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색 신호등

삼색 신호등

서울시는 선진국형 교통체제를 갖추겠다는 취지로 광화문을 비롯한 시내 여러군데에서 시범운영을 해온 삼색 신호등을 시민들에게 오히려 혼란과 불편함만 가중시킨다는 여론을 받아들여 결국 시범운영을 잠정폐지한다는 결정을 내렸다고한다. 사전에 시민을 상대로 안내정보등 충분한 교육없이 선진국들이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던 상태에서 무리하게 도입을 시도한것 자체가 화근이 아니었나싶다.
국민들의 불편을 무시하고 “ 따라하면 익숙해질것이다”며 무리하게 운영을 시작한 당국의 관료위주 사상이 불손하기도 하고 결과적으로 시예산만 어이없게 축내버린 이번 문제를 보며 “고장나지 않았으면 고치지 말라”는 서양속담이 떠올랐다.

If it’s not broken, don’t fix it

사람의 입안에서 100퍼센트 교과서적 완벽한 치아를 찾아 보기란 힘들다. (잇몸 또한 마찬가지이다). 수십년간 사용해온 흔적으로 치아 법랑질 표면이 조금은 닳아있고 미세한 골절흔적을 거의 모든 치아에게서 찾아볼수있다. 진전된 정도의 차이일뿐 충치도 거의 모든 치아에서 찾아볼수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 모두 완벽하지 않은 치아들 가운데 과연 어느 치아가 치료를 필요로하고 어느 치아는 관리보존의 대상인지 환자의 처지에 알맞는 현명한 결정을 내린다는것은 모든 치과의사들이 안고 있는 직업적 스트레스이다. 병리상의 근거가 명백한 치아를 치료하는것은 기본적이고 스트레스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치아에 더 큰 문제가 생기기전에 초기에 개재하여 미리 손을 써야만 하는 경우는 의사의 주관적인 판단에 따라 치료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때로는 10명의 치과의사의 치료견해가 모두 제각기 일수도 있다.

사람들은 과잉치료를 하지 않는 치과의사를 ‘양심적인 의사’라고 부른다. 재미있는점은 ‘ 양심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직업은 생각만큼 많지 않다는것이다. 양심적인 연예인, 양심적인 운동선수 라는 표현은 본적없지만 정치인, 재벌가, 변호사등 9시 뉴스에 단골등장하는, 도덕점수가 낮은 직업에 익숙하게 따라 붙는 수식어이다. “대다수가 비양심적이다”는 가설을 전제에 두고, “ 나머지 소수만이 양심적이다”는 뉘앙스가 담긴 명예스럽지 못한 표현이다.
미국에서는 수 만가지가 넘는 직업들가운데 대중이 가장 신뢰하는 직업 톱10에 매년 치과의사가 약사, 교사와 순위를 다투며 당당히 포함된다는점을 감안해볼때 한인들의 톱10 리스트에도 과연 치과의사가 포함이 되는지 의문스럽다.

과잉치료는 당연 배타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종종 사람들은 ‘양심적인 의사’라는 표현과 10명의 치과의사중 환자에게 가장 저렴한 치료계획서를 제시한 치과의사를 일컫는 호칭과 같은 의미로 혼돈되게 사용한다. 지금 당장 아프지 않은 치아는 치료가 필요없다는 환자의 생각과 상반된 의견을 가진 의사에게 때로는 비양심적인 의사라는 주홍글씨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그러나 실제로 치과에서는 대형사고를 피하기위해 예방을 하기위해선 때로는 환자가 필요로 느끼지 못하는 치료를 치과의사들은 권하는 경우가 많다. 소신을 굽히지 않고 환자가 의사의 의도를 이해하도록 환자를 돕는 역할까지 의사가 떠맡아야할 몫이지만 현실에선 많이 결여된 부분이기도 하다.

교통체증을 장기적으로 완화해보겠다는 노력의 일환이였던 서울시의 의도 자체가 문제는 아니었다. 시민과 충분한 교류가 없어 시행에 착오가 생기듯이 환자가 의사를 신뢰하고 이해하지 못한다면 의사의 그 어떤 훌륭한 치료의도가 숨어있다 할지라도 환자의 눈에는 삼색 신호등으로 밖에 비춰지지 않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