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이력서를 써보자


필자가 20년간 말기 암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일을 해왔던 경험으로 비춰볼 때, 암이나 갖가지 자가 면역 질환(파키슨병, 루게릭병, 베제트병, 전신 홍반성 낭창 등)이 생기는 원인 중의 상당수는 ‘매듭’에서 비롯되는 것 같다.

여기서 말하는 매듭이란 무시당함, 분노, 미움, 좌절, 질시 같은 정신적 문제를 말한다. 내가 남을, 혹은 남이 나를 아주 불편하게 만드는 일들 말이다. 환경적으로 보거나 성격적으로 보거나, 생각하는 동물인 인간은 정신이라는 삶의 축에서 벗어날 수 없다. 시기와 질투, 남을 딛고 일어나야 한다는 승부욕 등은 삶을 몹시 피곤하게 한다.

아드레날린이나 엔돌핀, 또 최근 논의되는 다이돌핀(감동받을 때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암을 치료하고 통증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다이돌핀의 효과는 엔돌핀의 4,000배에 이른다는 연구결과도 발표되었다)까지 거론하지 않더라도 정신의 피로는 육체의 피로보다 그 농도가 훨씬 강하다. 또한 육체의 피로는 휴식과 수면이라는 부분으로 쉽게 해결되지만 정신의 피로는 그리 쉽게 풀리지 않기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한 것이다.

부부싸움의 예를 들어보자. ‘사네, 안사네’ 하는 심각한 단계로까지 부부싸움이 발전되면 밥맛은 고사하고 살맛까지 잃기 십상이다. 심하면 손가락 하나 까딱하기 힘들 정도로 온몸의 힘이 모두 빠졌던 경험을 한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최악의 경우 자살까지 가는 경우가 있는데, 이렇게 죽음으로까지 가게 하는 것이 바로 정신적 문제라는 것이다.

필자에게는 말기 암환자들이 심심치 않게 찾아온다.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오는 분들에게 나는 매듭을 풀 수 있도록 이력서를 한번 써보라고 권하곤 한다. 누구에게 제출하는 이력서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한번 자세하게 되돌아보는 그러한 이력서를 말이다. 누구를 죽이고 싶도록 미운지, 용서를 못하겠던 사람은 누군지, 내가 지금까지 받았던 상처는 물론 내가 남을 심하게 괴롭혔던 부분까지 진솔하게 한번 이력서를 써보라고 한다.

필자의 얘기를 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가 살아온 삶에 대해 한 번도 되돌아보지 않았던 부분을 보게 마련이다. 그럼으로써 자기 삶의 매듭을 보게 되더라고 고백하는 경우들도 많이 보았다. 여기에 덧붙여 필자는 그 매듭을 하나하나 천천히 풀어보라고 권한다. 그러면 아주 용감하게 자신의 매듭을 풀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용기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매듭을 풀려면 내려놓아야 하는데 거기에는 용서라는 관용이 선행되어야 한다. 하지만 닫혔던 마음을 풀기가 그리 쉽지만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력서를 쓰고 용서라는 수단을 통해 매듭을 풀고 마음에 응어리진 그 무엇인가를 풀어낸 사람들은 하나같이 삶과 죽음에 대해 자유로워진다. 영원한 생명은 없다. 삶과 죽음에 대한 깨달음을 가지고 사는 것과 그렇지 못한 삶은 분명 다르다. 그 깨달음을 찾아가는 과정은 종교가 궁극적 목표를 추구해가는 과정과 크게 다르지 않다.

모든 사람이 구도자적 자세를 가지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자신만의 이력서를 통해 진솔하게 인생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는 것만으로도 해탈의 맛을 보는 사람들이 많음을 얘기하려는 것이다. 암에 걸려야만 삶의 이력서를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중간 점검을 해볼 필요가 있음을 말하고자 한다. 그를 통해 시기, 질투, 미움 같은 마음을 정리한다면 건강한 삶에 한걸음 다가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