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지 않은데요?

아프지 않은데요?


치과치료를 하다보면 유달리 치료를 잘 받는 환자들이 있다. 왠만하면 아파하지 않는 일명 ‘치과체질’의 환자들을 종종 찾아볼수있다. 마취주사를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고 거뜬히 받는 환자가 있는가 하면 한 시간이 훌쩍 넘는 장시간에 걸친 치료속에도 힘들지 않게 미동도 없이 입을 크게 벌리고 죽은듯이 누워있는 환자, 임플란트나 사랑니 발치 수술후에 진통제를 한 알도 먹지 않고 거뜬히 버티는 환자도 있다.

사람마다 통증을 감별하는 정점의 차이가 각기 다르고 이러한 환자들의 유형 또한 남녀노소 구분없이 가지각색이다. 환자를 치료하는 입장에 있는 치과의사들에겐 더 바랄것없는 환상적인 환자들이지만 남들보다 통증을 더디 느낀다는것은 반듯이 환자자신에게 이로운 일만은 아니다.

통증은 우리 신체가 두뇌에 보내는 경보장치이다. 몸구석 어느 한곳이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라면 주의를 모으고 조치를 취하기 위해 두뇌에 도움을 요청하는 일종의 알람신호라고 볼수있다. 인간이 모든 자극에 적응할수있는 능력이 있지만 유일하게 통증에는 적응하지 못하도록 만들어진것만 보아도 통증은 분명 사람에게 필요한 요소라는 아이러니스러운 결론을 내릴수있다. 그러나 반면 그러한 경보체제가 초기에 감지되지 못한다면 시간이 흐를수록 환자는 모르는 사이에 더 큰 병으로 치닫게 되는 경과 또한 자명하다. 중요한 사실은 급성 심장마비와 같은 극단적인 예를 들지 않더라도 우리의 뇌에 제대로 경보음이 전달되지 않는 크고 작은 질환들은 무수히 많다는것이다. 특히 치과질환은 초기 경보음 소리가 유난히 작기 때문에 사태의 심각성을 모른체 무심코 지나치기가 무척 쉽다.

어릴적 충치로 인한 통증때문에 밤잠을 설치던 기억을 대부분의 성인이라면 한가지씩은 가지고 있다. 치과질환이 엄청난 통증을 동반한다는 잘못된 상식은 아마도 이러한 “치아가 썩으면 아프다”라는 어릴적 몸소 겪은 교훈탓 때문이기도 할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성인치과질환은 자가진단이 힘든, 통증을 초기에 느낄수없는 질환이다. 초기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충치와 본인이 느끼기에도 불쾌한 자신의 입냄새가 신경치료와 치주질환이라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기 전까지는 별다른 통증이 없다는것이 치과질환의 무서운 특징이다. 팔다리가 부러져 치료받기 위해 찾아가는 정형외과와는 달리 자각증상이 없기에 환자가 모르고 있는 질환을 각인시키고 치료를 위해 설득을 시키는 일은 치료만큼이나 치과의사들이 책임져야할 중요한 업무이기도 하다.

알게 모르게 진행되는 치과질환을 치료하는 시기를 결정하기에 통증이 있고 없음에 기준을 두기엔 안고 가야할 불필요한 위험요소가 많다. 정기적인 검진을 통한 조기치료와 예방치료만이 최선의 방법이라고 모든 치과의사들이 입을 모으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치과질환에 맞서 싸울 월등한 유전인자를 타고 태어난 사람도 없고 치과질환의 그림자에서 평생 열외되는 행운을 가진 사람도 없다. 다만 , 통증을 잘 참는 체질이든 아니든 아프지 않다고 자신의 치아건강을 과신하지 말고 항상 작은 경보음에도 귀기울일줄 아는 사람에게만 건강한 삶을 누릴수있는 자격이 주어질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