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짐의 미학

헤어짐의 미학

우리의 생활은 반복적인 생활입니다. 그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또 헤어집니다. 사람과 사람들이 만나서 관계를 형성하고 또 그 관계가 잘 유지되기도 하고 깨어지기도 합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난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지금은 세계가 지구촌이라고 불리기도 하지만 우리가 개인적으로 만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특히 한국도 아닌 미국이라는 곳에 와서 만나는 사람들은 확률로 볼때 정말 특별한 만남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이렇듯이 우리가 만나는 것은 너무나 귀중한 일입니다.

이런 만남만큼 중요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헤어짐입니다.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습니다. 잠시 헤어지는 헤어짐도 있지만 영원한 헤어짐도 있습니다. 어쩌면 만남이라는 것은 헤어짐을 조건으로 하고 만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회자정리(會者定離 :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만나면 헤어짐을 생각해야 하는 것은 어쩌면 헤어짐은 만남을 약속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만날 수도 있지만 영원히 못 만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만남도 잘해야 하지만 헤어짐을 잘해야 합니다.

이런 말이 있습니다. “이별의 시간이 될 때까지는 사랑은 그 깊이를 알지 못한다.”(칼릴 지브란) 어느 한 사람의 사랑이, 그리고 그 자리가 얼마나 중요한가는 그 사람이 없는 빈자리를 볼 때 비로소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살다보면 어떤 사람의 떠나간 자리가 너무나 크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연인일수도 있고 또는 동역하는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상사일수도 있고 또는 밑에서 일하던 사람일수도 있습니다. 그 자리가 어떤 자리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중요한 것입니다.

즉 사람과 사람으로서 인격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떠나간 그 사람을 기억하는 것이지 비어있는 자리를 기억하지 않습니다. 말이 조금 어려운 것 같은데 쉽게 말하면 헤어졌을 때 시원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되지 말고 아쉽고 만나고 쉽고 좋게 기억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만남이든 언젠가는 헤어지고 지나간 그 사람을 또는 나를 평가하는 시간이 온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좋은 평가를 받기를 원합니다. 누구도 안 좋은 평가를 원하고 또 뒤에서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을 원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할까요? 성경에 보면 달란트를 맏겼던 종들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칭찬을 받은 사람도 있고 또 질책을 받은 사람도 있습니다. 칭찬할 때 주인이 이렇게 말을 합니다. “그 주인이 이르되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여기서 주의 있게 봐야할 내용은 “작은 일”이라는 것입니다. 작은 일에 열심히 다하는 사람은 큰일에도 열심을 다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골로새서 3장에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라고 했습니다. 어떠한 일을 하든지 최선을 다하는 사람, 즉 사람이 아니라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하고 일할 때 모든 사람이 기쁨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제가 일하시는 분들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15분만 더 일하세요.” 라고 말합니다. 어디서 일을 할 때 자기 시간이 끝났다고 부리나케 되도 안돌아보고 오지 말고 15분 더 일하는 시간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고 여기저기 돌아보면서 마무리를 잘해주고 오라고 말합니다. 끝나고 신경 쓰는 15분이 15시간 일한 것보다 더 고맙게 여겨질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을 바라기전에 무엇을 더 챙겨주는 사람이 주인의식이 있는 사람입니다.

유종의 미를 한번 생각해 봅니다. 헤어졌어도 그 사람을 생각하면 그립고 또 고마운 마음이 가슴에서 느껴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교회 임성택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