 적인 요소들을 결합시킨 화가였다. 여러가지 관심사 때문에 북유럽의 레오나르도 라고 불리던 뒤러는 미술은 정확한 관찰을 통해 그려져야 한다고 믿었기에 <예술이란 자연을 기본으로 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연을 찾아다니는 자만이 진정한 예술가이다.> 라고 했다. 그는 또한 화가란 교양이 있는 신사이자 학자이어야 한다고 강조 했고 그러므로 예술가의 위치를 장인에서 왕족과 같은 지위로까지 격상을 시켰다. 뒤러가 유명해진 이유는 그의 판화 작품에 있다. 그 전까지의 판화는 흑백의 대조를 위주로 한 단순한 하급 미술 장르에 불과 하였다. 그러나 그는 동판화의 해칭 기법을 모판화에 적용하여 놀라운 명암 변화를 보여주었다. 많은 선을 사용하여 유화 모지 않게 세밀한 질감과 색조를 묘사해 낸 것이다. 뒤러는 판화를 미술의 주요 표현 수단으로 사용한 첫번째 화가였다.

J Art Academy 원장

이준규


홀바인, 프랑스 대사들 (국립미술관, 런던)

뒤러, 기도하는 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