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가 하는 일과 조건 1

피를 병리학적이나 생리학적으로 볼 것인지, 아니면 자연의학적으로 볼 것인지, 그도 아니면 그냥 피 자체로 볼 것인지는 신생아가 누구를 닮았는지에 관한 논쟁만큼이나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각자가 아는 지식의 범위 안에서 보고 느끼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 세상 이치이므로 누가 옳다, 그르다 따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건강과 질병을 의학적 시각으로만 보는 서양의학에서는 피를 쪼개서 분석한 후 그 결과를 가지고 질병의 종류나 정도를 가늠한다. 그런 후에는 의학 교과서에 실린 대로, 혹은 발표된 임상결과에 따라 대부분 도식적인 처방을 내린다. 그러나 피가 하는 일, 그리고 그 조건을 알게 되면 스스로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이 된다.

1. 배달부로서의 피

코로 들어온 공기는 폐에서 분리된다. 필요한 산소가 피에 실리고, 간의 문맥에 도착한 영양 또한 피에 실리면 가장 정교한 택배 회사인 피가 그것들을 온몸의 세포로 배달한다. 세포에 도달한 피에 실린 산소와 영양은 삼투압이라는 물물 교환 장치(학술적으로는 Buffering System)에 의해 세포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이로써 택배 완료.

2. 청소부로서의 피

세포 안에서 일어난 신진대사 결과 탄산가스를 비롯한 여러 가지 대사 부산물들이 생성되는데 이들 역시 삼투압 작용에 의해 세포 밖으로 나온다. 이때 피는 이를 받아 탄산가스는 폐로, 나머지 다른 것들은 필요한 처리 장기로 옮겨 줌으로써 청소부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한다.

3. 군인으로서의 피

피는 우리 몸을 지키는 군인이라고 볼 수 있다. 외부에서 내(Self)가 아닌 남(Non-self), 곧 적이 침입하면 빨리 감지하여 몸 밖으로 내쫓을 것들은 내쫓고 싸워야 할 상대들과는 싸워서라도 몸을 지키는 군인이다. 나라를 지킴에 있어 자국의 국방력으로만 나라를 지킬 때 이를 자주 국방이라 하고 외국의 원조를 받아 외적을 물리칠 때를 원조 국방이라 한다. 인체도 마찬가지이다. 스스로의 피를 가지고 건강한 몸을 유지하면 자주 국방이요, 약이나 다른 방법을 이용하여 몸을 지키면 원조 국방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원조 국방에는 반드시 원조 후유증이 따른다는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통감하고 있는데 몸이라고 예외가 있을까 싶다. 자주 국방력이 떨어졌을 때 면역력이 떨어졌다고 하는데 군인이 힘을 못 쓰면 나라는 망하게 된다. 피가 군인 역할을 못하고 세균에게 져서 사람이 죽게 될 때 붙이는 병명이 바로 폐혈증이다.

4. 정보원으로서의 피

피는 컴퓨터보다 몇 배 정밀하고 신속하게 신체 정보를 온몸으로 전달하고 또 받아서 뇌로 전해주는 역할을 한다.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발명되어지고 만들어지는 모든 상황들은 깊이 들어가 보면 몸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들을 몸 밖으로 끄집어내어 실용화시키고 있는 것들이다. 피가 정보원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 컴퓨터가 해킹을 당했을 때와 같은 현상이 몸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5. 체온 유지의 역할

몸에서 열이 많이 나는 병은 대부분 급성이거나 그리 무서운 질병들이 아닌 경우가 많다. 반대로 몸이 차다고 느껴지면서 오는 질병들은 만성 질환이거나 불치병, 난치병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암 환자의 평균 체온이 섭씨 35도 정도 밖에 안 된다는 시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시체가 차지는 것도 피가 식어가기 때문이다. 젊은 사람들을 가리켜 피끓는 청춘이라 하는 것도 건강한 사람은 피가 뜨겁다, 곧 체온이 제대로 유지된다는 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