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달걀의 부활?

삶은달걀의 부활?

교회를 다니든 다니지 않던 부활절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미국사람들이 일 년에 가장 많이 교회에 가는 날 중에 하나가 부활절입니다. 웬만한 상가에 가보면 여러 종류의 부활절 물건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쉽게 볼 수가 있습니다.

제가 지난 주에 어린아이들에게 부활절이 되면 제일 생각나는 것이 무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계란”, “Egg hunting”(계란 찾기), Easter Bunny”(부활절 토끼)가 가장 많았고 소수의 아이들이 예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별로 놀라지는 않았습니다. 그저 좀 답답할 뿐이지요.

성탄절에는 산타와 선물이 그리고 부활절에는 계란과 토끼가 아이들의 마음을 잡고 있으니 나중에 가서는 “토끼가 봄이 되어 굴속에서 나와 활동하는 것이 부활절“이라고 무식이 충만한 사람이 생길까 걱정입니다.

물론 계란을 주는 것은 “비옥함”과 “새 생명”을 상징하는 의미와 여러 유래가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것을 금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확실한 부활의 의미를 알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부활절만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면서 그 의미를 생각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들이 참으로 많이 있습니다. 돈은 우리를 편안하게는 하지만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 없다는 것도 알지만 돈 때문에 가정이 깨지고 부부가 갈라섭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우선이라고 말을 하지만 나의 욕심 때문에 관계를 던져버리고 거짓을 행하는 일들이 있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진주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값어치를 잘 알지 못합니다. 저 같은 사람은 이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잘 모르기 때문에 좋은 것을 주워도 별로 큰 감동도 없고 구부리기가 귀찮아서 줍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진주를 아는 사람이라면 너무 기뻐서 춤이라도 출 것입니다.

진주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아느냐 모르느냐의 차이입니다. 의미 있다는 것은 그것을 알려고 노력하고 소중하게 생각할 때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 마태복음 7장에(쉬운성경)“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마라.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마라. 개나 돼지는 그것을 짓밟고, 뒤돌아서서 너희를 물어 버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부활은 생명이고 소망입니다. 인간이 제일 두려워하는 죽음을 희망의 메시지로 바꾼 놀라운 사건입니다. 예수님을 모함하고 자신의 제자로 하여금 배반하게 만들고 처참한 십자가의 고통을 당하고 무덤 속에 장례를 치렀을 때 음모를 꾸미고 예수님을 죽게 한 악한 세력은 자신들이 승리했다고 믿었을 것입니다.

모든 희망이 사라지고 절망이 세상을 덮었을 때 토끼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인해 인간의 모든 죄와 사망의 고통 속에서 자유함을 얻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삶속에서 믿었던 사람으로 배반을 받고,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고통을 받아 “이렇게 살아서 무엇하나”라는 생각이 내 삶을 눌러서 살아갈 희망과 소망을 모두 잃어버릴 때가 있습니다.

이러한 고통을 예수님이 이미 당하셨고 우리에게 진정한 자유를 주신 것이 바로 부활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희망의 소식입니다. 그리고 소망입니다.

삶은 달걀을 아무리 품고 있어도 병아리는 나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속에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살아있는 소망이 필요합니다. 오늘이 아무리 괴로워도 내일의 소망이 있으면 힘든 오늘을 즐겁게 웃으면서 보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살아있는 소망의 힘입니다.

“부활” 이것은 달걀과 easter bunny가 전부가 아닙니다. 두려움과 죽음에서의 자유이자 살아있는 희망입니다. 이 의미가 우리의 삶에 적용되어 힘있는 삶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아름다운교회 임성택 목사