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리케라!

쏘리케라!

예전에 섬기던 교회에서 일어났던 일입니다. 교회복도에서 아이들이 반 선생님과 이야기를 하며 장난을 치고 있었는데 그때마침 경상도 사투리를 쓰시는 연세가 많으신 집사님이 지나가셨습니다.

항상 바른말을 하시고 모범을 보이시던 분이었습니다. 그때에 아이들이 장난으로 선생님을 툭툭 치면서 장난을 쳤습니다. 그러자 그것을 보시던 경상도 집사님이 버릇없이 장난을 치는 아이들에게 이렇게 혼을 내셨습니다. “쏘리케라”

순간적으로 주의는 조용해졌고 그 자리에 있던 아이들도 그리고 선생님도 바라보던 저도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 보고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다시 말씀하시는 순간 경상도 사투리로 그 의미를 알았습니다. “쏘리(Sorry).라고 케라(해라)”

참으로 기대 못했던 말이었습니다. 한편으로는 생소한 말에 웃기기도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얼마나 속에서 열이 났으면 그리 하셨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일이 있던 후로 장난기 있는 말이지만 미안하다고 해야 될 상황에서 그런 말을 안하는 사람들에게 유행어처럼 한동안 쓰던 것이 기억납니다.

여러분은 “미안하다,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자주하시는 편입니까? 아니면 내 인생에 그런 말은 없다고 생각하며 살아가십니까?

혹시 어떤 사람이 나에게 잘못을 했을 때는 어떠하신지요? “나도 안하니까 당신도 할 필요 없소.” 라고 말하십니까? 아니면 “그래도 사람이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는 해야지” 라고 말하시지는 않는지요?

이유를 막론하고 누구를 용서한다는 것은 말처럼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닙니다. 특히 용서를 구하는 일보다 용서해주는 것이 더욱 힘드는것 같습니다. 하지만 쉽지 않은 일이기에 참으로 어려운 일이기에 더욱 의미 있고 보람되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용서를 할 때에 꼭 생각해야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의 잘못을 가지고 예전의 있었던 과거의 일들을 서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용서한다고 말하는 이순간은 온전히 이 문제에 대해서 생각하고 말해야지 “예전에도 그랬었잖아” 라는 식으로 이전에 있었던 일들을 들추지 말라는 것입니다.

용서라는 것은 모든 것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어떤 일을 용서해 주면서 다음에 그 일을 다시 입에 올린다면 말로는 용서했을지는 몰라도 마음으로는 아직까지 용서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즉 용서를 한 것이 아니라 벼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번, 두번, 세번 차곡차곡 내 마음속에 칼을 갈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멀리 생각할 것 없이 여러분의 가족을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혹시 부부사이에 다툼이 생겼을 때에 이전 일들을 들먹이면서 말하고 계시지는 않으신지요, 자녀들이 잘못을 했을 때에 “이게 도대체 몇 번이냐고, 말 안듣는 것이 어쩜 아빠랑 똑같니” 하면서 아이가 생각나지 않는 어렸을 때부터의 일을 족보 외우듯이 줄줄이 입에서 나오시지는 않는지요?

이것은 진정한 용서가 아닙니다. 용서란 잊어주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니시지 않는 분이라도 성경에 나오는 사랑에 대해서 아시리라 생각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이런 내용의 말들을 한번정도는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여기서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한다는 말은 나쁜 기억을 오래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이요 용서일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마음에 칼을 갈지 말고 이전 것을 말하지 아니하고 생각지도 아니하는 진정한 용서가 우리에게 있기를 바랍니다.

깨끗한 용서를 베푸는 당신을 축복합니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임성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