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절 때마다 싸운다.” 그게 아니라 “명절에도 싸운다.”

고 임성택 목사님께서는 그동안 저희 교차로 독자들을 위해 좋은 말씀을 연재해 주셨습니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생전에 마지막으로 보내주신 칼럼을 올려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십시오.”

아름다운 가을이 왔습니다. 날씨는 쌀쌀하지만 색색으로 변해가는 나뭇잎들과 떨어지는 낙엽들 그리고 맑은 하늘은 일 년을 바쁘게 살아온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계절인 것 같습니다.
한국은 지난주가 최고의 명절 중에 하나인 추석 즉 한가위였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는 말처럼 추석은 누가 뭐라고 해도 가장 즐거운 명절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아마도 추수의 계절이고 또 아름다운 계절이기에 기쁨이 더한 것이 아닌가 생각을 해봅니다.
이렇게 즐겁고 기뻐서 모든 사람들이 즐거워야 할 명절인데도 불구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우리의 마음을 가을의 날씨처럼 쌀쌀하게 만듭니다. 온가족이 오랜만에 만나서 서로의 사랑을 나누는 시간이 아니라 서로 다투고 피곤한 명절이 되는 가정들이 의외로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간혹 어떤 이들은 명절만 되면 싸운다. 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가만히 생각을 해보면 명절 때만 골라서 싸운다는 표현보다는 싸였던 일들이 명절에 모였을 때 터진다. 라는 표현이 더 맞는 것 같습니다. 평소에 너무나 사이가 좋고 사랑이 넘치는 관계인데 명절만 되면 싸운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평소에는 얼굴을 볼 기회가 없었는데 명절이라고 모이고 또 서로가 서운한 감정들이 안 좋은 관계와 피곤함이 겹쳐서 화약에 불이 붙듯 폭발을 한다는 것입니다.
명절을 화해가 아닌 화약고로 만드는 몇 가지 이유가 있는데 제일 첫째는 관계입니다. 시부모와 며느리와의 관계, 며느리와 딸들의 차이, 말하자면 일은 할 때는 며느리들이 뼈 빠지게 하고 음식은 딸들이 다 팽겨가는 이런 얌체 같은 일들은 서로의 관계에 앙금이 생기게 한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추석을 보내는 사람들은 이런 관계가 상관이 없다고 말할 수 있지만 따지고 보면 그런 것도 아닙니다. 음식이 문제가 아니라 서로의 관계가 문제입니다.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사랑이 없는 관계는 명절이 아니라 그 어떠한 날이라도 화평이 있을 수 없고 기쁨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 어떠한 음식도 그리고 행사도 사람보다 더 중요할 순 없습니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틀어진 관계가 되면 어떠한 일을 하려고 해도 행복하지 않고 서로에게 말 한마디가 짐이 된다는 것입니다. 행복한 명절 더 나가서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기본은 좋은 관계입니다. 이것은 차별이 없는 관계에서 출발을 합니다. 내 딸과 며느리를 똑같이 생각하는 마음에서 시작을 합니다. 내 부모님과 시부모님을 같이 공경하고 존경하는 마음에서 시작이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닙니다. 평화를 만드는 일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고통과 희생이 따르고 나를 죽이는 인내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우리는 이 가을을 맞이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명절을 전쟁터로 만드는 두 번째 큰 이유는 목적의 상실입니다. 도대체 왜 모이는 건지 중요한 핵심을 잃어버린 가정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오랜만에 만나서 기쁜 얼굴로 모여서 인사를 나누고 가볍게 밥을 먹고 담소를 나눕니다. 그러다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얼굴색이 변합니다. 남자들은 처음에는 가벼운 반주라고 술을 한두 잔 나누다가 병으로 변하고 그 다음에는 얼굴이 빨개지고 혀가 꼬이고 정신 못 차리고 명절 내내 술 먹다가 볼장 다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속 쓰리고 싸우고 별짓을 다하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이건 술을 먹으려고 가족이 모인건지 왜 모인건지 도대체 이해가 가질 않습니다.
남자들은 술 때문에 얼굴색이 변하고 여자들은 음식에 설거지 그리고 일하느라 힘들어 얼굴이 빨갛게 변합니다. 어떤 사람은 삼일동안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전만 부치다 왔다는 사람도 봤습니다. 물론 일 년에 한 번 모이는 명절이니 사람들이 풍성히 먹고 가라고 음식을 장만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달리 생각하면 일 년에 얼마 안 되는 명절이니 서로에게 좋은 추억과 사랑을 남기는 시간으로 기억되도록 만드는 것이 더 의미 있고 가보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옛날이면 몰라도 지금은 너무 잘 먹어서 탈이지 못 먹어서 문제가 되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지금은 아이나 어른이나 음식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 그리고 힘이 되는 격려와 사랑이 필요합니다.
이제 미국에 사는 우리도 얼마 있으면 추수감사절이 맞이하게 됩니다. 한국의 추석처럼은 아니지만 그래도 가족과 이웃들이 모일 수 있습니다. 그 때 정말로 중요한 것은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인생에 있어서 정말 소중한 추억을 만드는 일이라는 것을 생각하시고 평소에 관계를 잘 유지하셔서 정말 행복한 명절을 맞이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